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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Apr 20. 2021

붉은 머리는 언제쯤 자유로워질까요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박신영>을 읽고

 대체 붉은색은 서양에서 뭘까. 빨간 모자, 빨간 구두, 빨간 머리 앤, 말괄량이 삐삐…. 이렇게까지 빨간 것에 대한 인식이 짙다니 당혹스러웠다. 빨간 머리 앤은 그중 가장 친숙한 존재다. 똑똑하고 상상력 풍부한, 야무진 소녀. 그 아이는 평생을 머리에 매달렸다. 나중에 선생님도 되고, 대학도 가는 아이가 머리 하나 때문에 열병을 많이도 앓았다. 이해하기 힘들었다. 외모가 아무리 중요하다지만, 신경 쓰이는 건 당연하다지만, 저렇게까지? 금발이나 흑발을 부러워할 순 있지만, 정도가 심하다고 생각했다. 진저(Ginger)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전까진 말이다. 

    

진저는 비하 호칭이다. 이렇게 쓰는 것조차 붉은 머리를 가진 사람들에게 상처가 될지도 모른다. 붉은색에 대한 관념이 얼마나 부정적인지 느껴지는가? 앞에서 얘기했듯 붉은 머리는 심심찮게 나온다. 인어공주 에리얼, 빨간 머리 앤, 말괄량이 삐삐, 해리포터의 론 위즐리까지. 매체와 시대를 막론하고 등장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그냥 독특하다, 예쁘다 정도로 넘어갔던 그들의 머리 색이 외국에선 논란이었다. 인어공주의 머리 색이 왜 진저냐고 따지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아니, 실제 인물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서양에선 빨간 머리가 기본적으로 말 안 듣고 거친 아이로 여겨져서라고 한다. 정자은행에서도 붉은 머리의 남성은 거부한다고 하니… 우리나라의 ‘4’와 비슷한 수준인가 보다. 하지만 정말 억울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붉은 꽃도 붉은 옷도 좋으면서 머리칼만 그렇게 본다니!

      

이건 기독교의 영향이 크다. 생명체의 붉은 피가 지나친 성욕을 자극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좋지 않게 본 것이 지금까지 내려온 것이다. 창녀가 그려지면, 무조건 붉은 머리로 그려진 것도 이러한 영향이었다. 악마로 보이기까지 했는데, 이는 바이킹 족 때문이었다. 해안을 약탈한 이 해적 때문에 재산을 지키기 위해 봉건제도가 생길 정도였으니, 정말 위협적이긴 했나 보다. 하필 그들 중 유명한 해적이 붉은 수염에 붉은 머리였다. 종교화에도 그 흔적이 남았고, 대대손손 붉은색을 악마에 썼다. 유다 역시 붉은 머리로 그려졌다. 붉은색이 너무 운이 나빴다! 물론 이 모든 걸 거슬러 올라가면, 유럽의 민족 때문에 생긴 요소라 할 수 있겠다. 붉은 머리의 민족은 상대적으로 수가 적었다. 붉은 머리가 많이 나오는 켈트 족은 주로 스코틀랜드와 그 주변에 있던 것이다. 서유럽은 대부분이 금발에 푸른 눈이었고, 남유럽은 흑발에 검은 눈이 흔했다. 적은 게 문제였다. 서유럽의 게르만 족과 그 후손인 앵글로 아메리카의 사람들은 소수의 사람을 배척한 것이다. 그게 전부였다. 다르다는 점이 문제 그 자체. 소수에 대한 다수의 폭행이었다. 이 얼마나 단순하고 어리석은 이유인지…. 그로 인해 너무 많은 아이가 상처 입었다. 앤이 왜 그토록 머리에 집착하고 예민했는지 이제야 이해되지 않는가. 고아에, 여자에, 붉은 머리, 작가가 의도한 대로 모든 것에 배척당하는 소수를 상징하는 소녀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나중엔 깨닫지만, 그 전엔 참 많은 고통을 겪는다. 그러나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그게 그녀의 힘이고, 작가가 보여주려 한 의도일 것이다. 아무리 배척받아도 앞을 보고 나아가며, 긍정적인 소녀의 모습 말이다. 배척당하는 존재의 아픔과 그 아픔이 정당한지, 그리고 그 대상이 어떤 존재인지 제대로 보라고 하는 것만 같다. 아직도 배척당하는 존재는 있으니, 그럴 때마다 빨간 머리 앤을 보며 다시 되새겨 보는 것도 좋은 교훈이 되지 않을까.

