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윤 Mar 19. 2021

직업보다는 인생이 더 좋더라고요

직업과 인생, 행복에 대하여

어느 프로그램에서 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죽을 때 뭘 가지고 있길 원하나요?”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게 뭔지 바라볼 수 있는 질문이었다. 사람들과 함께 각자 자신이 죽을 때 뭘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는지 썼다. 일고 여덟쯤 되는 그 요소들은 빠르게 나오기도 하고 좀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그렇지만 다 마음에 흡족한 요소들이었다. 하나하나가 소중해서 부디 내가 나중에 정말 생을 마무리할 때 이걸 갖추길 바랐으니까. 내 최종적인 소원이나 다름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중 명확히 생각나는 건 하나도 없지만. 조금은 아쉬운 일이다. 되려 명확히 기억나는 건 오히려 내가 쓰지 않은 요소다. 나는 그때 거의 유일하게 ‘직업’에 대한 소망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망하는 경제적 여유, 일상, 모습은 있어도 직업적 성취에 대한 건 없었다. 내가 쓴 책이라거나 그린 그림의 가치라거나…. 다른 사람의 이야길 듣기 전까지 직업에 대해선 생각나지도 않았다. 내게 직업은 일생에 걸쳐 이뤄야 할 업적이나, 소망이 아니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다른 것보다 우선순위도 아니었다. 그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가 제일 어려웠다. 내가 미처 몰랐던 내 모습인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걸, 실은 그리 중요치 않게 여기고 있었다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나는 그 질문에 답하기가 어려웠다. 내가 평소 직업을 무의미하게 여겼다면 더 쉬웠을지도 모른다. 그 반대로 평소 직업이 아주 소중하다고 생각했기에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직업은 내 일상을 지탱하는 일이다. 그걸 넘어 내 생각과 정체성을 확립하는 활동이기도 하다. ‘내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싶어 하느냐’는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가’와 근접한 질문이었다. 개인이 혼자 자신을 책임지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 뒤에는 개인이 직업을 가지는 것 역시도 지극히 당연하다는 게 깔려있다. 그게 자아실현을 위해서든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든 개인의 성장을 위해서든 말이다. 그러니 인생에서 직업은 빼려야 뺄 수가 없다. 산소와 물과 음식과 옷 따위가 기초적인 생존을 위해 필요하지 않던가. 그와 같은 이유에서다. 사회적인 생존을 위해선 직업이 꼭 필요하니까! 인생의 의무나 다름없는 직업이 아닌가. 나조차도 내가 왜 직업에 대한 열망과 깊은 소망이 없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더군다나 내가 성취보다 과정을 사랑하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과정도 사랑하지만, 성취를 훨씬 더 아낀다. 변하지 않는 흔적이자 내가 무언갈 했다는 증거 겸 표창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면을 고치고자 노력할 정도로 나는 성취 주의적 성격이 강하다. 직업은 그런 면에서 아주 최적의 분야다. 전문적이며 업적을 인정해주는 분야가 아닌가. 한 회사에서 1년만 버틴대도 퇴직금이 나온다. 보낸 시간이 헛되지 않다고 인정해주는 것이다. 그러니 내 성취 주의적인 면을 보면 내가 직업에 대해 열광적이지 않은 게 이상할 지경이었다. 오히려 더 탐구하고 빠져들고, 구체적인 계획을 생각해둬야 자연스러울 텐데….     


나는 그 점에 대해 꽤 오래 고찰했다. 직업적 성공보다 내가 바란 게 무엇인지,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에 대해서. 우리의 의식보다 무의식은 훨씬 더 강력하다. 그러니 그런 과정을 겪지 않으면 나조차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다행히 대부분의 무의식 성찰은 많은 깨달음을 선물한다. 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건 성취가 맞았다, 하지만 그게 직업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는 결론 같은 걸 말이다. 이 말이 좀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성취를 원하지만 그게 직업에 대한 건 아니라니? 이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꽤 간단하다. 많은 이들이 잊고 있을 것 같아 짚어둔다. 성취는 반드시 업적으로만 남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유명한 상을 받는 것이나 직업적인 면에서 기록으로 남길 소망하진 않는다. 어쩌면 반쯤 포기일지도 모르지만 그게 반드시 존재했으면 하진 않는다. 그보다는 다른 성취를 원한다. 그리 특별한 건 아니다. 그저 내가 소망하는 인생의 모습을 살고 싶다. 노년에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는 모습, 그런 일상을 누리는 내 인생을 말이다. 그게 내가 원하는 성취다. 딱히 뚜렷하게 흔적이 남는 건 아니지만 누가 보더라도 “잘 사네”라고 할 수 있는 모습. 하루하루를 즐거워하며 시간을 탐닉하는 나날. 얼핏 보면 누구나 맞이하는 결말 같아도 그리 원만하진 않은 길의 종착점을 누리고 싶을 뿐이다. 그 결말만 내가 누릴 수 있다면 나는 어떤 경로든 괜찮다고 보는 것이다. 어떤 직업을 통해서 가든 개의치 않는다. 물론 도덕적이고 양심적인 직업에 국한해서 말이다. 공무원이든 작가든 프리랜서든… 다 상관없다. 가는 길의 아름다움이 아깝지 않으냐고 할지도 모른다. 그 길에서만 보이는 게 있고 그건 내 안에 쌓여 사라지지 않는 도움이 될 테니까. 하지만 그건 내가 일상의 조절과 취미로 누릴 수 있다. 그걸 좀 아쉬워하더라도 제일 희망하는 건 도착지의 아름다움이니까, 그리 아쉽지 않다.     


직업은 정말 중요한 결정이다.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모든 이의 인생 목표가 되어선 안 된다. 직업은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그게 인생을 다 좌지우지하진 않는다. 같은 직업을 가졌어도 삶의 모습은 다른 법이다. 중요한 건 어떤 사람이 되느냐, 어떤 인생을 살고자 하느냐가 아닐까. 나는 내가 원하는 일상이, 인생이 직업보다 더 중요했다. 그 사실을 지금 알아서 다행이다. 그걸 모르고 살아가는 것과 인지하고 나아가는 건 천지 차이니까. 남은 건 이제 그 목표를 향해서 하루하루를 다지고 노력하며 사는 것이다. 그 과정도 쉬운 건 아니지만, 적어도 하릴없는 여정이 아니다. 그게 얼마나 의지가 되는지 모른다! 나는 이제 웬만한 일엔 흔들리지 않을 것 같다. 그런 삶의 목표를 찾기가 어디 쉬운가! 많은 사람이 직업에만 목표를 두고 살아간다. 그로 인해 성취에도 불구하고 허탈해하고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부디 사람들이 직업보다 인생을 바라보며 보다 만족스러운 시간을, 세월을 보내길 소망한다. 

적어도 내 경험상, 그건 생각보다 우리에게 행복을 줄 테니까.     

작가의 이전글 계속 그럴 줄 알았는데 변하더라고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