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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Apr 09. 2021

#7. 재수라도 친구는 있어야지

슬기로운 재수 생활, 수험 생활의 친구에 대하여


수험 생활이 시작되는 순간 선생님들한테서 터져 나오는 말이 있다. 

장담컨대, 이 말을 안 들어본 수험생은 드물 것이다.     


“오늘의 친구는 내일의 적이다” 

“네가 딴짓하는 동안 친구는 앞선다” 

“친구 만들 생각하지 말고 공부만 해라”     


하나같이 친구에 대한 경계다. 내가 여고인 탓인지, 그 말은 유독 많았다. 내가 논다고 친구가 노는 것 아니며, 친구가 놀자고 꼬신다고 넘어가면 안 된다고, 친구와 거리를 두라고. 정말 어려운 이야기다. 솔직히 고3이 되기 전까지, 친구는 늘 환영받는다. 친구가 많은 아이는 착하고 좋은 아이로, 친구가 적은 아이는 문제가 있는 아이로 볼 정도로. 하지만 수능 공부가 시작되는 순간 그 생각은 모두 없어진다. 친구는 결국 경쟁자에 불과한 존재로 추락한다. 지금까지 친구를 만들고, 많이 사귀라고 했으면서. 나는 이 급작스러운 변화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 수능 중요하다. 그런데 그렇다고 그렇게까지 표현할 필요가 있나! 그런 말을 들으면 영 껄끄러워진다. 평소 하던 얘기를 평소 만나던 친구와 해도, 내가 뭔가 수험생답지 않다고 느낀다. 설사 재수하지 않으려면 친구와 한마디도 하면 안 된다고 해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친구가 어디 그냥 ‘만나면 쓸데없는 일만 하는’ 사이라던가? 친구라는 존재는 가족이 해줄 수 없는 걸 채워주는 사이다. 같이 동시대에 비슷한 세대로 함께 나아가는 관계. 이게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경우인데, 그걸 마냥 딴짓으로 취급할 수 있는 걸까? 사실 친구는 힘들 때 제일 빛을 발한다. 수험 생활 때 서로 이야길 나누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걸 떠올려보길. 그 시간이 아무리 짧았어도 그런 기억은 잘 잊히지 않기 마련이다. 제대로 힘이 나니까. 더군다나 그런 틈이 없으면 버티기 힘들어진다. 그 틈이 아주 조금씩이라도 괜찮다. 정해진 휴식을 취한 학생과 하나도 안 쉬고 계속한 학생은 다른 양상을 보인다. 기계도 지쳐서 오류가 나고 톱니바퀴가 닳는 법 아닌가. 기계가 아닌 사람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무적의 사람이라고 해도, 아무리 독한 결심을 했다고 해도 지치는 순간은 온다. 신체적이든 심리적이든, 어떤 형태로든 한계는 존재한다. 사람이 계속 쉬지 않고 걸을 수는 없다. 공부도 마찬가지라, 도중에 숨 쉴 구멍이 있어야 한다. 매일매일 쌓이는 스트레스와 부담과 걱정 따위를 리셋하는 시기 말이다. 그리고 그 순간에 가장 효과적인 건 친구다.     


물론 수험 생활에 왜 그토록 친구를 멀리하라고 하는지는 이해한다. 사람은 나 말고 다른 사람이 힘들다고 하면 조금 안심하기 마련이니까. 그로 인해 조금 성적이 떨어지고, 조금 집중력이 떨어지고, 조금 더 약해지면서 조금 더 낮은 대학에 갈 수도 있으니 나오는 말이다. 그뿐인가. 수험생 시기는 가장 예민한 시기다. 암만 성격 좋고 느긋하다고 해도 아무 갈등 없이 지나가긴 힘든 시기란 말이다. 그러니, 친구 간에 갈등이 생기는 건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가족 간에도 가장 날이 선 시기인데 친구 사이라고 다를까. 더군다나 같은 수험생이면 열등감이나, 질투심이나, 불안감 등으로 더 힘겨운 나날이 될 수도 있다. 가뜩이나 힘든 시기인데 친구와의 갈등으로 머리가 복잡해지면 좋을 건 하나도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문제는 막을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마치 눈에 안 보이는 폭탄이 제각각의 속도로 도화선을 불태우는 것 같달까. 이런 모든 문제점의 해결은 단 하나다. 애초에 문제의 실마리를 주지 않는 것. 친구와 아예 멀리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는 것. 하하, 수험생일 때 정말 친구와 멀리하라는 게 싫었는데 이젠 납득이 돼서 슬프다. 친구와 좀 떨어지는 건 잔인하게 느껴질지라도 효과적이다. 고작해야 2년을 수험으로 보낸 나도 이게 보이는데, 몇 년, 심하면 십 년이 넘는 시간을 수험생을 보면서 살아오신 선생님들에겐 얼마나 그게 눈에 선하시겠는가. 저렇게 계속 있으면 좋은 결과가 안 나올 거라는 게 느껴져서 나오는 말일 테다. 어어, 쟤네 저러면 안 되는데, 저러다 큰일 나는데 싶은 마음으로. 그러니 참… 어렵다.     


나는 그 말을 고3 시절엔 아주 제대로 어겼다. 친구들과 연락을 시시때때로 했고 쉬는 시간이면 놀기도 잦았으니…. 그때는 내가 수험생이란 이유로 젊은 시절의 자유를 억제당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다. 재수 때는 그래 내가 어리석었다 싶었지만. 그렇다고 재수 때 친구가 없었던 건 아니다. 3월에는 아는 사람 하나 없어 너무 힘들었기 때문일까. 3월 말쯤 친구가 생겼었고, 어울리는 무리가 만들어졌다. 사실 학원 안에서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비슷한 또래를 모아 놓고서 절대 사이좋게 지내지 말라고 하는 건 고양이 앞의 생선보다도 지키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솔직히 만들어진 여러 무리 중에 아… 저 사람들 저렇게 만나면 안 될 것 같은데, 싶은 사람도 여럿이었다. 하지만 같은 수험생으로서 할 수 있는 게 없었으니, 그런 관계로 보이지 않기 위해 더 공부에 임했다. 서로 스터디도 같이 하고, 자극도 주면서 대학에 간 이후에도 연락했다. 몇몇은 연락이 끊겼지만, 그때 그 친구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 시간을 못 버텼을 것이다. 정말 고맙다. 서로 응원도 하고 위로도 하고, 간식도 주고 공부도 하면서 보낸 시간에 감사한다. 그래서 나는 친구랑은 멀어야 수험 생활이 제대로 된다고는 주장할 수 없다. 아예 떨어지면 나처럼 힘든 사람도 있으니까. 암만 재수 아닌 죄수래도 친구는 있어야 하는 법이다! 


다만, 훗날에 그 시간을 돌이켜봤을 때 부디 친구와 보낸 시간이 후회로 남지 않게만 하길 바란다. 

그것만 주의한다면 친구는 언제나 환영받고, 함께 나아갈 사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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