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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Apr 06. 2021

#5. 주민등록증의 중요성

슬기로운 재수 생활, 재수와 주민등록증, 외로움과 사회에 대하여


재수의 초입을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내 친구들은 다 대학의 새내기 명칭을 달고 다니는 동안 얻은 재수생이란 호칭을 달았을 때. 그때의 기분은 정말이지… 더러웠다. 그리고 끔찍했다.     


누군가에게 뒤처지는 기분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세상에 있는 부정적인 수식어는 다 가져다 붙일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어떤 단어든 간에! 그늘이란 그늘은 다 짊어지고, 어둠이란 어둠은 다 내 편인 듯 막막하고 무서운 느낌이었다. 더군다나 익숙한 곳도 아니고, 서울이었다. 한 나라의 수도라는 말에 걸맞게 복잡한 도시. 아는 사람 만나기도 어렵고 사람 하나 찾기는 더 어려운 곳. 군중에 짓눌려 기가 꺾이는 것만 같았다. 그저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스칠 뿐인데 힘들었다.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랄까. 쉼 없이 옮겨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토할 것 같다고 생각한 건 처음이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버스 한 번 타거나 여차하면 걸어 다녔던 수험생에겐 그 모두가 독이었다. 눈이 핑핑 도는데 휘말리거나 늦출 수도 없었다. 놀러 온 것이라면 모를까, 학원에 가고 집에 가야 하는 수험생은 그럴 수 없는 법이다. 처음 들어간 재수학원의 분위기나 미묘한 옆 학생들, 공부에 대한 부담과 함께 서울의 그런 압박은 혹독하게 재수의 신고식을 치러 주었다.   

  

군중 속 고독. 그 단어를 제대로 체감할 수 있었다. 사람은 그렇게 많은데,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학원에 가질 않으면 익숙한 사람도 찾기 힘드니 당연지사였다. 그 위기감은 발끝에 넘실넘실 차오르곤 했다. 외로움과 스트레스가 함께 겹치니 막막했다. 고독의 진정한 고통이 무엇인지 알려주겠다고 내게 덤비는 것 같았다. 아는 사람 없는 게 뭐가 문제냐고 할지도 모른다. 공부하는데 친구는 없을수록 좋지 않냐고. 공부에 집중을 못 한 게 아니냐고 말이다. 나는 친구까진 바라지도 않았다. 같은 학교 교복을 보면 낯선 사람이라도 좀 누그러지지 않던가. 그런 마음 편함을 소망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한 달쯤 지났던 때였다. 그때 나는 왕복 3시간가량의 통학을 하고 있어, 늘 버스와 지하철을 오갔다. 그 긴긴 시간을 보내는 건 공부보다도 고역이었다. 핸드폰은 당연히 없었고 mp3도 없어 자거나 생각을 하거나 둘 중 하나로 버텨야 했다. 그러다 문득 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몸은 고되고, 정신은 피폐하고. 기분을 전환할 건 없고 기댈만한 구석도 마땅치 않다. 주변 어른들한테 속내를 털어놓을 수도 없었다. 걱정만 살 테니까. 벌써 우는소릴 하긴… 민망하고 죄송했다. 눈물이 새어 나오는 건 당연한 순서였다. 내가 이대로 살면 한 번쯤은 쓰러지겠다 싶었다. 수험생활에 이를 악물고 버텨야 하니 몸이 힘든 건 1년 내내 그럴 것이다. 그럼 정말 구급차에 실릴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 생각까지 하는데, 우습게도 한 의문이 치솟았다.     


내가 쓰러지면, 누가 날 병원에 데려가지.     


병원에 가더라도 내가 누군지 알아야 치료비를 받을 것 아닌가. 그게 아니더라도 연락이 갈 것이고. 만에 하나 쓰러지면 기절할 수도 있는데 내가 의식이 없으면 얼마나 곤혹스러울까. 도움을 받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면 어떡하나. 서울엔, 날 아는 사람 하나 없다. 내 신분이라도 알려주는 게 있어야 한다. 나는 그런 결론에 도달했다. 정말 쓰러질 것만 같은 나날에 내가 아파도, 쓰러져도 누구의 도움도 바랄 수도 요청할 수도 없다는 게 너무 소름 끼쳤다. 무서운 일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정말 이루어진다면, 만약에 그렇다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이 매섭게 치밀었다.      


그 의문에 대한 답은 아주 간절했다. 다행히 구하기 어려운 것도, 해답이 안 나온 것도 아니라서 바로 대책을 세울 수 있었다. 부모님과 한 달 만에 만났을 때 MP3와 함께 주민등록증을 요청했다. 내가 쓰러지면, 적어도 내 신분은 알 수 있게. 그게 내가 주민등록증을 처음 소중하게 여긴 순간이었다. 그때부터 비로소 재수가 어떤 생활인지 실감한 것 같기도 하다. 그 기억 때문에 아직도 주민등록증은 늘 내 지갑에 함께한다. 어딜 가든지 웬만하면 들고 다닌다. 워낙에 힘겨움에 몰렸을 때 택한 방도여서 그런 걸까? 그 작은 카드의 무게는 꽤 존재감이 크다. 작은 사각형 안에 그때 느낀 외로움과 신변의 중요성을 모두 담고 있는 것만 같다. 함부로 대할 수도 없게. 어쩌면 내가 진정으로 재수에서 얻은 건 그런 감정의 경험일지도 모른다. 사회에서 내가 어떤 존재인지 배울 수 있는 상황이었달까…. 그렇게 생각하면 꽤 괜찮은 기억이다. 조금 서러울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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