     

앤이 배척당하는 존재의 이면과 배척하는 문제에 대해 보여준다면 삐삐는 양상이 다르다. 삐삐는 줄무늬 스타킹을 신고 나타난다. 줄무늬는 멀리서도 눈에 확 띈다. 가뜩이나 성냥불 같은 머리에 줄무늬라니, 얼마나 통통 튈까! 그녀의 개성이 단번에 느껴지는 모습이다. 그러나 잊지 말길. 그때는 지금과 달리 개성이 좋게 대우받지 않았다. 빨간 머리와 마찬가지로 줄무늬도 차별의 상징이었다. 다른 것의 차이나 이탈을 나타내어서, 사회 질서를 어지럽힌다고 해석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대인, 죄인, 어릿광대, 사형 집행인, 매춘부가 줄무늬를 입었다. 줄무늬가 보이는 질서가 참 답답하고 무섭다. 삐삐는 그런 질서에 맞선 게 아닐까? 착한 아이가 아니지만 좋은 아이, 보호자도 없지만 걱정되지 않는 아이, 모든 것에 반항하면서 노니는 사람으로 말이다. 사회에서 배척받는 요소를 지녔음에도 전혀 굴하지 않는 사람. 너무나 자유로운 존재가 있다는 걸, 삐삐를 통해 우리가 보는 게 아닐까.

     

이렇게 보니 그동안 몰랐던 게 굉장히 바보같이 느껴진다. 빨간 머리를 지닌 인물이 이런 양상을 보였다니, 처음 나왔을 때 화제였다는 걸 공감한다. 충격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빨간 구두는 좀 다르다. 일단 신체가 아니기에 취급이 달랐던 걸까. 허영심 많은 여자아이가 구두를 신었다가 벌을 받아 고생한다는 게 이 이야기의 주된 흐름이다. 과연 카렌이 못된 아이여서 그랬던 걸까…. 어릴 땐 어떻게 할머니가 아픈데 빨간 구두를 사나 싶었다. 카렌의 잘못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과연 할머니가 하루 이틀 아프셨을까? 카렌이 기억하는 평생을 앓으셨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지금처럼 잠깐 아프고 회복하는 경우가 드물었으니까. 병간호는 힘든 일이다. 부모와 자식 간, 부부간에도 힘든데 어린아이는 오죽했으리라고. 진짜 핏줄도 아니니 할머니가 카렌을 배려해 줬을 것 같지도 않고. 유일한 일탈이자, 위로가 빨간 구두가 아니었나 싶게 된다. 문제는 그 시기가 종교 개혁과 아주 완벽히 맞아떨어진단 점이다. 청교도 혁명이 일어나 검은색에 맞춰 입고 검소한 걸 숭상한 시기. 부패한 교황이 신던 빨간 구두가 얼마나 화려했을까. 또 그 색은 얼마나 선정적으로 보였을까. 그리고… 고아 소녀가 자신들과는 다르게 예쁜 구두를 신고 있는 게 마을 사람들에겐 또 얼마나 고까웠을까? 카렌은 갑갑함을 느꼈을 것이다. 예쁜 걸 신고 기분 전환 겸 자신을 뽐내고 싶었을 테다. 아, 발목이 잘리고서도 쉽게 용서받지 못하는 소녀는 너무 무서운 예시다. 아이들을 다스리고 허영을 잡기 위한 대상이 카렌이어야만 했나. 혹여 그 구두가 하얀 구두는 아니었을까? 새하얀 구두도 얼마나 예쁘고 비싼가. 소녀가 신고 춤춘 구두가 벌을 받아 피에 물들어 그리 보인 게 아닐까…. 자신들의 추한 압박과 응징을 감추기 위해 색을 바꾼 건 아닌가. 알 길이 없으니, 안타깝다. 

