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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Mar 09. 2021

시골도 도시도
행복의 조건은 아니다

도시와 시골, 귀농에 대하여

한때, 도시에서 벗어나는 게 큰 유행이었다. 도시의 무관심에 질려 시골로 떠나는 이들이 넘쳐났다. 귀농이란 이름으로 힐링이 대체되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새 귀농은, 시골로의 귀환은 절대 해서는 안 될 금기로 여겨진다. 우리나라에는 원래 유행이 아주 빠르고, 거세게 지나간다. 욜로 (YOLO)도 그랬고, 스몰웨딩도 그랬고, 대왕 카스테라와 벌집 아이스크림을 비롯한 수많은 음식이 그랬다. 워낙 ‘뒤떨어지는’ 걸 못 견디도록 학습해서일까? 인기와 유행에 민감한 우리나라의 분위기는 일상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귀농 역시 그 일부였다. 그런데 귀농은, 다른 것과는 달리 꽤 향토적인 냄새를 풍긴다. 별천지를 가는 것도 아니고 소박한 시골로 간다는 메시지여서 그런 걸까. 사람들은 역 환상을 품었고, 약간은 터무니없게 시골로 떠났다. 그게 문제였다. 그게 생각지도 못한 금기로 자리 잡은 시작점이었다.     


시골은 도시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사람이 없고, 푸른 기운이 가득하고, 원하는 제품을 제때 구하기도 힘들다. 대중교통도 잘 정비되어 있지 않고, 묘한 한가로움이 가득하다. 도시처럼 잽싸고 붐비지 않는다. 그건 사실이다. 인구를 봐도 시설물을 봐도 도시와 시골은 하늘과 땅 차이다. 하지만 그게 모든 면에서 대비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세상은 안타깝게도 이분법적으로 나뉘지 않는다. 선악이 명확하지 않다. 좋고 나쁨이 분명한 게 아니며, 검은색과 흰색 사이의 수많은 회색이 존재한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광경이다. 우리의 몸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머리카락이 딱 잘라 쇼트커트, 단발, 장발로 나뉘던가? ‘거지 존’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사람의 생활에도, 인생에도 그런 애매함이 살아있다. 살아가는 와중 그 무엇이든, 숫자처럼 딱 자르기는 힘들다. 사람들은 그 단순한 이치를 잊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들은 도시에 지쳐 있었다. 반복되는 피곤과 업무, 무미건조한 나날들에. 그들에게 어느새 사는 곳, 도시는 악이었다. 그렇기에, 도시의 반대인 시골은 선이었다. 그곳만 간다면 모든 것이 나아지리라 여겼을지도 모른다.      


모든 이가 그러진 않았을 것이다. 귀농에 대해 제대로 공부하고 계획한 사람도 있었을 거다. 실제로 귀농 유행이 사라진 지금도 귀농해 잘 지내는 사람도 많으니까. 대다수의 일이 그러하듯 개인차가 나타났을 뿐이다. 시골의 인생을 더 깊게 바라보고 간 사람과 휘둘려 얼떨결에 행동했던 사람. 혹은 더 철저히 궁리한 사람과 도피형으로 떠난 사람으로.      


시골은, 당연하게도 천국이 아니다. 선으로 가득 찬 곳도 아니다. 그곳도 도시와 다른 양상을 보일 뿐 사람이 사는 곳에 불과하다. 지극히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장소는 절대적인 기준을 제외하면 개인의 마음과 인식에 달려 있다. 그러니 어쩌면 시골은 최악의 환경일 수도 있다.     

 

귀농하고 환상이 깨진 것에 대해선 할 말이 없다.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과 대학 2년, 햇수로 치면 9년을 꼬박 시골에서 살았다. 그러니 도시에서 바라본 시골과 지방에 대한 환상은 나로선 잘 받아들이기 어렵다. 설명하기도 좀 곤란하다. 그저 귀농의 현재 모습과 시골에 관한 이야기를 내놓을 수 있을 뿐이다. 나는 거의 10년 가까이 시골에서 살았다. 내 인생의 반절보다 약간 안 되는 시간이다. 당연하게도 그때의 기억은 내게 생생하고, 많은 영향을 주었다. 내게 도시와 시골 중 어느 곳이 낫냐고 묻는다면, 나는 시골이라 하겠다. 하지만 서울 같은 대도시가 아니라면, 도시가 낫다. 이건 내 인생의 경험 때문에 나오는 이야기다.      


