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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Mar 12. 2021

주인공은 주인공이다

주인공과 조연에 대하여

나는 드라마든, 영화든, 소설이든, 대부분 주인공을 좋아한다. 주인공이 성격이 완전히 쓰레기이거나 이기적인 게 아니라면! 소위 ‘서브병’, ‘조연병’이라고 하는 주변 인물에 대한 열광은 나와는 먼 이야기였다. 아무리 명품 조연이래도 주인공의 자릴 대신할 순 없었다. 주인공의 이야기만 봐도 주변보다 훨씬 깊고 넓다. 애초에 그 인물의 행동과 심리가 이야기 자체나 마찬가지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다. 물론 짧은 이야기만으로도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조연도 있다. 그렇지만 종국엔 주인공이 제일 끌린다.     


그 이유를 묻는다면 한마디로 답하겠다. 주인공은 남다른 존재이기 때문이다. 혼자 후광을 내뿜는 것처럼 유일하고 멋있는 인물! 그런 사람을 좋아하지 않기란 어렵지 않은가. 아무리 평범한 사람 같은 인상을 주어도 주인공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느낌이다. 강하고 굳센 사람이랄까. 사실, 주인공은 모아두면 놀라울 정도로 비슷비슷하다. 지금 당장 떠오르는 주인공들만 봐도 그 점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주인공의 모습은 눈 감고도 그려낼 수 있다. 비슷한 표정에 비슷한 신념들. 정의의 편인 존재들. 그게 학교를 배경으로 하던, 도깨비와 싸우는 옛 시대건, 초능력으로 싸우던 그들은 언제나 선의 편이다. 어떤 고난이 있어도 반드시 이겨내고 만다. 현실이나 위험에 굴복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래야 한다. 다른 이들의 시선을 잡아끌어야 하니까. 모든 이의 공감을 받아야 하는 존재니까. 아무리 동료가 생기고 비슷한 처지인 사람이 있어도 주인공은 주인공이어야 한다.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나야 주인공이라는 게 한눈에 보이니 말이다. 뭔가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거나, 의외의 면모를 보여주거나…. 어찌 되었든 뛰어난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 그래야 그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게 자연스러워지니까. 그런 면이 주인공의 유일무이한 특성이다. 그건 내겐 좋은 쪽으로 작용했지만, 누군가에겐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주변 인물이나 캐릭터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면 왜 주인공을 좋아하지 않는지 알 수 있다. 주인공의 특성에 부정적으로 반응한 경우다. 주인공을 싫어하면, 대부분 조연이라는 인물이 더 강렬하고 매력 있어서일 때가 많다. 주인공이 덜 좋은데 더 많은 이야기가 나오니 불만이 생기는 것이다. 나도 가끔은 주인공보다 주변 인물을 더 좋아하기도 해서, 그 마음을 이해한다. 주변 인물은 정말 다채롭다. 주인공보다도 신경 쓸 요소가 적어서인지, 성장 환경부터 외모까지 폭이 넓다. 주인공처럼 한눈에 보이는 특색은 없을지언정 그 개성이 있고, 입체적이다. 그들은 주인공과 달리 마냥 빛나지 않는다. 못난 구석도 있고 반드시 정의롭지도 않다. 세상을 마냥 밝게 보지도 않고, 때론 무너진다. 염세적이고 계산적인 면모도 보인다. 그런 모습은 주인공보다 현실적이라 그런지, 인간적인 매력을 선사한다. 냉정하게 바라보면 같은 이야기 속 주인공은 중심이고, 조연은 그 주변에 불과하다. 시선을 유도하는 건 주인공 쪽인데, 그 주변에 더 시선이 쏠리기도 하는 건 뭐라 설명해야 할까. 너무 빛나는 존재가 너무 이상적이라, 호감을 일으키지 못한다고 해야 할까? 되려 그런 이상적인 인물 옆에 있는 조연이 더 눈에 들어오는 건, 감정이입이 더 잘 되어서일 수도 있다. 주인공에게 열등감을 느끼기도 하고 부족한 면도 있고 무너지기도 하는 건 평범한 사람들의 일생과 참 닮았으니까. 독자이자, 제삼자인 우리가 이해하기엔 조연이 더 알맞아서일지도 모르겠다. 영웅은 영웅이다. 사람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초월한 존재, 때론 신격화되기도 하는 존재로 여겨지지 내 주위에서 살아 숨 쉬는 존재일 거라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그런 존재가 너무 많아서 사람들이 조연에게 시선을 두게 된 걸지도 모르겠다. 도저히 영웅이나 신의 마음은 알 수가 없으니까. 자신들이 믿고 따라갈 존재가 아니라, 자신들과 공감해주는 존재가 더 필요해진 순간에 조연의 위치가 달라진 것 같다.      


