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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Mar 08. 2021

인생은 퍼즐과도 같아라

퍼즐에 대하여

나는 게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모바일 게임도, 인터넷 게임도 안 해본 건 아니다. 친구들이 한다는 게임에 호기심을 보이기도 광고에 끌려 가입하기도 했었으니까. 꽤 재미를 붙인 것도 있었고, 오랫동안 해 오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엔 늘 게임 삭제로 끝을 맺었다. 그 게임들이 망한 작품이었느냐고 한다면, 절대 아니다. 지금도 한창 인기를 끌고 있다. 사실 게임은 다 좋았다. 할 때 재미있고 빠지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으니까. 그저 게임의 영향에서 벗어났을 때 느껴지는 허탈함이 너무 싫었을 뿐이다. 내가 투자한 시간, 정성, 노력 모두가 그저 그 좁은 가상 세계에서만 존재하고 의미 있다는 게 싫었다. 시간을 버린 듯한 허탈함을 이길 방도는 없었다. 예외가 있다면 보드게임일까? 보드게임은 혼자서는 하지 못한다. 친구들이나 지인들과 있을 때 하게 되는 법이다. 그때 비로소 게임이 얼마나 좋은 매개체인지 알게 된다. 서로 새롭게 소통하고, 즐기며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런 시간을 만들어주는 게임을 싫어하기란 어렵지 않은가.     


그러니 지금까지 유일하게 좋아하는 게임이 보드게임이래도 놀랄 건 아니다. 무의미하지도 않고 마냥 시간 낭비 같지도 않은 게임은 드무니까. 지금 시국만 아니었더라면, 매일 보드게임 카페에 출석했을 텐데…. 시국을 잘못 만났다. 혼자서 하는 보드게임이란 없고, 가족들은 보드게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내겐 대책이 필요했다. 독서와 영화는 게임과는 다른 결을 지니고 있으니 보드게임의 자릴 대신할 순 없었다.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도 계열이 달랐다. 손을 움직이면서도 온전히 내 창작에 따르지 않는 게 필요했다. 혼자서도 할 수 있어야 했고. 이 까다로운 요구를 충족한 건 뜻밖에도 퍼즐이었다. 코로나 시국을 맞아 보석 십자수를 비롯한 프랑스 자수, 컬러링 등이 인기지만 그중 가장 끌리는 건 퍼즐이었다. 지금까지 별로 접할 기회도 없었고 집중과 머리를 써야 하니 딱 맞았다. 마냥 단순 노동이 아니라는 게 제일 좋았다. 마침 서점에 갈 기회도 생겼겠다, 룰루랄라 <빨간 머리 앤> 퍼즐을 데려왔다.      


누가 알았을까. 그 퍼즐이 하루를 통째로 잡아먹을 줄은! 퍼즐을 안 한 걸 티 내듯, 퍼즐을 완성한 다음 날은 몸이 뻐근했다. 바닥에서 양반다리를 했다, 풀었다, 누웠다, 앉았다 한 결과였다. 그나마 친구의 조언이 나를 살렸다. 처음 퍼즐을 고를 때 별생각 없이 1000 피스를 보던 날 보고 친구는 경악했다. 자기는 500 피스도 힘들었다며 처음이면 500으로 하라고. 사실 조각 개수에 대한 감각이 좀 부족했던 터라 순순히 그 말을 따랐다. 올해 한 일 중에 가장 현명한 일이었다. 세상에, 조각은 내 예상 이상이었다. 훨씬 작고, 많고, 복잡했다. 이걸 사 왔으니 해보기는 해야 하는데 한 번에 안 맞추면 감당이 안 될 것 같았다. 사온 다음 날, 이를 악물고 시작했다. 카펫 위에 앉아 퍼즐 시안 포스터를 펴 놓고 조각을 분류했다. 비슷한 무늬들로만 모으는 것도 큰일이었다. 테두리를 먼저 맞추고, 눈에 띄는 로고 부분과 차지 면적이 적은 조각들부터 시작했다. 정말 쉬운 일은 아니었다. 자연이 배경이었기에 비슷비슷한 무늬가 차고 넘쳤다. 어지러운 꽃무늬가 눈에 가득했다. 그나마 쉬운 물결 부분도 단순하지 않았다. 분명히 이 자리에 필요한 조각이 있는데 안 보이는 것 같았다. 내가 못 찾는 건지 없는 건지 너무 헷갈리면서 맞출 수밖에 없었다. 결코 마냥 즐겁고 단순한 시간은 아니었다. 약간의 스트레스와 꽤 많은 집중력을 요구하는 과정이었다. 그렇지만 그게 끝이었다면, 종일 하진 못했을 것이다.     

