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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Apr 16. 2021

그녀들처럼만 된다면, 살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

어른 이야기 네 번째

얼마 전에 류성룡 선생과 이순신 장군님에 대한 글을 올린 적이 있다. 그분들은 전쟁 속 영웅이셨고, 제 할 일을 넘어 잘 대처하셨다는 점에서 본받을 만하다고. 그런 모습을 어른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고, 조금이라도 닮길 바란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분들은 모두 남성이다. 그래서 이번엔 내가 역사 속에서 본받고 싶은 어른 여성을 얘기해보고자 한다. 똑같이 훌륭한 사람이라면 같은 성별이 더 끌리는 게 사람 마음이지 않은가. 생각해보라. 솔직히 다른 성별은 내가 살아보지 않고, 겪어본 게 아니니 뭐라 이야기하기 어렵다. 대신 동성은 훨씬 이해하기도, 찬탄하기도 쉽다. 그 상황이 더 생생하고 현실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세상이 다르다고 사람의 신체 구조가 달라진 건 아니지 않은가. 비슷한 신체에 비슷한 정신과 감수성이라면 시대를 뛰어넘은 공감이 우러나오곤 한다. 그들이 겪은 어려움, 고민, 비극이 어떤 것인지 체감할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의 승리를, 극복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옛날 봉건 사회는 정말 불평등한 시대 그 자체였다. 신분, 성별, 지역, 학교, 파벌 그 모든 것에 따라 대우가 달랐다. 철저히 기울어진 사회였으니 여성과 백성, 노비는 역사에 이름 남기기도 어려웠다. 심지어 간혹 이름을 남겨도 여성은 악녀, 요부 두 글자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도 그 두 글자와는 거리가 먼 여성도 있다. 당당히 역사에 이름을 올렸어도 그 누구 하나 함부로 비하하지 않는 사람이. 사실 효부란 글자도 요부만큼이나 불편하다. 그 시대에 미친 듯이 자기희생을 해서 받은 이름이 어찌 반갑겠는가. 그래서 내가 지금까지도 좋아하는 여인 둘은 마냥 희생적인 모습이 아니다. 순종적이고 얌전한 것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래도 당당히 역사에 이름을 올렸다!     


그 여인들은 바로 소서노와 신사임당이다. 소서노를 기억하는가? <주몽>이라는 드라마에서도 나왔던 여인이다. 주몽과 혼인해 고구려를 세운 여인. 그녀는 적어도 한반도 역사상 전후무후한 기록이 있다. 소서노는 고대, 삼국시대, 남북국, 고려, 조선 시대 모두를 통틀어 건국을 두 번 한 유일무이한 존재다! 한 번은 남편과, 한 번은 아들과. 거기에 오직 하나뿐인 창업 여왕이다. 존경스럽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가 아닌가! 심지어 주몽을 만났을 때 이미 혼인해 아들 둘이 있는 상태였는데, 안주하지 않았다. 후에 주몽의 부인 예 씨와 아들이 나타나 배신감을 느꼈다고 무너지지도 않았다. 언제나 앞을 내다봤고 도전했다. 한 번 나라를 세우기도 힘든 일인데 두 번이나 세웠고 큰 존재감을 뽐냈다. 죽었을 때 수도를 옮길 정도로 그 여파가 강했고, 이후에 사당까지 세워 기려질 정도로 신격화되었다. 당시 그녀의 위엄이 어떠했는지 느껴진다. 아무리 유학 같은 사상이 퍼지지 않았을 때라지만 여성이 목소리 내긴 쉽지 않았던 때다. 그녀는 강했고, 자존심이 있었고, 현실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녀가 혹여 변화를 두려워했다면 삼국 시대의 두 나라는 흔적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자존심이 상했어도 버텼다면 그저 그런 왕후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소서노는 야망도 있고 안목도 있었다. 똑똑하고 어떤 일을 언제 해야 하는지, 할 수 있는지 판단이 아주 정확했다. 그녀의 판단은 성공해 왕후가 되었고, 왕의 어머니가 되었다. 계획했던 게 실패로 돌아가도 다른 길을 찾았지 마냥 원망하거나 슬퍼하지 않았다. 그녀가 주저앉아 원망과 저주만을 노래했다면 그저 그런 궁중 야사 속 그림자에 불과했으리라. 언제든 그녀는 맞서 나갔고 결단이 뚜렷했다. 얼마나 대담하고 당차고,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가능한 일인가. 그녀의 그런 면모가 너무 부럽고, 멋있다.     


