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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Mar 11. 2021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좋아하는 색이 뭔지

좋아하는 색, 분홍에 대하여


“좋아하는 색이 뭐니?”라는 질문은 누구나 한 번쯤 받아봤을 것이다. 정말 혈액형보다도 흔한 질문이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이 질문을 몹시 어려워했다. 어떤 색을 특별히 좋아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싫어하는 색이라면 몰라도.  

   

어릴 땐 분홍색을 정말 싫어했다. 분홍색이랑 비슷하다는 이유로 빨간 계열은 죄다 꺼렸다. 뭘 사든 간에 파란색을 골랐다. 옷이든 신발이든…. 내 그런 성향은 아주 뚜렷했다. 나만 알고 있는 선호가 아니라, 가족 모두가 알았다. 외할머니가 슬리퍼 하나를 사 오셔도 파란색으로 골라오실 정도였다. 정말 상상하기 힘든 광경이다. 가늠이 잘 안 된다. 누구나 지금 이 순간의 내 방을 본다면 같은 소감을 내뱉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의 내 주위엔 분홍색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마우스패드, 패브릭 포스터, 침구, 비녀, 가습기…. 아주 소소한 것부터 꽤 큰 부피를 차지하는 것까지 분홍색이 침투해있다. 물론 옷장에도 분홍색은 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토록 싫어했던 치마도 떡하니 걸려있다. 어린 시절과 비교해보면 같은 사람의 방이라곤 생각 못 할 정도다. 나부터가 달라진 변화를 아직도 낯설어할 정도니까. 분명히 내가 지금 좋아하는 색을 싫어했던 기억이 있다. 그것도 아주 확실히 내 의지로. 변덕스러운 취향을 가졌다면 그 차이를 더 쉽게 이해했을 텐데, 그도 아니다. 초등학교 시절 빠진 책을 아직도 좋아하는 걸 보면 내 취향은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아주 이상하고 유별난 일이다. 나는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많이 고민했다. 만약 이게 내 상황이 아니라면 그저 취향이 변했구나 싶었을 거다. 문제는 그게 내 상황이라는 점이었다. 내가 그 변화를 이해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취향이야 변할 수도 있지, 그렇지만 내가 선호하는 분야의 문제인데, 도대체 왜?      


그 답은 생각보단 단순했다. 내가 분홍색을 싫어했던 이유는 ‘다르고 싶어서’도 있었으니까. 같은 걸 싫어한 게 이유였다. 초등학교 시절만 해도 여자아이 대부분은 분홍색을 입었고 그걸 좋아했다. 나는 그렇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뭐랄까, 흔해지기 싫었다. 인형을 좋아하고 수다를 떠는 아이로 보이기를 질색했다. 중2병 같은 발언이지만 독특해지고 싶었던 아이였다. 달라 보이는 파란색을 신고 걸치면, 내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러니까 내가 파란색을 좋아하는 건 내 선호의 문제가 아니었다. 분홍색이 아닌 색이라면 다 괜찮았을 거다. 그저 파란색이 분홍색의 대척점과도 같았기에 선택되었을 뿐. 내게 분홍색은 평범하고 흔한 색이었다. 동시에 나와는 거리가 있는 색이었다. 예쁘고 치마를 입고, 인형 같은 걸 더 좋아하는 여자애들의 색깔. 나는 그 선 안에 들어가는 게 무서울 정도로 꺼려졌다. 분홍색을 좋아한다면 반드시 치마를 입고 얌전해야 할 것 같았다. 뛰어놀거나 책을 읽는 건 안 어울릴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울 정도로 지나친 비약이다. 안타깝게도 그걸 많은 세월이 흐르고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누가 그걸 나무랄 수 있을까. 어린아이의 사고는 대개 그런 흐름이기 마련이다. 나는 내 불안감을 표현하지 못했고, 다른 설명도 할 수 없었다. 대신, 다른 색을 선호한다고 밝혔다. 아이가 할 수 있는 건 그 정도였다.      


그런 시절은 참 오래갔다. 색깔의 무의미함을 깨달은 건 얼마 되지 않았다. 내가 무슨 색을 좋아하건 어떤 색으로 꾸미든 그건 개인의 자유일 뿐. 누가 누굴 판단하는 데 신경 쓸 만한 게 아니었다. 타인의 눈길이나 판단도 내가 그렇게까지 매달릴 이유가 없었다. 내 길은 내가 만들면서 가는 거니까. 타인의 시선에 내 길이 내려가거나 올라가진 않으니까. 시선은 그저 시선일 뿐이다. 나는 나 자신을 알아가는 게 느렸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생각은 많고 설명은 어려웠던 아이의 한계였다. 나에 대해 차차 알아가는 과정은 아직도 진행 중이지만 전혀 지겹지 않다. 내가 자주 보는 것, 자주 읽는 것, 더 눈길이 가는 것에 대한 이유를 생각해 보는 것도 흥미진진하기 짝이 없다. 그 과정에서 색에 대한 취향도 알게 되었다. 어릴 때야 흔한 걸 미치도록 피했지만, 이제는 어우러짐의 미학을 안다. 모두 화려하고 개성 있을 필요는 없다는 것도. 평범해 보이는 요소도 다 이유가 있다는 걸 안다. 은은한 색도 흐릿한 색도 전부. 그걸 알게 되어서일까? 아니면 천운일까? 튀는 색이 아닌, 은은한 색은 내가 타고난 피부와도 어울리는 편이었다. 그걸 알고 나서 ‘내가 좋아하는 색’이 뭔지 제대로 알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색은 분홍색이었다.      


어쩌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색이었기에, 분홍색에 대한 관념이 심하게 잡혀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분홍색은 좋은 색, 예쁜 색, 모범적이고 여성적이고 고운 아이가 쓰는 색으로. 대중적으로 쓰여 그런 관념이 이미 자리하기도 하지만, 그런 색깔에 대한 고정관념이 내게 크게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무서운 일이다. 태어난 지 10년 남짓 된 애가 그런 생각을 오래도 했다. 벗어난 게 신기할 지경이다.  

    

나는 이제 좋아하는 색을 물어보면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어떤 자리에 가서 그런 질문을 받으면 괜히 뿌듯해서 말할 것만 같다. 

만약 그런 사람을 본다면, 자신을 좀 더 알아서 기쁨이 새어 나오는 것이니 너무 밉게는 봐주지 않길 바란다. 나 자신을 아는 건 정말 어려운 일 아닌가. 

자신의 성찰에 성공한 사람이니, 마주 웃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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