나는 재수를 서울에서 했었다. 그 기억은 내 태도와 성격을 개선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분명 없었을 것이다. 여러 가지로 성장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어서인지 원체 없던 끈기와 독기가 생겼다. 그 시간은 내게 전환점이었으며 새로운 출발이었다. 시간을 되돌린다 해도 경험해야만 하는 시간이랄까. 그 아래 깔린 괴로움까지도…. 그러나 그때, 나는 서울이란 곳에 제대로 질렸다. 아침 7시에 나와 2시간을 이동해 학원으로 가는 나날, 사람들은 멀미가 날 정도로 우글거렸으니 자연스러울 수도 있겠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혼자였던 나는 무서울 지경이었다. 독해지고 사람이 성장했다고 환경까지 좋아질 리 있는가. 그건 다른 이야기다. 도시의 무관심과 군중 속 고독, 너무 큰 건물과 도로는 지옥이었다. 그러니 내가 시골을 선호한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완벽한 선은 없다. 유토피아는 현실에서 찾기 힘들다. 평생을 걸어 만들어야 할 곳이지 찾아야 할 곳이 아니다. 시골은 그 나름의 단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기억도 잘 안 나는 초등학교를 제외하면 내 모든 학창 시절이 담긴 곳이다. 어릴 땐 몰랐는데, 머리가 조금 컸다고 눈에 거슬리는 게 많아졌다. 시골은 정말 좁다. 면적으로 좁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들의 관계가 좁다. 내가 무슨 일을 하면, 내가 모르는 누군가는 반드시 알고 있다. 말하자면, 익명성이 거의 부재한다. 그런 사회에서 눈에 거슬리거나 미친 것 같은 스캔들, 사건을 일으킨다면? 말이 시민이지 시민들 사이에선 거의 연예인이 된다. 내가 모르는 사람이 날 보고 인사하고, 흘끗흘끗 보는 게 흔하다. 그러니 결코 좋은 환경은 아니다. 둔한 편이 내가 이렇게 치를 떨 정도니, 예민한 친구들은 그걸 아주 싫어했다. 시골 자체를 싫어해 졸업 이후엔 오지도 않을 거라고 하기도 했다. 카페, 백화점, 시설이 없는 건 문제도 아니었다. 그까짓 거 도시로 놀러 가면 되는 일. 진짜 문제는 그런 폐쇄적인 분위기와 환경이었다.     


이렇게 보니 정말 극단적인 도시와 시골에서 살아봤구나 싶다. 세계적 도시인 서울에서, 인구 10만도 안 되는 시골에서. 너무 극과 극의 장소를 경험했기 때문일까? 지금은 중소도시에 살고 있는데, 꽤 만족스럽다. 나는 어디든 이사를 할 때, 3가지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그것만 충족된다면 다른 건 괜찮았다. 그 3가지는 도서관, 산, 물이었다. 도서관이 걸어서 있는 거리에 있어야 하고, 걸을 산이 있어야 하고, 놀 물이 있다면, 최고였다. 시골에선 바다가 있었고, 지금은 제천이 있어 만족스럽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도시든 시골이든 자신이 가장 원하는 걸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책을 정말 좋아한다. 사는 것보다 읽는 걸 좋아해서 도서관을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간다. 그래서 다른 이들은 무시해도 도서관의 존재는 내게 아주 중요하다. 산이나 물도 같은 맥락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가족끼리 자주 걷는 우리 집의 분위기는 그런 장소를 찾게 한다. 그런 곳에서 더 돈독해지기도 하고, 운동하며 기분 전환도 한다. 우리 집은 그런 곳을 아주 잘 써먹는다. 이런 ‘개인적 중요성’을 파악해야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게 제일이다. 그게 생활의 행복과 즐거움을 좌지우지한다!     


마음에 드는 곳에서 마음대로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나름 기준에 맞춘 곳에서, 조금 행복하게 살기도 쉽지 않다. 그러기 위해서는 도시냐 시골이냐가 아닌, 내가 원하는 게 어디서 충족되고 어디서 내가 행복한지 알아야 한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곳에서 지내길 원하는지. 그걸 통해서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일상을 찾게 될 수도 있다. 어딜 가든 행복한 게 결국 우리가 바라는 궁극적인 모습 아니던가. 

행복하려면, 원하는 걸 알고 그걸 함빡 누려보자.


그게 행복으로 안내해 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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