 

퍼즐은 지금까지 취미의 한 자리를 차지한 이유가 있었다. 퍼즐을 맞추는 쾌감은 뭐라 설명해야 할까, 중독될 것 같았다. 도저히 감이 안 잡히는 첫 순간에 어떻게든 시작하고 뭔가 가닥이 보일 때, 그때가 재미의 시작이었다. 너무너무 복잡해 보이고 막막했는데 그 감정이 한순간 뒤집혔다. 하나둘 비슷한 것들끼리 모아두었다가 이거다 싶은 곳에 뒀을 때, 딱 맞아떨어진 순간의 짜릿함이란! 아무 생각 없이 이 조각 자리가 어딜까 하다 스친 곳에 쏙 들어가는 성취감이란! 그 쾌감을 뭐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마지막에 점점 속도가 올라가면서 최후의 한 조각을 맞추는 건 정말 뭐라 형용할 수가 없다. 최고의 스릴감이자 오락이었다. 오밀조밀한 조각들이 맞물려 커다란 그림을 만드는 게 그리 감동일 수가 없다. 꼬박 6시간을 매달려 맞추느라 몸은 뻐근하기 짝이 없었는데도. 내 관절이 비명을 질러도 몸에는 기쁨이 넘실거려 어쩔 줄 몰랐다.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연 기분이었다.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않은 걸 했을 때 느끼는 그 모든 감정의 파도란!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진 듯했다.      

퍼즐을 맞추면서 인생을 공부하는 것만 같았다. 뭔가 시작하면 아예 답이 없는 건 없다는 것. 예상치 못한 순간에 일이 풀릴 수도 있단 것. 어느 곳에나 맞지 않는 조각은 없으며 안 보이는 해답도 반드시 나온다는 것. 물론 얼마나 양가감정이 드는지 모른다. 이 조각이 들어가긴 하나 싶은 순간 들어간다. 얘는 어디에 맞는지 알겠다 싶었는데 막상 두면 감이 안 잡히기도 한다. 참 어려운데, 또 하나하나 맞춰지고 하는 순간이 재밌어서 계속한다. 모든 조각이 하나도 빠지지 않고 정확하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인생과 퍼즐이 아주 똑같다면 사람들이 그토록 힘들진 않을 텐데. 그래도 퍼즐이나 인생이나 ‘내’가 움직여 나가야지만 끝이 보인다는 건 좀 희망적이었다. 게다가 인생이 퍼즐이랑 다를 바 없다면 얼마나 무료할까.      


퍼즐은 처음 맞추는 순간이 가장 재밌고 흥미로운 법이다. 정해진 그림이기에 처음이 그토록 소중하다. 인생 역시 처음이 귀중하고 소중하지만, 그 최후의 그림은 알 수가 없다. 제각각의 색채가 모여 다채로운 끝을 만든다. 다시 맞출 수도 없고 한 번 놓인 조각은 뒤집거나 옮기기 힘들다. 누군가 한 말처럼, 인생은 하나의 게임이다. 가장 복잡하고 어렵고 무서운 게임. 동시에 제일 매력적이고 즐거운 게임. 이왕 하게 된 게임, 좀 지루하고 하기 싫어져도 결국엔 끝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그 조각들을 맞추는 시간을 즐겨야 하지 않겠는가. 

게임하는 도중에 새로이 알게 되는 쾌감을 놓치지 않길 바란다.

그러기엔 우리의 게임이 너무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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