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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Apr 13. 2021

그래도 어른은 되고 싶어요

어른 이야기 첫번째

나는 언제나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른은 자신의 능력이 뭔지 얘기했고, 칭찬받았고, 거대했다. 그런 사람이 어른이라고 믿고 살았다. 나이만 먹으면, 시간만 흐르면 나도 저렇게 되겠지. 그렇게 기대한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이제는 안다. 어른이 그런 존재라는 게 아니라, 내가 꿈꾼 어른이 그런 존재라는 걸. 거대하고, 당당하며, 모든 일을 해결하는 그런 사람은 내가 희망한 모습에 불과하다는 걸. 하지만 여전히 내게 ‘어른’이라는 단어는 무겁고, 압도적이다. 사실 어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세상에서 내가 생각한 어른은 보기 힘들다는 현실을 보게 되었을 뿐이다. 어른이란 대단한 존재라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설령 그 명칭을 내가 못 받아도, 그 이름을 받기 어려울지라도 어른은 그래야 한다. 그런 호칭은 가벼이 여겨져선 안 된다.      

이걸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아가와 어린이의 차이점이라고 해야 하려나?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대부분 아가는 그저 사랑스럽기만 한 나이로 생각된다. 혼자 할 수 있는 건 없고 보살핌이 많이 필요한 나이 때로. 반면 어린이는 뛰어놀고 친구도 사귀는 아이가 떠오른다. 좋아하는 놀이도 옷도 있고, 자기 생각도 얘기할 줄 아는 아이로. 어떤가. 아가와 어린이 둘 다 실제 나이에선 큰 차이가 없다. 두 호칭을 동시에 쓰기도 하고, 비슷한 표현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그 단어에서 오는 느낌은 좀 다르다. 그 단어를 봤을 때, 쓸 때, 떠오르는 인상이 다르다는 이야기다. 성인과 어른도 그런 느낌이다. 어른은 성인과 의미가 비슷할지언정 그 무게는 아주 다르다. 어른이란 모름지기 제 일에 책임을 져야 한다. 당당하고,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하며,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을 어른이라 해야지. 삶의 풍파를 알면서도 잘 자리를 잡은 사람. 힘들어도 무너지지 않는 사람. 마냥 상처 받지도 상처를 주지도 않는 사람…. 성인은 그저 20살이 되는 순간 얻게 되는 것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성인이란 호칭은 얻기 전엔 갈망되고, 얻은 후엔 얼떨떨하다가 이윽고 가치가 없어진다. 잃어버릴 염려도 없어지는 호칭이다. 어른은 한 번 얻는다고 영영 유지되지 않는데 말이다. 대신 한 번 얻으면 아주 기쁘고, 보람차고, 뿌듯해진다. 이렇게 얘기하니 어른에 대한 환상을 가진 것 같다. 하지만 장담컨대 이건 나만이 가지고 있는 게 아닐 것이다!     


그러니 성인이 되어 ‘어른’이라던 사람을 봤을 때의 기분이 어땠겠는가. 나보다 나이도 많고 제법 사회에서 자리도 잡아 어른이라면 어른인데… 내가 생각한 모습이 아닐 때의 그 기분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실망? 아니면 허무함? 실제로 본 어른 대부분은 그저 사는 사람 한 명에 불과했다. 내가 생각한 것처럼 강하지도, 든든하지도, 굳건하지도 않았다. 미래를 보고 현재를 다듬지도 않았고, 뭐랄까, 그저 하루하루를 사는 모습이었다. 예전에 알게 되었다면 크게 실망하지 않았을까. 이런 게 ‘어른’이었냐고, 이런 건 어른이 아니라고. 꿈꾼 로망이나 환상 하나가 깨진 걸 부정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실제로 내가 그런 상황에서 제일 느낀 건 공감과 서글픔이었다. 하기야, 어른이 한 번에 만들어지는 존재던가. 성인은 주어진 기간이 채워지면 저절로 얻게 된다. 반면에 어른은 그저 나이를 먹는다고 얻는 호칭이 아니다.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를 책임져야 나오는 것이다. 그것도 꽤 꾸준히. 단번에 정해지는 게 아니니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얻는 게 그저 성취감 같은 긍정적인 것뿐일까. 어불성설이다. 절대 그럴 리 없다. 그걸 내가 이해한단 이야기는 어른의 초입에 들어서일까? 아니면 어른이 된 내 주변 사람들의 과정을 지켜봐서일까? 어른이 아무리 힘들어하고 나약한 모습이어도 그에 대해 실망하기보단 안쓰러운 마음이 더 커진 지 오래다.     


그래도, 나는 아직도 어른이 되고 싶다. 어른의 힘든 모습을 봤어도, 현실의 어른은 생각과는 다르단 걸 알았어도. 아이로 평생 남을 순 없으니 제대로 된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 영영 아이로 남아 웃고, 놀고, 즐기기만 하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그런 삶을 보장해준대도 그렇게 살고 싶진 않다. 분명 사람에겐 즐기고 누리는 행복 이상의 것이 있지 않은가. 성취감이나 향상심이나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자 하는 그런 욕심이. 그것에만 눈이 쏠리면 너무 힘들겠지만, 때로 아이와 어른을 오가며 살아가면 제법 살만하지 않을까. 그러려면 아이는 아무 노력이 필요 없지만, 어른은 큰 노력이 필요하니 어른이 되고 나서 해보자. 누가 아는가. 그렇게 아이와 어른을 오가는 게 진정 사람의 본모습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게 가장 이상적인 어른의 형태일지도 모른다. 어른은 우리 생각보다 어둡고 위태로우나, 그만큼 어렵고 힘들며, 대단한 모습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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