이렇게 얘기하니 조연보다 주인공을 좋아하는 게 이상하게 느껴진다. 우리가 공감할 수 있고, 더 현실적이고, 매력도 확실한 존재를 왜 더 좋아하지 않느냐고 의문이 솟구치는 느낌이다. 그런데 나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주인공이 주인공이라 좋다. 그 말은, 주인공의 정의로운 모습과 선한 모습이 아무리 비현실적이어도 힘이 된다는 소리다. 인물에 대한 이해나 감정이입은 조연이 더 우월하다. 그러나 그뿐이다. 내가 위로를 받는 건 조연의 모습이 아니다. 아무리 조연의 모습이 매력적이어도, 그 광채는 한계가 있다. 마지막까지 가는 건 주인공이니까. 주인공은 어떤 고난이든 이겨낸다. 어떻게든 바르게 나아간다. 쉬운 길도 아닌데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주어진 길을 걸어 나간다. 자기 주변의 조연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주변이 무너져도 기필코 목적한 바를 이루고, 자신의 신념을 관철해 나간다. 정말이지 이상적인 존재다. 가볍게 볼 수 없는 인물이다. 위대하고 귀한 사람. 그런 교과서적인 모습은 숭고함과 존경심을 불러일으키지 않던가. 그렇게 진심으로 우러난 감정은 내가 일상을 버티게, 조금 더 굳세게 살 수 있게 도와준다.   


어쩌면 사람들은 세상을 살다가 지쳐서 주인공의 모습을 공감하지 못한 걸지도 모른다. 이렇게 힘든데 너무 긍정적으로만 행동해서 힘들다는 한탄을 엄살이라고 치부하게 할까 봐. 함께 힘들어하는 조연에게, 그래서 더 시선이 가는 걸 수도 있다. 주인공의 인생은 내 인생이 아니다 싶어서. 나의 모습은 조연, 아주 작은 역할이라고 생각해서. 하지만 알아둬야 한다. 세상에서 조연이냐 주인공이냐는 무의미하다. 우리가 보는 주인공은 그 사람에게 초점을 맞췄을 뿐, 조연이 주연으로 나오는 이야기도 분명 존재할 테니까. 주인공이 아닌 존재는 없다. 그저 이야기에서 누구에 더 초점을 맞추었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모두는 주인공이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존재를 나는 더 높게 친다. 아주 개인적인 견해다. 대체로 많이 나타나는 주인공의 모습은 영웅의 전설이나 기록적인 신화처럼 믿음직스럽다. 세상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문제가 일어나서 그런지, 그런 존재는 점점 더 위대해 보인다. 선한 사람으로 남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 염세적이고 현실에 수긍하는 건 쉬운 일이다. 혼란과 불의에 맞서는 건 만만치 않다. 그게 주인공의 진정한 힘이고, 앞을 보여주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난세일수록 영웅이 나타난다고 하는데, 지금의 감상도 그런 맥락에서 나오는 걸까? 그런 멋진 모습을 보다 보면, 아주 조금은 내가 선한 사람이 될 용기가 생긴다. 현실의 문제에, 잘못된 일에 바르게 대처할 용기가. 금방 꺾어질 약한 새싹에 불과하다 해도, 언제고 그 자리는 새싹의 자리일 거고, 그걸 잊는 일은 없을 것이다. 주인공이라는 인물이, 이야기가, 인간상이 있는 한.

주인공이 줄 법한 영향이다. 진정한 주인공의 존재 의의 일지도 모른다.


참 멋있다. 마음에 든다. 주인공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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