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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Mar 22. 2021

그 짧은 길이
어쩌면 자유의 갈망일지도

지름길과 자유에 대하여

지름길을 걸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지름길이란, 아주 단순한 길이다. 멀리 돌지 않는 길이자 가장 쉽고 빠른 길. 그 길은 잔디밭을 가로지르기도 하고 경사진 곳에 생기기도 한다. 그 길은 유독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보인다. 아무리 짧은 길이어도 우리나라에선 반드시 지름길이 생기는 것 같다. 심할 땐 공원의 한 골목길에서만 3, 4개의 지름길이 나 있다. 일부러 만든 길이 아니라 사람들이 지나다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흙길이 말이다. 한국인의 ‘빨리빨리’가 그런 짧은 길에서도 나타나는 걸까?  

   

생각해보면 지름길에 대한 거부감은 신기할 정도로 없다. 지름길을 만든다는 건 본래 난 길 대신에 다른 길을 간다는 이야기다. 말하자면 중간에 잔디를 밟기도 하고, 화단을 건너기도 하는 그런 길. 그러니 어떻게 보면 좋은 방식이 아니다. 괜히 험하게 가는 길일 수도 있다. 때로 길을 걷다 보면 “똑바로 가라”라는 보호자의 음성이 심심찮게 들리지 않던가? 걱정 서린 그 목소릴 우린 낯설어하지 않는다. 아이 때부터 지름길을 간 적이 있어서일까. 경험을 한 자의 공감이자 추억일지도 모른다. 왜 그토록 지름길이 많이 생겨날까? 그런 특성을 모를 건축가, 조경사들이 아니다. 어느 정도는 계산해 새로 만들 텐데 변하는 것이 없다. 지름길은 계속 만들어진다. 지름길이 없던 적이 있긴 했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이유가 뭘까? 그저 성격이 급해서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을까?     


‘빨리빨리’ 문화라고도 하는 급한 성격도 무시할 순 없다. 어느 정도는 그 성격이 지름길을 만드는 이유를 차지할 것이다. 누군가는 눈앞에 보이는 도착지를 빙 돌아갈 이유를 찾지 못해서. 또 누구는 더 빠르게 가려면 지름길로 가야 해서…. 시간에 쫓길수록, 귀찮음을 느낄수록 지름길은 더 많이, 자주 생기는 셈이다. 하지만 그것뿐이진 않은 것 같다.     


너무 깊게 들어간 것일 수도 있지만, 지름길이 조금 자유를 주어서는 아닐까? 지름길은 우리가 만들 수 있다. 주어진 길이 아니라 때론 거칠고 지저분하다. 돌부리가 있기도 하고 울퉁불퉁해 걷기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름길을 걸어본 적이 있다면 알 것이다. 지름길을 걷는 게 포장된 도로를 걷는 것보다 훨씬 기분이 좋다. 꼭 포장됐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도 아니다. 산길이라 한들 조금 더 거칠고 풀이 많은 길이 더 신난다. 누가 가라고 한 것도 아닌데 꼭 한 번 갔다 오게 된다. 나아진 기분은 덤이다. 그 이유가, 자유로운 길이어서 그런 건 아닐까. 사람들은 사막이나 평원에 가면 막막해진다고들 한다. 너무 넓고, 길 하나 없어서 어디로 가야 할질 모르겠다고. 아무 길도 나 있지 않다면 그건 아주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좀 무섭기도 하고 방향조차 헷갈리기 마련이니까. 그게 느끼는 전부라면 사람들은 그런 곳에 아무도 안 갈 것이다. 두려움과 함께 상쾌함과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어 그런 장소를 찾는 것이다. 주어진 길, 만들어진 길이 가득한 도시에서 벗어나서, 자유를 느끼기 위해서! 자유롭다는 게 얼마나 큰 매력인지 좀 이해되지 않는가. 

     

나는 지름길이 그런 식으로 짧은 자유를 선사하기에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자유는 몇 초, 몇 분에 불과하다. 그 찰나의 순간이 그렇게도 의미가 있느냐고 물을 수도 있다. 그 정도로 잠시의 시간이니까. 참 설명하기도 이해하기도 어려운 요소다. 다행이라면 세상에서 유일한 요소는 아니라는 점일까. 제일 대중적이고 공감하기 좋은 것으로 학교의 쉬는 시간을 꼽겠다. 쉬는 시간은 단 10분뿐이다. 정말 눈 깜짝하면 지나는 시간이다. 그 시간을 주고 뭘 하라는 거냐고 따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정말이지, 수업을 하는 40, 50분에 비하면 코딱지만 한 시간이다. 그런데 신기한 건 그 시간을 아주 황금처럼 누린다는 점이다. 그리 드문 이야기도 아니다. 학창 시절을 떠올려 보라! 화장실도 갔다 오고 이야기도 하고 매점도 다녀오고, 어쩔 땐 몇 층을 올라야 하는 도서관도 갔다 온다. 이해가 안 될 정도로 많은 것이 가능했다. 어쩔 땐 싸우고 화해하고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이 모두 쉬는 시간 안에 이루어지기도 했다! 정말 그 유명한 헤르미온느의 시계처럼 시간을 조절되는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그런 게 현실에 없다는 건 잘 알지 않는가. 현실에서의 답은 하나다. 그저 우리가 느끼고 써먹는 밀도가 다를 뿐이다. 계속 공부하고 앉아 있어야 하는 수업과 달리 쉬는 시간은 자유의 시간이 아니던가. 그 시간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학생이 있긴 했을까. 그 자유를 누리고자 달리고 빠르게 돌아다니다 보니 그 모든 게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짧은 자유였어도 추억 대부분을 차지하고 빛나게 느껴지는 게 아닐까.     


시간의 길고 짧음은 자유의 매력을 해치지 못한다. 어느 정도의 자유는 사람을 매어두는 족쇄 역할을 하기도 할 정도니까. 어쩌면 획일화된 우리나라에서 지름길이 아직도 나오고 있는 건 사람들의 답답함이 표출된 것일지도 모른다. 주어진 의무, 사회의 시선, 개인적인 짐과 한정된 삶의 경로들 때문에. 조금이라도 해소하고 싶거나 자유를 누리고 싶어서….      


그러니 혹 지름길을 몇 번 거닐었다면 자신을 한번 되새겨보는 게 어떨까. 어쩌면 생각보다 우리는 지쳐있을지도 모른다. 자유가 간절히 필요한 상태일지도 모른다. 잠시 쉬어간다고 해서, 잠시 자유롭게 하고픈 걸 한다고 해서 세상은 뒤집히지 않는다. 우주의 먼지에 불과한 우리가 아닌가. 조금 자유롭게 사는 게 먼지다운 것일지, 누가 알까! 자유는 언제나 공기처럼 우리의 곁에 있다. 그걸 잡느냐, 안 잡느냐의 선택일 뿐이다.     

 

찬란한 자유의 시간을 위하여! 모두가 자유의 행복을 느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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