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윤 Apr 14. 2021

역사 속 어른은 참 멋있었다

어른 이야기두 번째

누구나 다 어른이 되길 바란 건 아니었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정말 놀랐다. 아, 그럴 수도 있나…? 그래도 되나…? 하는 의문이 가득했으니까. 그도 그럴 게, 나는 언제나 나이 먹는 게 좋았다. 적어도 20살이 되기 전까지는! 나이를 먹으면 더 할 수 있는 게 많아졌다. 싫어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크게만 보였던 언니 오빠의 나이가 되는 건 좀 기다릴 정도였다. 그 나이가 되면 나도 그런 모습이 될 것 같았으니까. 게다가, 내가 그토록 좋아한 역사에서는 어린아이의 이야기가 아주 적었다. 아무리 ‘어린 나이에 죽은’ 사람이라 해도 16,7의 나이였다. 그러니 나이를 먹으면 더 그런 이야기에 가까워질 것만 같았다. 특히 멋있는 어른들은 역사에 넘쳐나지 않던가. 위인이라고 하는 어른들의 모습은 어린 내게 선망의 대상 그 자체였다.      


역사는 대부분 어른의 이야기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그래야 그 사회에서 노동하는 사람으로 인정받았으니까. 아이는 쉽게 죽고, 잘 대우받지도 못했던 시절이다. 아이가 역사서에 실리려야 실릴 수 없었을 테다. 그토록 힘든 세상이어서 그런가? 그중 살아남아 어른이 된 사람들은 유독 빛난다. 나와 떨어진 세계의 이야기라서 그런 건지, 이상적이고 멋진 사람은 역사에 가득하다. 왕이든 장군이든 재상이든, 혹은 상인이든 충신이든 간신이든….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신념을 위해, 혹은 이상을 위해 자신의 빛을 발한  유독 빛나는 어른들은 나이에 관계없이 빛나곤 했다. 그래서, 내게 어른에 대한 환상과 선망을 선물한 어른들에 대해 좀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역사를 보다 보면 정말 본보기로 삼을 만한 어른이 많다. 시대가 변했어도 만나 뵙고 싶고 옆에 있었으면 하는 어른들이. 남성 여성 가리지 않고 넘쳐 나지만, 아무래도 같은 성별의 사람의 인생이 더 눈에 들어오는 법이다. 더 공감이 가기도 하고, 더 울분에 차기도 하고. 그래서 여성 어른들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남성 어른들에 대해서만 지금 말해보고자 한다.


먼저 생각나는 분은 류성룡 재상님이다. 징비록의 존재를 알고 그분을 알게 되었는데,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과 나라가 어떻게 실패했고 힘들었는지, 그 이유를 기록하기가 어디 쉬운가? 가뜩이나 옛날엔 체면과 명예에 목숨과 인생이 왔다 갔다 하기 일쑤였다.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고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없게 하기 위해 쓴 그 기록이 내겐 너무 감동적이었고 대단하게 느껴졌다. 더군다나 그 당시에도 현명한 재상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임진왜란에 대비하고, 이순신 장군을 천거하고, 명나라에 도움을 청하고, 훈련을 다스리는 한편 백성을 잊지 않았다. 재상이란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을 전부 하신 셈이다. 결국 전쟁이 나게 하셨으니 완벽한 재상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만큼 하기가 어디 쉬운가! 전쟁이란 힘든 시기에 만일 이분마저 없었다면 어찌 되었을지 상상도 하기 싫다. 자신의 일을 제대로 처리하고, 사람 보는 눈이 있고, 미래를 대비하실 줄 알았던 분이다. 예나 지금이나 수많은 왕과 정치인들보다 더 재왕 감인 분이지 않은가. 이분이 그때 나이도 있고 경력도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안 그랬다면, 어린 벼슬아치의 치기로 취급당했을지도 모른다. 실로 때를 잘 만난 명재상이었다. 이 분처럼 자신의 일을 하면서도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계속 탐색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다음으론, 이순신 장군님이다. 솔직히 대한민국의 사람이라면 이분이 왜 존경받는지 알 것이다. 심성이 삐뚤어지고 완전히 뒤틀린 게 아닌 이상 이분에게 감사하지 않을 리도 없다! 이분이 아니었더라면 지금의 우리는 없었을지도 모르니까. 나라가 어려운 건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잘 해온 게 부정당하고, 억울하게 누명 쓰고 고생했는데도 다시 전장에 나가 이긴 신하가 얼마나 될까. 사람은 마냥 너그럽고 자애롭지 않다. 되돌려 받는 게 없다면 지치고, 회의적이기 마련이다. 이순신 장군은 나라를 지킨다는 신념 아래 행동하셨고, 전술을 펼치고 부하들을 통솔하며 이기기 위해서 지고의 노력을 하셨다. 자신의 일에 충실하기란 참 뻔하고 당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자신의 일에 충실하였는가? 자신의 일의 의무를 알고 최선을 다해 임하였는가?’라는 질문에 당당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토록 당연한 걸 지키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세상이 편안해도 그럴진대, 전쟁 같은 혼란한 시기는 어떻겠는가. 지금이야 제 할 일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든 추적한다지만 그땐 야반도주하면 놓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마음만 먹었다면 떠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길을 아예 떠올리지도 않았을 뿐. 얼마나 대단한가! 지진이 났을 때 산부인과에선 간호사들이 온몸으로 신생아들을 감쌌고, 배가 가라앉을 때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끝까지 탈출시키고 안내했다. 꼭 그런 모습처럼, 이순신 장군도 억울하고 피해를 입었어도 끝까지 나라를 보호하고 몸을 아끼지 않았다. 제 할 일을 어떤 위기가 닥쳐도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멋있다. 

     

이런 분들을 보다 보면 내가 제대로 크고 있는지 걱정이 든다. 훌륭한 어른까진 아니어도 제법 괜찮은 어른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그분들처럼 역사에 남진 않아도 살아 누구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제 할 일을 잘하다 간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세상에 쉬운 건 없고, 지금껏 마냥 느긋하고 행복하게 살아온 것도 아니건만…. 살아온 길보다 살아갈 길이 비교도 되지 않게 두려워지는 순간이면 자신이 없어진다. 저분들처럼은 아니어도 저분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은데 나는 과연 그러고 있는지, 그럴 수 있는지 수많은 의문이 올라온다. 앞으로 내가 살아가면서 이 의문들을 잊지 않고 명심한다면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는 있겠지. 그래, 지금 미리 걱정해봐야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저 의문이 너무 깊게 파고들어가 내 에너지를 해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리고 하루빨리 나 자신을 괜찮은 어른이라고 여길 수 있길. 내가 바라는 사람이 되어 잘 살아나가길 마음 깊이 기원한다.


         

작가의 이전글 그래도 어른은 되고 싶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