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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Apr 01. 2021

#3. 수능이 끝나고

슬기로운 재수 생활, 수능의 결과 그 후


유명한 명언이 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이 말은 비단 가정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었다. 아주 개인적인 수험에도 적용되는 말이었다!      


수능이 끝나면 학생들의 표정이 어떤지 아시는가? 잘 본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다. 묘하게 평온하기도 하고 웃음을 짓기도 한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그때는 아주 표현하기 어려워진다! 우는 아이, 인상을 잔뜩 찌푸린 아이, 애써 어색한 웃음을 짓는 아이…. 불행의 다채로움이란 끝이 없는데 행복의 보편성이란 어느 때나 적용된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점은 서로 그걸 살필 정신이 없다는 점이다. 나 역시 다시 수능을 볼 때가 돼서야 그런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할 틈도 없었다. 수능을 치고 나왔는데 끝난 것 같지가 않았다. 아무 준비도 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못 했는데, 모든 것이 끝난 기분이었다. 언감생심 시험을 잘 봤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 시험이 하필 수능인 것이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수능이 끝나고 제일 힘든 게 무엇이었느냐고 묻는다면 한 치의 망설임도 필요 없다. 아주 분명하고 정확하게 말할 수 있다. 부모님께 수능 가채점 점수를 알리는 거라고 말이다. 그건 정말이지 채점하면서 느낀 절망감과는 차원이 달랐다. 하하, 점수야 내 잘못이다, 하면서 넘길 수 있었다. 내가 한 일이니까. 그렇지만 날 지원해주신 부모님에게 그걸 전하는 건 끔찍했다! 세상에서 모든 불효를 그러모아 내가 된 걸까? 점수를 전하는 상황만 피할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마음이 무럭무럭 샘솟았다. 수능을 목요일에 치는 게 금요일에 상태가 안 좋은 학생을 조사하기 위해서라던 이야기가 있던데. 완전히 헛소리도 아니구나 싶었다. 그래, 내일 학교도 안 가는 상태였더라면 정말 무슨 일이 있었을지 모른다. 그 순간만큼 충동적인 마음이 샘솟는 때는 없으리라. 돌이켜봐도 놀랍고 소름이 끼칠 정도다. 한순간의 충동은 얼마나 위험하고 알기 어려운가! 어리석은, 한순간의 선택이라고들 하지만 그 선택은 오랜 시간 동안 쌓인 환경 위에서 피어난 것이다. 그걸 단지 그 순간 때문이라고만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런 충동은 마음속에서 충돌했다. 그 충돌의 여파가 너무 커서 몸은 그저 무기력하게 머리만 싸매고 있었다. 마음이 어지러운 걸 배우들은 머리를 누르고, 머리를 감싸는 거로 표현하더니. 과연 허투루 나온 게 아니었다. 자연스럽다는 말을 듣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머리가 아프다는 말과 마음이 어지럽다, 복잡하다는 걸 진심으로 느꼈다. 뭐라 형용할 수 없지만… 그 고통과 감정만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때의 점수는 기억도 안 나는데 그 순간의 비참하고 서글픈 감상은 여전하다. 수능이 망했다고 우울해하거나, 세상이 망한 것처럼 굴지 말라는 말이 스쳐 지나갔다. 물론 도움이 되진 않았다.     

 

흥! 쓸데없는 소리! 당신들도 수능이 망했다면 분명 이런 상태였을 걸! 그래, 세상은 망하지 않겠지. 내가 속한 세상이 나에게 가혹해져서 세상이 망한 것처럼 보일 뿐이겠지!     

 

괜한 원망이 한차례에서 그치지 않고 샘솟기를 반복했다. 그 과정은 부모님께 결과를 말씀드릴 때까지 변하지 않았다. 계속 이러고 있을 순 없었으니까. 일생일대의 결심을 하고 안방 문을 두드렸다. 반쯤 울먹이는 목소리로 내뱉듯이 결과를 전하고 바로 문을 닫았다. 안방은 불이 꺼져 있어 어두웠고, 나는 그게 너무 고마웠다. 그 어둠에 나는 부모님의 표정을 볼 수 없었으니까. 그만큼 어둠이 반가운 적이 없었다. 내 방에 누워 홀로 눈물 흘릴 때도 어둠이 고마웠다. 밝은 햇살도 빛도 다 싫었다. 인생에서 가장 어두운 시간을 꼽으라면 그때를 꼽을 것이다. 어두운 시간은 그다지 특별한 시간이 아니다. 그저 빛보다 어둠을 더 편하게 느낄 정도로 힘든 시간일 뿐이다. 다만 그때의 나는 그걸 몰랐다. 그래서 아주 흔한 소망이지만, 내일 해가 뜨지 않게 해달라고 빌면서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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