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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Apr 07. 2021

#6. 재수학원

슬기로운 재수 생활, 이상하게도 향수를 느끼는 재수학원에 대하여


재수학원이라고 하면 어떤 풍경이 떠오르는가? 

수십 명의 학생이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필기하는 모습? 아니면 냉랭하고 침울한 분위기?      


어느 쪽이든, 절대 밝고 긍정적으로 다가오진 않는다. 애당초 학원이란 곳이 그리 해맑은 곳은 아니니 당연한 이야기일 수도. 다만 나는 그런 분위기를 제일 싫어했다. 그게 내가 재수학원을 선택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물론 그렇다고, 터무니없는 조건을 요구한 건 아니다. 너무 많은 학생이 다니는 곳이 아닐 것, 지나치게 냉랭한 곳이 아닐 것 정도다. 이 둘에 해당하는 곳이 아주 유명한 학원이라서 대학에 와서도 그 학원 출신 학생을 만날 수 있을 지경이었는데, 그 인기와는 상관없이 절대 그 학원은 가지 않겠노라 마음먹었었다. 내가 싫어하는 학원의 표본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학원 출신인 한 언니는 말하기를 경쟁이 너무 심해서 무서웠다고 증언했다. 시험을 보고 들어와, 성적별로 반을 나누고, 월말평가 때마다 반이 바뀌는 구조가 살 떨리기엔 딱 맞았다고. 그 이야길 듣고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 얼마나 안도했는지 모른다. 내가 다닌 학원은 그와 비슷했지만, 규모가 작아서 그런지 좀 더 사람 사는 곳 같았으니까. 희한하게도 내가 다닌 재수학원의 광경은 여전히 또렷하다. 몇 년 지나지 않았으니, 좀 더 시간이 흐르면 또 모르지만, 아직은 선명하기 짝이 없다. 금방이라도 구조와 색감, 어떤 인상인지까지 읊을 수 있다.     


작은 학원이었다. 그렇다 해도 서울, 그중에서도 이름 자자한 대치동에 있는 학원이라 꽤 비쌌다. 5층과 3층이 학원이었고, 3층은 교실 5층은 자습실이었다. 자습실에는 발코니가 딸려 있어 많은 이들에게, 아니 거의 모든 사람에게 환영받았다. 그리 잘 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종일 안 나가보는 사람은 아주 드물었다. 남학생 구역, 여학생 구역이 암암리에 나뉘어 있을 정도로 인기였으니까…. 공부하고 자습하고 수업 듣고 하는 단조로운 나날에 발코니는 아주 상쾌한 숨통이어서, 때론 한숨 쉬고 때론 수다 떨며 하루를 버티는 장소로 위안을 주곤 했다. 점심을 그곳에서 먹기도 했고, 저녁을 먹고 간식을 먹으며 쉰 기억은 그 어둡고 흐린 시기에도 참 밝게 남아있다. 늘 밝은 건 아니었어도 ‘언제나’ 어둡진 않은 나날임을 증명해주어서인지, 그때의 발코니는 때때로 그립다. 거기에 다녀오면 괜찮아질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한다.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그 공간이 내게 자리 잡을 줄 몰랐다. 딱딱하고 촌스러운 모눈 바닥, 스테인리스 난간은 그다지 정을 붙이지 못할 분위기였는데.      

자습실은 칸이 나뉘어 있지 않아서 서로의 동태를 다 알 수 있었다. 널찍한 교실 하나에 1인용 책상 여러 개가 있는 구조였는데, 답답하진 않았지만 한 명에게 일이 생기면 전체에 파란이 일어나 사람을 예민해지게 만들었다. 코피가 나거나, 잠들어 코를 건다거나 하면 적어도 3분은 분위기가 소란했다. 차라리 뒷문이 있다면 모를까, 문은 하나였고 심지어 정면에 있었다. 한가운데 앞문이니, 누군가 들락날락하면 바로 느껴졌고 신경이 쏠렸다. 화장실을 가는 사람을 한정해도 그 문이 닫힐 때마다 몇몇 아이들은 인상을 찌푸리곤 했다. 나 역시 집중이 깨지는 걸 느끼면 절로 눈이 매서워졌다. 그 날카로움은 쉬는 시간까지 앙금으로 남아있기도 했다. 친구들이 그걸 보고 ‘사람 하나 죽일 것 같은 눈빛’이라며 진정하라 할 정도였다. 물론 단점이 있으면 장점이 있기 마련이라, 그 구조는 주변인이 신경 쓰여 어떻게든 공부하게 했다. 적어도 내겐 그런 역할을 톡톡히 해주어 공부에 마냥 나쁜 구조는 아니었다.     


그리고 사실, 자습실은 내게 좀 다른 의미로 공부를 자극한 공간이었다. 명절이나 휴일 때 자습실을 열어두는 건 드문 일이 아니다. 직장인들은 쉬어도 재수생들은 못 쉬는 날, 몇몇 학생은 지금을 누리겠다고 나가는 날. 그런 날에 나는 제일 먼저 자습실을 여는 쾌감을 알았다. 제일 멀리서 오지만, 그래서 가장 먼저 학원에 오는 건 내가 1년간 지킨 행동이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공부할 수 있었으니까. 그걸 지키려고 노력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와 지하철이 지각하지 않는 한 나와 비슷하게 오는 사람은 없다는 걸 알았다. 그건 휴일이라고 다르지 않아서 언제쯤 와야 하나 가늠하고 있을 때 선생님이 귀띔해주셨다. 어차피 제일 먼저 올 건 너일 테니 자습실 비밀번호를 알려주시겠다 하신 게 아직도 기쁘다. 내 성실함으로 얻은 첫 특권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나는 선생님보다도 일찍 가서 문을 열고 제일 마지막에 나오며 문을 닫곤 했다. 그 기묘한 쾌감과 성취감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정말 짜릿하고 공부할 맛이 나는 순간이었다.      


3층의 교실은 일찍 온다는 점에서 자습실과 비슷한 성취를 줬다. 첫 학생이 알 수 있는 아직 냉랭한 공기와 미묘하게 어수선한 순간. 학생들을 반기기 직전의 순간을 잊기란 어렵다. 아침으로 산 빵을 뜯으며 기출문제를 풀고 괜히 이리저리 돌아다녔던 건, 작은 학원이었기에 가능한 특권이었고 자유였다. 돌이켜보면 조금 안쓰러울 지경인데 참 그것 하나만으로도 기분이 나아졌다. 내가 단순한 사람이라서 다행이었다. 교실은 총 5개였는데, 하나는 A반, 하나는 B반, 하나는 교무실, 두 개는 선생님들의 자습 공간이었다. B반이 더 많아서 더 컸지만, A반이 햇살이 더 잘 들어와서 좋았다. 군만두 넣어주는 틈처럼 작은 창인데도 바람이 제법 불어서 활력을 선물해주곤 했으니까.      


만약 그 학원이나, 그 장소가 아니었다면 나는 더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장소의 중요성을 처음 느낀 곳이 그곳일 정도였으니까. 내가 지낸, 내가 다닌 그곳이 있었던 것에 감사한다. 그때 그 학원이 잘 나갔던 것도 포함해서! 그 이후에 학원에 방문했을 때, 학원은 자습실이 닫힌 상태여서 그 옛 정취를 찾을 수가 없었다. 아쉬웠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듯, 향수는 다가가지 못할 때 더 그 멋이 있다고들 하지 않던가. 

내게 그 학원은 그렇게 남을 공간인가 보다.

고맙고, 다행이고, 다사다난한 추억이 있는 향수의 공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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