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윤 Mar 15. 2021

알고 있어도 나아가야 하는 법

자연스러운 두려움에 대하여

나는 무서운 게 정말 정말 많다. 귀신도 무섭고 누군가의 분노도 무섭고 벌레도 무섭고 어쩔 땐 개도 무섭다. 타고나길 간이 작아서, 담이 작아서일까. 한 번도 ‘난 무서운 거 없어!’, ‘난 겁 안 나!’라고 한 적이 없다. 단 한 번도! 어릴 때보다야 그런 무서움이 많이 줄었다지만 겁이 많은 건 여전하다. 그래서인지 무서운 게 없다, 겁이 없다, 간이 크다는 사람들이 참 신기했다. 나와는 다른 종족 같았다. 대체 뭐가 다르지? 아예 시스템 구조가 틀려먹었나? 어떻게 그렇게 대담하고 거침없는지 공감할 수가 없었다. 신비의 존재와 다를 게 있으랴. 그들은 대개 자신감이 넘쳤고 당당한 모습이었다. 괜히 그 분위기에 눌려 더욱 소심해졌던 기억이 생생하다. 나와는 다른 태도와 분위기를 지녔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런 사람들이 칭찬과 환호를 받아서일까. 꽤 오래 ‘무서운 게 없는 사람’을 동경했다.     


그러나 어느샌가 세상에서는 그런 사람이 참 많아졌다. 겁이 없고 무서운 게 없다며 자기 자신을 치켜세우는 사람들이 차고 넘쳤다. 물론 실제로 겁이 없을 수도 있는 일이다. 타고나길 간이 클 수도 있고 그걸 자랑스러워할 수도 있다. 내가 한때나마 동경했던 대상은, 유령의 집이나 귀신 따위에 겁을 먹지 않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그런 걸 무서워하지만, 평소에 그런 점에 대해 무섭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진정 무서운 건 가난이나, 범죄나, 오해 같은 것들 아닌가. 귀신이 있다고 한들 죄를 짓지 않았다면 두려워할 것까진 없다. 존재를 목격하면 놀라기야 하겠지만, 그뿐이다. 그 혼이 나한테 한이 맺힌 게 아닌데 뭐하러. 벌레도 일단 어떻게든 퇴치하고 나면 괜찮아진다. 사나운 개도 안 보면 그만이다. 하지만 가난이나 범죄는, 그렇게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대처하기 어려운 고통이고 사건들이다. 만일 그런 상황에 부닥치게 된다면 어떻게 이겨내야 하고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 매일 그 점을 눈앞에 둔 것처럼 명심하는 건 아니지만 마음 한편엔 항상 그런 두려움에 대한 그늘이 있다. 대부분이 그런 두려움을 알 것이다. 너무 신경 쓸 필요는 없다고 할지언정, 그걸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걸 이상하게 여기진 않을 테니까. 누구라도 그런 상황에 놓일 수 있는 법이니 말이다. 그런데 아주 가끔 그런 두려움을 이해 못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자기는 무서운 게 없다고 한다. 무서울 게 없으니 눈치 볼 필요도 없고 세상을 편히 산다고들 떵떵거린다. 환경이 넉넉하다면 그래, 그럴 수 있다. 드문 일이지만 늘 성공해 실패라곤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해도 말이 된다. 당당하게 무서운 게 없다고 말하는 건 조금은 부럽다. 그렇지만 이내 좀 불쾌해진다. 물론 자신의 길만을 바라보는 건 나쁘지 않다. 자신이 가지고 태어났거나, 운이 좋은 점이나, 열심히 한 대가를 누리는 것 역시도 좋은 일이다. 그럼 대체 왜 불쾌함이 일어나느냐고 의문이 들지도 모르겠다. 단순한 시기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과연 아래를 봤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사람이 매번 성공하거나 계속해서 행복할 수는 없다. ‘언제나 행복했고, 언제나 겁이 없으려면’ 경험이 없거나, 생각이 부족하거나 둘 중 하나다. 두려운 것도 무서운 것도 없는 사람은 아이에 불과하다. 사실 무서운 게 뭔지, 두려운 게 뭔지 밝히기 제일 힘든 시기이자 제일 그런 점에 있어 패기가 넘치는 시기가 유년 시절 아니던가. 아이는 자신이 제일이고,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간다. 경험도 부족하기에 실패를 잘 모른다. ‘알지 못하기에’ 무서운 게 없는 것이다. 그건 나이를 먹는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무서운 게 없다면 아는 게 없는 거다. 자기가 힘들거나 두려운 경험은 피했다면. 혹은 자신 이외의 사람이나 상황에 대해 그다지 생각하지 않았다면. 다시 말해, 아는 걸 피했다면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두려운 게 없을 수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무서운 게 없는 사람’이 아니다. 아이의 패기를 동경하는 사람이 있던가! 진짜 무서움과 두려움을 ‘알고’ 그건 별 게 아니라 이겨야 하는 대상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존경할 만한 사람이다. 진실로 무서운 게 없는 담대한 사람이다. 뭐가 무섭고 두려운지 알면서도 무너지지 않고 이겨내려고 하는 사람이니까. 그러나 아는 걸 회피하는 사람이라면 덜 큰 사람이다. 성장하기를 피하려는 사람과 다를 바 없다. 나이를 먹고, 실력이 늘려면 따라오는 고통이 있기 마련이다. 그걸 아프다는 이유로 다 피하려고만 하면 못 클 수밖에. 자연히 이루어지는 성장은 없다.      


대담한 태도와 적당한 자신감은 언제나 부럽다. 나는 대담하기보단 소심하기에 언젠가 대담한 모습이 자연스러울 정도로 바뀌고 싶다. 그러나 유념해야 한다. 무서운 게 없다는 게 반드시 좋은 이야기는 아니다. 현실의 이면을, 고통을, 성장통을 아는지 모르는지는 큰 차이니까. 두려움을 알아 겁이 많고 무서운 게 많은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 누가 알지 못하고, 아픈 일을 반기겠는가. 계속해서 겁만 먹으며 그 자리에 있느냐, 혹은 두려움에 그 길을 아예 외면하느냐, 아니면 겁먹은 채로도 나아가 끝내는 이겨내느냐의 다름일 뿐이다. 나는 아직 무서워 쭈뼛쭈뼛하며 시작점 근처에 있다. 앞으로 가지 않는 사람들의 자신 넘치는 소리에 흔들릴 때도 있지만, 언젠가는 그 끝에 도착해 모든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길 바란다. 그 정도로 강해지길 바란다. 멈춰 있는 사람도 아직 시작점에 오지 못한 사람도 먼저 가고 있는 사람도 모두 그러하길 소망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꽤 굳건해지고 단단해져서 어떤 어려움에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주인공은 주인공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