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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Apr 05. 2021

고흐는 그런 사람이었다

<빈센트 반 고흐, 새벽을 깨우다-박찬운>을 읽고

빈센트 반 고흐! 그 유명한 화가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 유명한 인상주의 화가는 예술에 문외한인 사람이라도 알기 마련이다. 예민한 성격, 외로운 생애, 동생과의 우애까지. 다만 그 유명세 때문인지, 나는 오랫동안 고흐라는 사람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의 그림은 아름답고 강렬했지만 그뿐이었다. 그를 ‘아는’ 것 이상으로 그가 궁금하지 않았다. 그런 내가 어느 순간 고흐에 대한 책을 집어 든 건 뭐라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갑자기 고흐라는 화가에 대해 호기심이 일었다. 그렇게 고흐를 진정으로 만나게 되었다.     


그를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분명한 건, 그는 평생 고독 속에 살았다. 아버지와 다퉜고 남동생을 제외하고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사랑하고자 하는 사람이었고 본인이 스스로 알 정도였으나 이루어지지도 못했다. 황량한 삶이라면 황량한 삶이었고 생활이었으리라. 그의 찬란한 화폭이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그는 외로워했다. 다른 화가들처럼 예민해서 타인을 싫어한 사람이 아니라 너무 사람을 좋아해서 고독에 예민했던 사람이었다. 그 고통은 그를 평생 괴롭혔고, 종국엔 광증에 가까운 발작이 올 정도였다. 자신 스스로가 그걸 알고 있었다. 그 두려움과 아픔을 뭐라고 형용할 수 있을까? 차라리 자신의 상태조차 눈치채지 못했다면 좀 더 나았을 것을. 그는 정신병원의 모습을 그릴 정도로 또렷했다. 끊임없이 나아가고자 했고 자유를 꿈꿨다. 그림을 그리는 순간만은 아프지 않다던 고흐. 아이러니하게도 그 고통은 그를 이끌어 화가로서의 성장을 이룩했다. 고독이라는 그늘 안에서 그는 환한 빛을 자아내는 직공이었다. 빛 아래에서는 그늘이 잘 눈에 띄지 않는다. 환한 빛만이 주위에 가득할 뿐이다. 그러나 그늘 안에서는, 빛의 세계가 참으로 찬란하다. 그래서 어두운 곳에서 본 밝은 세계는 어쩌면 실제보다도 더욱 아름답다. 고흐의 그림이 그러했다. 저자는 그리 평가했다. 고흐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직시하고 멈춘 사람이 아니라 예술로 승화시킨 사람이라고. 그의 생애를 알고, 그의 그림의 이면을 본 사람이라면 그 말에 동감할 수밖에 없다. 그는 독 안에서 바라보는 태양을 그리는 사람이었다. 고독은 그가 제일 싫어하고 두려워한 것이었지만 그의 평생 친구였다.     


그래, 고독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이렇게 말하면 그는 사랑 따위 못했던 것처럼 느껴진다. 아주 그냥 외롭고 지독하게만 지낸 사람처럼. 우리는 안다! 그런 게 아니라는 걸. 고흐는 평생 사랑했다. 아무것도 그의 사랑을 멈추진 못했다. 고흐의 사랑은 자연이든 가족이든 여성이든 가리지 않았다. 그는 타오르는 불꽃같은 사람이라서 뭐든 열정적이었다. 해바라기만 하여도 그의 사랑이 보이지 않는가. 태양을 바라보는 광채의 꽃, 그는 그 꽃을 새로운 시작의 장식으로 결정할 정도로 좋아했고 사랑했다. 그가 현실 세계를 내려다본다면 지금쯤은 기뻐할지도 모른다. 자신이 그렇게 좋아한 해바라기가 자신의 상징처럼 되었으니 말이다. 안타까운 건 그런 열정이 여성에겐 통하지 않았다는 점일까. 그의 그림을 보면 여성에 대한 시선이 보인다. 때론 따스하고 때론 가엾고, 그래서 분개하고, 또 때론 새롭고 아름다운…. 비록 한 번도 여성과의 교제에 아름다운 끝을 맞이하지 못했지만, 그는 한 번의 고통으로 사랑을 멈추지는 않았다. 누가 보기엔 미련할지 몰라도, 그는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라는 걸 느꼈던 걸까? 사랑하는 게 운명이었고 숙명이었기에 자신도 조절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사랑을 평생 했다고 해서 마냥 한량인 것도 아니었다. 그는 노동자였다. 독실한 신자는 아니었으나 그게 믿음이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교회 목사인 아버지와 다른 믿음을 지녔을 뿐 그는 확고하고 굳건한 믿음이 있었다. 그는 신을 바라보지 않았다. 고흐는 밀레를 아버지라 칭했을 정도로 선망했다. 밀레가 처음 나막신을 신고 농부들의 모습을 그렸기 때문이다. 노동과 노동자, 농부의 일처럼 자신 역시 그림을 그려 노동한다고 할 정도였다. 그가 얼마나 노동을 숭고하게 여겼는지 느껴지지 않는가? 그의 그림 속도를 보면 성실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생래미 정신병원에 있을 때조차 그는 1년에 150점을 그렸다. 이틀에 한 점 수준이다. 고흐라고 하면 강렬하고 열정적이며, 좀 미쳐있었던 가엾은 화가라는 인식이 만연하다. 그가 이렇게 성실하고 꾸준한 사람이었다는 건 그 열정의 선입견에 가려있는 것이다.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의 그림 중 내 시선을 가장 잡아끈 건 그의 자화상들과 <구름 낀 하늘 아래의 밀밭>이라는 그림이다. 사실 구름 낀 하늘 아래의 밀밭은 다른 그림보다 상당히 고요하다. 강렬하지 않고 그의 분위기가 드러나는 편도 아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게, 그 사실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평생을 평탄하게 살지 못한 화가의 애환이 담겨있는 것만 같았다. 정적이 느껴지는 평화가 너무나도 아름답고 소중하게 그려져서 눈물이 나왔다. 풍경으로 그려낸 그의 자화상이나 다름없이 느껴졌다. 그가 밀밭을 인간의 생애로 본 걸 보면, 정말 그가 바란 그의 인생일지도 모른다. 그런 나날을 원했으나 끝내 오지 않은 나날을 그림으로라도 남겨보고자 한 건 아닐까. 겉모습이 아닌 내면을 그려낸 자화상. 담고 있는 게 아닌 보고 있는 걸 그려낸 초상. 고통을 눈으로 쏟아내는 그의 자화상처럼 그 풍경화는 고흐의 목소리가 생생했다.   

   

그는 예민하고, 열정적이었으며, 사랑이 가득했고 성실한 화가였다. 그런 자신을 알았으며 벗어나고자 노력도 했고 끊임없이 미래를 그렸다. 그의 그런 모습과 생애는 먼 이야기로 느껴지지 않는다. 힘든 순간은 언젠가 반드시 오기 마련이다. 그때 직면한 우리의 고통은 고흐의 붓질 너머에 화려하게 묻힌다. 고통스러웠던 화가의 예술적인 승화가 관람자들의 고통도 승화시켜 주는 셈이다. 고흐는 그런 사람이었다. 

고통을 그저 피하지도 않고 그런 자신도 외면하지 않고 어떻게든 이겨내려 한 사람. 

힘들었으나 그 삶을 살아내고, 아름다움을 사랑했던 사람. 

그를 이제라도 알아서 기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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