    

선명하고 매혹적인 색이 붉은색이다. 싱그럽게 보이기도 하고 강렬하기도 하다. 잔혹하기도 하고 젊기도 한 그 색채는, 언제쯤 그 그늘을 벗어던지고 색으로만 여겨질 수 있을까. 아직도 빨간 머리는, 빨간색은 그 그늘을 떨쳐내지 못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모든 색은 제각각의 그늘을 가지고 있다지만. 그 그늘이 너무 짙고 어두우니 덜어낼 때가 아닌가 대체 붉은색은 서양에서 뭘까. 빨간 모자, 빨간 구두, 빨간 머리 앤, 말괄량이 삐삐…. 이렇게까지 빨간 것에 대한 인식이 짙다니 당혹스러웠다. 빨간 머리 앤은 그중 가장 친숙한 존재다. 똑똑하고 상상력 풍부한, 야무진 소녀. 그 아이는 평생을 머리에 매달렸다. 나중에 선생님도 되고, 대학도 가는 아이가 머리 하나 때문에 열병을 많이도 앓았다. 이해하기 힘들었다. 외모가 아무리 중요하다지만, 신경 쓰이는 건 당연하다지만, 저렇게까지? 금발이나 흑발을 부러워할 순 있지만, 정도가 심하다고 생각했다. 진저(Ginger)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전까진 말이다. 


    


진저는 비하 호칭이다. 이렇게 쓰는 것조차 붉은 머리를 가진 사람들에게 상처가 될지도 모른다. 붉은색에 대한 관념이 얼마나 부정적인지 느껴지는가? 앞에서 얘기했듯 붉은 머리는 심심찮게 나온다. 인어공주 에리얼, 빨간 머리 앤, 말괄량이 삐삐, 해리포터의 론 위즐리까지. 매체와 시대를 막론하고 등장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그냥 독특하다, 예쁘다 정도로 넘어갔던 그들의 머리 색이 외국에선 논란이었다. 인어공주의 머리 색이 왜 진저냐고 따지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아니, 실제 인물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서양에선 빨간 머리가 기본적으로 말 안 듣고 거친 아이로 여겨져서라고 한다. 정자은행에서도 붉은 머리의 남성은 거부한다고 하니… 우리나라의 ‘4’와 비슷한 수준인가 보다. 하지만 정말 억울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붉은 꽃도 붉은 옷도 좋으면서 머리칼만 그렇게 본다니!


      


이건 기독교의 영향이 크다. 생명체의 붉은 피가 지나친 성욕을 자극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좋지 않게 본 것이 지금까지 내려온 것이다. 창녀가 그려지면, 무조건 붉은 머리로 그려진 것도 이러한 영향이었다. 악마로 보이기까지 했는데, 이는 바이킹 족 때문이었다. 해안을 약탈한 이 해적 때문에 재산을 지키기 위해 봉건제도가 생길 정도였으니, 정말 위협적이긴 했나 보다. 하필 그들 중 유명한 해적이 붉은 수염에 붉은 머리였다. 종교화에도 그 흔적이 남았고, 대대손손 붉은색을 악마에 썼다. 유다 역시 붉은 머리로 그려졌다. 붉은색이 너무 운이 나빴다! 물론 이 모든 걸 거슬러 올라가면, 유럽의 민족 때문에 생긴 요소라 할 수 있겠다. 붉은 머리의 민족은 상대적으로 수가 적었다. 붉은 머리가 많이 나오는 켈트 족은 주로 스코틀랜드와 그 주변에 있던 것이다. 서유럽은 대부분이 금발에 푸른 눈이었고, 남유럽은 흑발에 검은 눈이 흔했다. 적은 게 문제였다. 서유럽의 게르만 족과 그 후손인 앵글로 아메리카의 사람들은 소수의 사람을 배척한 것이다. 그게 전부였다. 다르다는 점이 문제 그 자체. 소수에 대한 다수의 폭행이었다. 이 얼마나 단순하고 어리석은 이유인지…. 그로 인해 너무 많은 아이가 상처 입었다. 앤이 왜 그토록 머리에 집착하고 예민했는지 이제야 이해되지 않는가. 고아에, 여자에, 붉은 머리, 작가가 의도한 대로 모든 것에 배척당하는 소수를 상징하는 소녀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나중엔 깨닫지만, 그 전엔 참 많은 고통을 겪는다. 그러나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그게 그녀의 힘이고, 작가가 보여주려 한 의도일 것이다. 아무리 배척받아도 앞을 보고 나아가며, 긍정적인 소녀의 모습 말이다. 배척당하는 존재의 아픔과 그 아픔이 정당한지, 그리고 그 대상이 어떤 존재인지 제대로 보라고 하는 것만 같다. 아직도 배척당하는 존재는 있으니, 그럴 때마다 빨간 머리 앤을 보며 다시 되새겨 보는 것도 좋은 교훈이 되지 않을까.