어린 시절엔 세상이 자기 위주로 돌아간다고 느낀다. 세상이 나를 바라보고, 나 위주로 돌아가고. 내가 없어지면 세상이 무너지고…. 그런 생각이 정점을 찍으면 그때가 사춘기다. 반면 시간이 흘러 나는 세상의 일부라는 걸 체감하면 어른이라고들 한다. 그 흐름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때로 그 시절의 자신에 대한 마음이 그립다. 그 무엇보다 제일가는 것처럼 생각하고 믿고 좋아했던 때. 그때의 그 마음을 내가 지금 잘 남겨 나 자신의 일부로 여기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런 마음은 온데간데없어 나를 사랑하고 믿기 어렵게 하게 만든 걸까. 소서노의 업적도 위상도 놀랍지만, 그녀의 행동은 그녀를 위한 것이고, 그녀 자신을 잘 알아서 한 것이기에 참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걸 잘 알고 자기 자신을 알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을 위한 길로 가는 게 어디 쉬운가! 그런 어른의 모습은 참 이상적이지만, 긴 역사 속에서도 몇 본보기가 없다. 주변에도 이롭고, 피해가 없으며, 자신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하는 그런 모습은….     


그중 하나가 신사임당이다. 그녀 역시 자신을 잘 알았고, 주변을 살폈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갔다. 지금까지 내려오는 현모양처의 표본이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를 것이다. 신사임당은 마냥 가정에만 헌신한 사람은 아니었다. 가정에만 헌신한 사람이 어떻게 작품을 남기겠는가? 그녀는 재주가 뛰어났고, 남편의 행동에 첨언할 만큼 지혜롭고 안목이 있었다. 시대를 살아가며 자신의 재능과 타협했을 뿐, 일평생 크나큰 고난을 맞이하지 않았다. 그건 그녀의 노력 때문이다. 그녀가 타고난 집안과 운이 좋은 것도 있겠지만, 그녀의 일화 몇 개만 보아도 그녀가 재주가 알려지는 데 조심했음을 알 수 있다. 그때는 그래야 뭇사람들의 비난을 피하고, 잘 살 수 있었다. 허난설헌만큼 신사임당의 재능이 노래되지 않는 건 그녀의 인생이 제법 괜찮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세상을 일찍 떠났지만 아이들을 여럿 낳아 잘 가르쳤고, 그중 하나는 길이길이 남을 위인 율곡 이이였다. 어릴 적부터 사랑받아 재능을 피워냈고 남편과도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비극적이었던 허난설헌보다 덜 주목을 받는 것이다. 사람은 소소한 행복보단 화려한 비극을 더 좋아하는 법이니까. 하지만 말로 하니 쉽지, 지금도 아이를 기르며 올바른 방향으로 지도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 거기다 개인의 재능까지 녹슬지 않게 하는 건 또 얼마나 어려운가. 그 사이사이 마냥 뛰어나지 않은 남편도 보고 시어머니도 모셔야 하니…. 그녀의 행복은 그녀가 온 힘을 다해 피워낸 재능이나 다름없다. 어쩌면 신사임당이 죽은 건 그 많은 걸 다 소화해내느라 과로해서일 수도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걸 다 해내고, 뛰어난 결과를 맺지 않았는가. 참 부럽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생각하면 할수록 어떻게 산 건지 신기한 분이다.   

  

소서노는 재가하고, 나라를 세우고, 지아비를 떠나 오랫동안 역사에서 배척당했다. 그러나 그녀의 모습은 결국 드러났다. 신사임당은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만 여겨졌으나 종래엔 그녀의 작품이 아들의 생애보다 시선을 끌었다. 그녀들은 살아있는 평생 하루하루를 허투루 보내지 않은 덕인지 그 어려운 역사에서도 이름을 남기며 자리를 확고히 잡았다. 사람이 죽어 이름을 남긴다는 걸 그녀들의 모습에서야 체감한다. 나라를 두 번 세우고 재주를 뽐내면서도 현덕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 것에 비하면 역사에 이름을 올리는 건 너무 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녀들은 모두 자신을 잘 알았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았고, 잘 살았다. 거듭 얘기하지만 참 부럽고 좋은 인생이 아닌가. 그녀들의 모습이 내 이상 그 자체나 다름없다. 그 모습을 조금이라도 닮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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