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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Mar 16. 2021

강자가 너그러운 게 아니라
너그러워 강자가 된 것이다

<강자의 조건-이주희>를 읽고

  

‘강자’란 얼마나 어려운 칭호인지 모른다. 자기 자신이나 나라를 스스로 강자라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특히 강대국, 제국의 경우는 더 드물다. 온갖 역사를 뒤져도 얼마 없는 사례가 제국이다. 거대한 영토와 놀라운 문화 발전, 혁신적인 발상… 피부에 잘 와 닿지 않을 정도로 중요한 토대가 된 것이 제국이 아니던가. 그때를 생각해보면 오히려 지금이 퇴보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자유롭고 강했던 시절에 비하면 너무도 초라해 보여서일까? 그저 구관이 명관이라고, 과거가 더 아름답게 보이는 것뿐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옛날의 제국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정복의 역사나 전쟁의 승리 때문이 아니다. 그들이 가졌던 마음가짐과 정신에 그 가치가 있다.      


아마 모르고 지나가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기야 누가 제국이 가난한 기반에서 시작했다고 생각할까. 다들 부유하고 든든한 배경과 많은 인구의 힘으로 제국이 나왔다고 여길 거다! 굳이 옛날로 갈 필요도 없다. 오늘날 성공한 사람을 보라. 사람들은 그 사람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바로 옆에 있는 가족도 속을 모르는데 타인이야 오죽할까. 그런데도 대중은 분명 좋은 환경과 좋은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게 틀림없다고 얘기한다. 실제로 아닌 예도 존재한다. 분명 존재한다! 그저 대중들이 그 배경에 대해 더 집중할 뿐이다. 물론 격차가 커서 성공하지 않는 게 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렇지만 비슷한 배경의 사람에 대한 무관심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자신과 유사한 상황인데도 성공한 사람에 대한 인정하기가 어려워서일 수도 있다. 비슷한 환경이라면 자신이 못난 것일 뿐이라는 결과가 나오기 때문일까. 사실 모두가 안다. 개인차란 것은 존재한다. 비슷한 환경이어도 누구는 교수가 되고 누구는 범죄자가 되듯이. 이럴 때 우리는 환경보다 개인의 특성을 주목해야 한다.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지만, 그것만이 세상의 진리라면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격언도 없었을 거다. 나라도 마찬가지다. 영토가 넓다고 제국은 아니다. 그런 식이면 러시아는 옛적에 미국의 위상을 차지했어야 한다. 종교의 발상지이거나, 종교가 독실하다고 제국이 될 순 없다. 그럼 종교 재판이 그토록 비판받았을 리가. 똑똑한 사람이 많다고, 돈이 많다고 제국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 원리면 유대인이 이미 제국을 세웠을 거다. 이쯤 되면 제국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도대체 어떤 조건을 갖춰야 제국이 나오는가? 답은 아주 단순하다. 제국은 아주 자유로운 관용의 나라였고, 차별하지 않는 곳이었다.     


