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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Apr 10. 2021

금주는 행복을 위한 길이었다

<어느 애주가의 고백-다니엘 슈라이버>를 읽고

   

술에 대해 환상을 가지지 않아 본 사람이 있을까? 그런 사람이 존재하긴 할까? 보통 한 번쯤은 술 마시는 자신을 상상해보지 않았을까. 나 역시도 예외가 아니었다. 대학에 가면, 성인이 되면 꼭 술은 마시겠노라고 결심까지 할 정도였다. 담배와는 달리 술은 사회의 한 요소 같았기 때문이다. 좋은 건 아니지만, 한 번쯤은 겪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OT, MT, 동아리 회식 등에서 술은 빠지지 않는다고 하도 들어서일까. 약간의 선망이 생길 지경이었다. 거기서 술을 마시며 노는 게 혜택이라고까지 느꼈다. 아이러니하게도 1학기 때는 과제에 치여 술 한 방울 먹지 못했지만 2학기 때부터 2학년까지는 술에 제대로 취할 수 있었다. 새벽에 기숙사에 들어가기도 했고, 술 게임의 재미도 알았다. 그 시기에 나는 사람도 많이 사귀고, 여러 경험도 할 수 있었다. 술을 안 마시는 친구도 있었지만 나는 평생 즐기는 사람으로 남지 않을까, 혼자 생각하곤 했다. 아마 이 책을 읽어보지 않았다면, 현실이 되었을지도.   

 

<어느 애주가의 고백>을 보고 나는 알코올 중독자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술 때문에 인생이 망가지고, 아주 큰 일을 겪고, 온갖 시련을 거쳐 벗어난 이야기라고 말이다. 아주 편협하고 선입견에 갇힌 생각이었다. 내 짐작보다 알코올 의존증은 더 무섭고, 흔한 증상이었으니까. 저자는 알코올 의존증이 질병이며, 그 해결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알코올 의존증을 앓는 사람 대부분이 알코올 중독에 대한 인식 때문에 자신의 상태를 똑바로 보지 않는다고. 잠깐 끊을 수 있는 걸 증거로 알코올 의존증이 아니라고 항변한다고 지적한다. 저자 자신도 그런 시간을 보냈기에 그 감정을 이해하지만 안타까워한다. 동시에 알코올 의존증의 위험성과 나쁜 인식, 금주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 벗어나는 방법에 대해 털어놓는다. 솔직히 충격받았다. 나 자신이 이토록 얕게 알고 있었구나 싶어 놀랐다. 아마 많은 이들이 놀랄 것이다. 그 점에 대해 정리해보자면, 아주 흔한 게 대부분이라 더 그러하다.     


그중에서도 제일 흠칫하게 되는 건 이 점이 아닐까. 알코올 의존증은 의지의 문제라는 생각 말이다. 이건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의존이라는 말의 분위기 때문일까? 비단 나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알코올 의존증은 나약한 사람이 가진 증상이라고 할 것 같다. 인생이 힘들어 꺾인 사람. 너무 약해서 뭐라도 의지할 게 필요한 사람. 그런 사람이 알코올 의존증이 있고, 종래엔 노숙자가 된다고 말이다. 누가 알았을까, 알코올 의존증 역시 질병이라는 걸. 사람이 조절할 수 없는 걸 질병이라고 우리는 칭한다. 암의 전이를 의지로 막을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이 있던가! 세포의 괴사를 의지로 막을 수가 있던가? 그건 불가능하다. 알코올 의존증도 다를 바 없다. 술을 마시다 보면 그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뇌의 구조가 조금씩 바뀐다. 마시면 마실수록, 그 양이 잦거나 많을수록 더 많이 바뀐다. 그리고 그런 변화는 세포의 변화이기에 돌아오지 않는다. 사람의 의지로 할 수 있는 분야도 아니다. 즉 뇌의 변화로 인해 알코올 의존이 생기고, 그걸 사람이 조절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암의 전이를 막을 수 없듯 뇌세포의 변화도 막을 수 없다. 단지 드러나지 않고 더 은밀할 뿐, 알코올 의존증도 엄연한 질병이다. 개인의 의지 문제가 아니다. 치료받고 몸을 살펴야 하는 것에 불과하다.     