     


앤이 배척당하는 존재의 이면과 배척하는 문제에 대해 보여준다면 삐삐는 양상이 다르다. 삐삐는 줄무늬 스타킹을 신고 나타난다. 줄무늬는 멀리서도 눈에 확 띈다. 가뜩이나 성냥불 같은 머리에 줄무늬라니, 얼마나 통통 튈까! 그녀의 개성이 단번에 느껴지는 모습이다. 그러나 잊지 말길. 그때는 지금과 달리 개성이 좋게 대우받지 않았다. 빨간 머리와 마찬가지로 줄무늬도 차별의 상징이었다. 다른 것의 차이나 이탈을 나타내어서, 사회 질서를 어지럽힌다고 해석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대인, 죄인, 어릿광대, 사형 집행인, 매춘부가 줄무늬를 입었다. 줄무늬가 보이는 질서가 참 답답하고 무섭다. 삐삐는 그런 질서에 맞선 게 아닐까? 착한 아이가 아니지만 좋은 아이, 보호자도 없지만 걱정되지 않는 아이, 모든 것에 반항하면서 노니는 사람으로 말이다. 사회에서 배척받는 요소를 지녔음에도 전혀 굴하지 않는 사람. 너무나 자유로운 존재가 있다는 걸, 삐삐를 통해 우리가 보는 게 아닐까.


     


이렇게 보니 그동안 몰랐던 게 굉장히 바보같이 느껴진다. 빨간 머리를 지닌 인물이 이런 양상을 보였다니, 처음 나왔을 때 화제였다는 걸 공감한다. 충격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빨간 구두는 좀 다르다. 일단 신체가 아니기에 취급이 달랐던 걸까. 허영심 많은 여자아이가 구두를 신었다가 벌을 받아 고생한다는 게 이 이야기의 주된 흐름이다. 과연 카렌이 못된 아이여서 그랬던 걸까…. 어릴 땐 어떻게 할머니가 아픈데 빨간 구두를 사나 싶었다. 카렌의 잘못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과연 할머니가 하루 이틀 아프셨을까? 카렌이 기억하는 평생을 앓으셨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지금처럼 잠깐 아프고 회복하는 경우가 드물었으니까. 병간호는 힘든 일이다. 부모와 자식 간, 부부간에도 힘든데 어린아이는 오죽했으리라고. 진짜 핏줄도 아니니 할머니가 카렌을 배려해 줬을 것 같지도 않고. 유일한 일탈이자, 위로가 빨간 구두가 아니었나 싶게 된다. 문제는 그 시기가 종교 개혁과 아주 완벽히 맞아떨어진단 점이다. 청교도 혁명이 일어나 검은색에 맞춰 입고 검소한 걸 숭상한 시기. 부패한 교황이 신던 빨간 구두가 얼마나 화려했을까. 또 그 색은 얼마나 선정적으로 보였을까. 그리고… 고아 소녀가 자신들과는 다르게 예쁜 구두를 신고 있는 게 마을 사람들에겐 또 얼마나 고까웠을까? 카렌은 갑갑함을 느꼈을 것이다. 예쁜 걸 신고 기분 전환 겸 자신을 뽐내고 싶었을 테다. 아, 발목이 잘리고서도 쉽게 용서받지 못하는 소녀는 너무 무서운 예시다. 아이들을 다스리고 허영을 잡기 위한 대상이 카렌이어야만 했나. 혹여 그 구두가 하얀 구두는 아니었을까? 새하얀 구두도 얼마나 예쁘고 비싼가. 소녀가 신고 춤춘 구두가 벌을 받아 피에 물들어 그리 보인 게 아닐까…. 자신들의 추한 압박과 응징을 감추기 위해 색을 바꾼 건 아닌가. 알 길이 없으니, 안타깝다. 


    


선명하고 매혹적인 색이 붉은색이다. 싱그럽게 보이기도 하고 강렬하기도 하다. 잔혹하기도 하고 젊기도 한 그 색채는, 언제쯤 그 그늘을 벗어던지고 색으로만 여겨질 수 있을까. 아직도 빨간 머리는, 빨간색은 그 그늘을 떨쳐내지 못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모든 색은 제각각의 그늘을 가지고 있다지만. 그 그늘이 너무 짙고 어두우니 덜어낼 때가 아닌가. 가장 화려하고 강한 색, 빨강이 그 색을 제대로 발하는 날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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