가장 첫 제국인 로마를 보자. 로마가 카르타고와 전쟁을 했다는 건 유명한 사실이다. 한니발이란 천재가 있었다는 것도 말이다. 로마는 그때 한니발에 대패했고, 한니발 역시 알렉산더를 따라 로마를 이길 것이라 여겼다. 그 결과는 지금까지도 입에 오르내린다. 로마의 승리는 어떻게 가능했던가? 로마의 자유가 그 해답이었다. 당시 제국은 국경이 없는 영토로서의 제국이 아니었다. 맹주가 있고 가맹국이 있는 구조였다. 따라서 맹주가 계속 패하여 가망이 없으면 가맹국은 이기고 있는 맹주에게로 넘어갔다. 이는 배신도 뭣도 아니었다. 맹주를 붙잡고만 있으면 나라가 망했을 것이고, 속국도 아닌 그저 가맹국이었기에 그걸 막을 수 있는 방도도 마땅치 않았다. 한니발은 그걸 노렸다. 스페인에서 자리를 잡은 가문에서 시작해 알프스를 건너, 로마의 가맹국부터 치기 시작한 것이다. 알프스를 넘은 군사는 당연히 정예의 군사였다. 그런 병사들이 한니발의 지휘에 따라 맹렬히 공격했고 그 저력이 드러났다. 그 위세는 대단해서 길이길이 남을 ‘칸나이 전투’라는 기록이 세워질 정도였다. 부족한 병력을 채우는 지략과 뛰어난 기병들, 그 과정에서 항복한 가맹국들의 동맹군까지. 로마는 무너지기 직전의 위기로 보였다. 그걸 본 사람은 누구나 같은 생각이었으리라. ‘여기서 로마가 멸망하는구나.’ 하지만 한니발은 알렉산더 대왕이 되지 못했다. 로마는 페르시아가 아니었다. 같은 연합국이었지만 로마는 그 차원이 달랐다. 로마는 누구나 시민권이 있었다. 가문이나 출신에 따른 차별도 없었다. 그 사람이 어떤 곳에서 왔든 실력이 있다면 원로원에도 오를 수 있었다. 그게 로마의 위상이었고 다른 특성이었다. 가맹국에게 로마는 단순한 맹주국이 아닌 조국으로 인지되었다. 위태한 로마 대신 카르타고를 선택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럴 수 있었던 배경은 로마의 시초에서부터 내려왔다. 로물루스부터 내려온 포용력의 메시지는 멈추지 않았다. 중요한 건 내가 남들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상대적 우월감이 아니었다. 절대적으로 지금보다 더 나은 상태로 발전할 수 있다면 남들에게 좋은 것이 나에게도 좋은 것이라는 관념이었다! 도덕적인 문제가 아니라, 철저히 실용주의적인 면에서 나와 내 공동체가 나아지는 데 상대방이 이로운 게 낫다면 그렇게 실행한 것이다. 1+1이 3의 시너지를 일으킨 것에 집중한 거라고 볼 수 있다. 바로 직전의 적국이었던 나라의 사람이어도 뛰어나다면 다음 전쟁의 총사령관이 되었다. 그게 모두를 위한, 즉 로마를 위한 방도였다면 누구나 제 자리에 앉았다. 그게 로마를 버티게 했고, 이기게 했고, 제국으로 남게 했다. 참으로 이상적이다.     


혹 로마의 방식이 쉽다고 생각하는가?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부디 성찰해보자. 당장 우리나라만 하더라고 얼마나 썩은 기득권이 많았던가. 안동 김 씨, 평양 조 씨, 같은 한민족이었어도 이리 성에 따라 차별이 심했었다. 열린 문? 그런 게 있었던가. 유리천장은 조선 시대에도 존재했다. 신라는 가야 귀족을 차별했고, 성골 진골이 있었고, 고려를 비롯해 조선 때까지도 북방 민족에 대한, 국가에 대한 취급이 매우 낮았다. 이는 한반도의 특성으로 위아래에서 공격받았던 걸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때의 생각과 방식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고 본다면… 우리나라는 전으로도 후로도 제국은 될 수 없을 테다. 성장하는 나라는 못 될 것이다. 그러니 로마가 정말 신기하고 놀라운 생각과 태도를 보인 걸 누가 부정하겠는가. 승자가 모든 걸 가지고 패자는 다 죽던 시절이다. 그걸 모두 넘어선 모습은 제국의 등장 이유를 보여준다. 예나 지금이나 쉽지 않은 게 용서와 포용이 아닌가. 그 고대에 이미 관용의 유토피아는 구현되었던 걸지도 모른다.   