누군가는 조금씩, 가끔 마시면 되지 않냐고 한다. 알코올 의존은 술을 많이, 꾸준히 마시는 것 아니냐고. 그럼 약간만 드물게 마신다면 술을 계속 마셔도 되는 게 아니냐고 할 때도 있다. 그럼 질병에는 안 걸리지 않겠냐고. 이 역시도 잘못 알고 있는 것에 속한다. 술로 일어난 세포의 변화는 언급했듯 뒤바뀌지 않는다. 한번 잘못 자리 잡으면 한동안 그 잘못이 유지된다. 그 속도를 늦춘다 하여도 종국에는 똑같은 질병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조금씩 마신다고 술의 영향을 안 받는 건 아니다. 또래보다 한두 해 더 살고 조금 더 늦게 입원하는 정도의 차이일까. 술로 인한 질병, 알코올 의존증 외에도 각종 합병증이나 암 등 다른 질병을 피하려면 술을 끊는 게 유일한 해결책이다. 단순하고 곧은길이라 쉬워 보이지만 가기는 힘든 그 길 말이다.     


금주라는 길을 걷는다고 하면, 어떤 생각이 먼저 드는가. 삶을 즐길 줄 모른다, 융통성이 없다, 재미를 모른다…. 아마 이 표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 역시도 많은 이들이 가지고 있는 선입견에 불과하다. 경험한 자와 경험하지 않은 자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 같달까. 알코올 의존증에 걸리느냐 마느냐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술을 마시지 않아도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음을 느낀 자와 그걸 느껴보지 못한 자의 차이다. 그 차이는 건강과 생활 전반에 영향을 끼친다. 처음엔 그 간격이 미미할지라도 아주 넓어지며 양상이 달라진다. 음주의 장점도 물론 있지만, 몸에는 절대 좋을 수가 없다. 마지막에 웃는 건 금주한 쪽이다. 이에 대해 장수하신 분들이 술도 먹고 탄산도 먹는다고 반박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분들은 운동하시던 건강하게 드시던 일반적인 건강의 요건을 충족하신 경우가 많다. 게다가 장수하시는 건 아주 극소수에 불과한 일이다. 각종 사망의 원인 중, 술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게 얼마나 될까? 음주 운전을 제외하고라도 술에 취해 자살하거나 사고가 나는 경우가 차고 넘친다. 만악의 근원이 술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술로 인한 직접적인 질병이 없다 해도 다른 질병에 걸리거나 수술을 해야 하는 경우 술이 원인인 합병증 때문에 치료가 힘들어지거나 더 길어지고, 심하면 사망에 이른다. 그런 걸 생각하면, 금주한 사람은 지혜롭고 현명한 거고 음주하는 사람은 생각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음주는 요즘 같은 현대 사회에 가장 빠르고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기분 전환이다. 여가활동이자 취미가 된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길 도와주기도 하고 분위기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그런 효과는 참 좋지만, 그래서 한 번쯤은 술을 마셔보는 걸 추천하긴 하지만, 그 시기를 짧게 잡는 게 인생과 나 자신을 위한 길이 아닐까 싶다.      


어떤가. 의지 문제로 생각했던 알코올 의존증은 질병이었고, 술은 많이 먹든 적게 먹든 다 해로웠다. 금주는 현명한 판단이었다. 얼마나 우리가 좁은 생각에 갇혀 있었는지 느껴지는가? 술은 우리의 기분을 좋게 하고 친구들과의 분위기도 띄우지만, 부디 그 영향은 제대로 알고 있었으면 좋겠다. 모든 이가 당장 금주해야만 한다고 하는 건 아니다. 그게 건강에는 좋다지만, 바로 멈추기엔 어려운 일이니까. 담배처럼 술도 천천히 양을 줄이는 건 있을 수 없는 법이다. 단번에 끊고, 차근차근 유지해야 한다.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저자가 말했듯 자신의 더 밝은 미래를 위해, 자신의 더 나은 모습을 위해 금주를 결심할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진정한 금주가 가능해진다. 금주는 충격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 희망과 개선,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일이다. 그러니 술을 안 먹는 것에 대해 너무 겁먹지 말고 미래를 계획해보기 바란다.     


술을 즐기는 사람에겐 가혹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음주 말고도 다채로운 즐거움이 있다. 산책, 운동, 영화, 독서, 퍼즐, 게임, 수다 같은 것들. 음주만을 계속하다 보면 우리는 다른 길을 절대 갈 수 없고 무너지게 될 것이다. 그것만은 명확한 흐름이라 우리가 멈출 수 없다. 의지와 생각만으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더 넓고 깊은 행복한 인생을 위하여 우리가 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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