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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Apr 12. 2021

#8. 그래서는 안 됐는데

슬기로운 재수 생활, 건강에 대하여

재수 때 내가 제일 등한시한 게 있다면, 친구와 오락 다음으로 건강일 것이다. 

그래서는 안 됐는데.     


물론 건강을 아예 내다 버리듯 살았단 건 아니다. 정확히는 공부하는 데 영향이 가지 않는 한에서만 건강을 신경 썼다. 너무 피곤하다 싶으면 몸 상태를 생각하면서 다녀야 하는데 무식하게 카페인을 때려 넣는 거로 해결했을 뿐! 많은 수험생이 그러는데, 너무 많은 사람이 이렇게 해서 모를 뿐 이건 절대 좋은 게 아니다. 오히려 금지하면 모를까! 독한 것도 정도껏 하지, 자기 몸이 어떤지도 모르면 십중팔구 나중에 고생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하더니, 딱 그 짝이다. 젊으니까, 버틸 수 있으니까, 시험이 먼저니까 같은 생각은 너무 쉽게 우릴 침범한다. 그 이후의 고생은 생각지도 못하게 돌아오는 걸 모르고 우리는 그 생각에 짓눌려 건강을 외면한다. 그러다 그 독기로 찬 나날이 조금 흐릿해질 때쯤 이상이 생기는 것이다. 갑자기 위에 통증이 오거나, 간에 문제가 생기거나, 장염을 앓는다던가. 심하면, 나처럼 대상포진이 오기도 한다. 20살의 나이는 무적이 아니니까.     

어쩔 땐 억울하기도 했다. 아니, 내가 뭐 그리 건강을 해쳤다고, 누가 보면 밤새우면서 공부한 줄 알겠다고. 하지만 그렇게 누구에게 하는지도 모를 항변은 자기반성으로 이어지기 마련이었다. 수면 시간은 제대로 있었다지만… 워낙에 하루에 통학하는 거리도 멀고, 아침 9시부터 저녁 10시까지 공부하는 생활이었으니 피곤한 게 당연했다. 밥은 공부할 힘이 있어야 하니 꼬박꼬박 챙겨 먹었지만, 영양제 같은 건 쳐다보지도 않았다. 자연히 조금씩 건강을 해칠 수밖에. 거기다 수험 말기가 될수록 실력이 오르는 게 눈에 보이니, 신이 나서 건강은 아예 제쳐두고 살았다. 미술 입시만 하는 수능이 끝난 겨울, 성적이 잘 나왔지만 남아 있는 실기 스트레스는 그 기쁨을 덮을 정도로 끔찍했다. 공부 대신 실기를 아침 9시부터 저녁 10시까지 해서 몸에 오는 피로는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스트레스는 더 심해져서 이상하게 입맛이 떨어졌다. 그때는 인지하지 못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하루에 한 끼만 먹으며 그 생활을 버텼다. 문제는 또 그때 대치동에서 자취하고 있어 그걸 살펴줄 분도 없었다는 점이다. 그런 생활이란 것도 아주 나중에야 알았으니 얼마나 그때의 생활 습관이 엉망이었는지 눈에 선하지 않은가?     


어쩌면 알았을지도 모른다. 지금 생활이 독이 될 거라고. 하루가 힘들고 몸이 축나는데 절대 좋은 게 아닌 것 같다고 말이다. 하지만, 수험생에겐 힘들다는 걸 표출하고 싶은 감정이 아주 강하다. 나 힘들다, 쉬고 싶다, 이렇게까지 몸이 안 좋다. 대놓고 이야기하면 투정이요 엄살이고 삭히기만 하면 속병이 난다. 그러니 그럴 때 가장 좋은 건 병원에 가는 것이다. 스트레스가 몸에 얼마나 안 좋은지 아주 객관적으로 보여주니까. 수험생 질환이 따로 있을 정도이니 짐작하기 쉬울 것이다. 그런 모습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다. 이미 꽤 자리를 잡았다. 생각해보라. ‘공부하는’ 사람의 건강이 나쁜 건 때로 표창이 되기도 한다. 코피가 나는 게 걱정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공부 많이 했구나, 무리했구나’ 같은 생각을 지어내는 것처럼. 안다! 모두 바보 같고 어리석은 행동이다. 다 건강을 해치고 수명을 깎아 먹는 짓이니까. 그렇지만 어쩌랴! 수험생 질환 하나쯤 가지고, 병원 좀 다녀야 공부 좀 하는구나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을…. 불안한 수험 생활 중 아이러니하게도 안심을 주는 건 나빠진 몸 상태였다. 자신의 고생이 헛되지 않았다, 허투루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는 몸의 성적표처럼 느껴진달까! 그건 한 명에게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었다. 누군가 아프다고 하면 딱 두 가지의 경우로 나뉘었으니까. 공부를 제법 하는 애라면 ‘아이고 고생했구나’, 평소 노는 애라면 ‘걔가 왜?’로. 수험생 중 아주 일부에 불과한 재수생끼리도 이런 대화는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니 수험생의 건강에 대한 인식과 분위기가 어떤진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그건 누가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 압도적인 풍조요, 분위기였다.     

 

나는 내가 대학에 와서, 1년도 안 되어서 대상포진에 걸릴진 몰랐다. 세상에, 40대에 걸려도 젊은 나이에 왜 그게 걸렸냐고 할 정돈데 20살에 걸리다니. 재수 생활과 겨울 실기, 급히 갔던 가족 여행 이후 바로 입학했던 게 문제였다. 몸을 회복할 시간도 없이 바로 대학에 뛰어들어 독하게 시간을 썼으니! 토익, 과제, 멘토링, 봉사활동 등 아무것도 허투루 할 만한 게 없었다. 생각한 대학보다 힘들어서 술자리 한 번 가지지도 못할 정도로…. 밤새우는 건 예삿일이었고, 처음엔 무서워 벌벌 떨었던 새벽의 학교도 익숙해져 시간 감각 없이 과제를 하곤 했다. 그래, 어휴, 그게 다 문제였다. 면역력이 떨어져 생기는 대상포진이 괜히 내게 왔을까. 그때 대상포진을 안 앓았으면 진짜 한 번 구급차 신세를 졌을지도 모른다. 건강이 그리 단단한 것이 아님을 그때 알았고, 덕분에 내 지난 생활을 되돌아보고 건강을 위해 노력하기로 다짐하게 되었으니 마냥 뼈아프기만 한 경험은 아니다. 다시 겪으라면 절대 못 하겠지만!     


대학 생활을 하면서도 건강을 챙기긴 쉽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어려웠다. 수험 땐 잠이라도 꾸준히 잤지…. 그래도 그때와 달리 건강에 대해서는 명심하고 있다. 쓰러지는 게 훈장처럼 느껴지는 건 아직도 여전하지만 겪고 싶진 않다. 그 고생은 절대 사양이다. 덕분에 운동이나 식습관에 훨씬 신경을 기울인다. 다신 재수 때처럼 건강을 해치지 않도록 말이다. 그래, 그래선 안 됐던 걸 이제는 알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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