  

로마만이 그런 태도를 취한 건 아니었다. 네덜란드는 관용과 포용으로 위기를 딛고 최초로 경제 제국이 된 국가다. 의아해할 수도 있으나, 최초의 주식회사와 동인도회사가 네덜란드에서 시작했다는 걸 생각해보라. 그 옛날 일본에도, 지금의 뉴욕에도, 브라질에도 네덜란드의 회사가 있었다. 그건 네덜란드에 기술이 있고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군사력이 아닌 경제력으로 세계의 정상에 올랐던 나라였으니까. 이 뒤에도 로마 제국과 같은 환경이 있었다. 스페인의 펠리페 2세가 종교 재판을 열고 탄압하자, 네덜란드가 이에 반발했었다. 본래 스페인이 아닌 펠리페 2세에게 반발한 것으로 독립의 성격을 크게 띠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갈수록 종교 탄압이 심해지고 자유가 억압되자 점점 독립 전쟁의 모습이 나오게 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전쟁은 두 국가의 운명을 바꿨다. 신대륙을 발견하고 수많은 황금을 가져오던 스페인은 유대인들과 기술자들을 내쫓은 탓에 그 황금을 운용하지 못했다. 탄압에 반발한 전쟁은 계속되었고, 영국과의 해전에서도 패했다. 내리막 길뿐이었다. 오르막길에 있는 건 스페인과 싸웠던 네덜란드. 영토의 크기도 권세도 경제력도 상대가 되지 않았었지만, 독립 전쟁을 하면서 종교의 관용을 원칙으로 세운 것이 신의 한 수였다. 합법적으로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 적어도 그 시절에 유럽에서는 가장 자유로운 나라. 그런 나라로 철학자, 금융가, 기술자가 모일 수밖에 없었다. 스페인에서 왕실의 자금을 운용하던 유대인들도, 기술자들도 다들 네덜란드로 갔다. 그들의 움직임에 따라 국가의 흥망이 결정되었다. 그들이 가는 나라는 그때 그 순간 가장 핍박받고 억압받았던 사람들조차 환영받을 수 있는 나라다. 그런 나라라면 누가 싫어할까. 모두가 미래가 있다고 여기고 살고자 했을 거다. 그런 분위기 아래 성장은 당연지사. 데카르트를 비롯한 철학이 발달했고, 렘브란트 같은 화가가 활동했다. 궁리 끝에 나온 특유의 선박과 투자 회사라는 독특한 방식이 그 성장 속도를 촉진했다. 전 유럽이 그들의 배를 이용했고, 네덜란드는 저절로 돈을 벌었다. 언제나 작은 나라였던 저지대 국가, 네덜란드의 위상은 경제적 제국이라는 위상이었다. 타고나길 상인들의 핏줄이었던 걸까. 무엇이 이득인지 아주 잘 파악해낸 결단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우리는 때로 의견 주장만을 성대하게 취급한다. 의견은 표현해야 하는 것으로, 상대의 의견은 나보다 못한 것으로 여긴다. 타협과 관용은 어리석은 약자의 것으로 나오기도 한다. 이러한 경쟁과 승리 의식은 이미 문제시된 지 오래다. 슬슬 이쯤이면 우리도 다른 태도를 보여 봐야 하지 않을까? 관용과 개방은 우리의 선입견처럼 힘없는 자들의 얼마 없는 선택지가 아니다. 오히려 강자들의 숨겨진 조건이요, 공통점이다. 

진정 세계에서 우리가 발전하고 나아가길 소망한다면 갈 길은 아주 명확하다. 

실제로 행동에 옮기지 않더라도 타국을 배척하는, 굳건하고 투명한 민족주의 정신 따윈 버려야 한다. 

이미 세계는 ‘전 세계’가 된 지 오래다. 세상은 한 영토나 국가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지구 전체가 한 세상이다. 우주 일부마저도 세상이 되었다.

넓게 생각하자. 어떻게 로마는 한니발이란 명장에 맞설 수 있었는지. 

어떻게 저지대 국가인 네덜란드가 경제 제국이 될 수 있었는지. 

이미 우리 손에는 방법도, 사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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