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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Apr 23. 2021

꼭 함께해야만 하는 건 아니더라

<백설공주는 왜 자꾸 문을 열어줄까- 박현희>

동화는 보면 볼수록,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달리 보인다. 워낙 어릴 때 읽어서 그런 건지 예전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계속 머리를 쳐들곤 하니…. 한 번 본 게 또 달리 보이기도 하고 이젠 다 알았다고 한 게 뒤집히기도 한다. 동화의 가치는 그런 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생각하는 문제점과 사회의 인식과 갈등, 그 모든 게 동화에서 보인다는 점에서.      




이 책을 읽고, 한 동화에서 느낀 점이 오은영 박사님과의 이야기와 통하는 구석이 있었다. 언젠가 오은영 박사님이 하신 말씀이 있다. 나는 그 말을 보고 울컥 감정이 올라올 것 같았다.      


“같은 반 아이들은 등교부터 하교까지 같이 생활을 같이하는 사람들이에요. 교실을 같이 사용하고 수업을 듣고 화장실을 같이 사용하고 급식을 먹고 생활을 같이하는 사람들. 친구는 친한 사람을 친구라고 해요. 같은 반 아이들이라고 친구가 아니에요.”      


저 말은 내게 정말 필요한 말이었다.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잊지 못한 힘든 시간에 간절했던 한 마디. 같은 반에 친한 아이가 없었을 때의 괴로움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군중 속의 고독은 꼭 도시에서만 느껴지는 게 아니었다. 모두가 잘 지내는데 나 홀로 그렇지 않을 때.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그래서 나는 학창 시절 내내 모두와 두루두루 잘 지내는 아이를 부러워하고 동경했다. 반 아이들과 친해야 친구가 있는 것이었고, 좋은 거였다. 반 분위기가 다르고 반 구성원이 다르단 걸 알았지만 그건 와 닿는 감성이 아니었다. 그때는 모두가, 학생도 부모님도 선생님도 같은 반 친구들이라고 표현했으니까. 같은 반 아이들은 당연히 서로 친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안 되는 게 이상한 일이라고. 나이를 점점 먹으면서 반드시 그렇진 않다는 걸 느꼈지만 입 밖으로 표현할 수는 없었다. 그걸 대체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헤맸는데 오은영 박사님 입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그래, 같은 반이었다고 꼭 친한 건 아니다.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런 거였다. 인간관계가 얼마나 어려운 건데 그걸 같은 학교 같은 반이라는 작은 사회 안에서만 이야기하는가. 다른 사회에서 더 통할 수도 있고 안 맞는 사회도 있는 거지! 친구가 없는 것과 같은 반 아이들과 데면데면한 건 다른 이야기다!     


그 말은 내 가슴에 박혀서 구멍을 메워주었다. 있는지도 몰랐던 구멍이었는데 막히는 순간이 너무 기뻤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또 여우와 두루미 이야기와 이어질 줄은 몰랐다. 여우와 두루미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야기. 서로 골탕을 먹인 이야기. 배려에 대한 교훈을 주는 그 이야기 말이다. 솔직히 생각지도 못했다. 그래, 왜 둘이 붙어 있어야 하지? 서로가 어떻게 밥을 먹는지도 모르면 친한 사이는 아닐 테다. 여우는 분명 몰랐고, 두루미는 그걸 지적하지 못할 정도의 관계였다. 잘못을 대놓고 비아냥거릴 수도 없지만 이렇게 해주거나 바꿔주면 안 되겠느냐고 할 수도 없는 사이. 싸우긴 민망하고 친하다기엔 먼 사이! 같은 반 아이끼리의 모습과 참 닮았다. 그 둘이 굳이 만나서 이렇게 전해질 정도의 만남을 가진 데에는 무언의 압박이 있었던 건 아닐까. 같은 반 아이들끼리 싸우면 화해하라고 선생님이 등을 떠미는 것처럼. 솔직히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일이지만, 서로 친하지도 않고, 별로 친하게 지낼 사이도 아니고, 친하게 지내고 싶지도 않은 사이가 여우와 두루미 아닌가? 먹잇감이 겹치는 것도 아니고 서식지가 비슷한 것도 아니고. 둘이 천적도 아니고…. 그럼 굳이 둘이 같이 있어야 하는 이유가 뭐지? 같은 동물이라는 이유로? 너무 불합리하지 않은가.    

  

같은 반 아이끼리 굳이 친구가 될 필요가 없다. 그 둘은 다른 성질의 존재니까. 같은 맥락으로 여우와 두루미도 굳이 사이좋을 필요가 없다. 서로 친하게 지낼 상황도 환경도 마음도 아닌데 왜. 세상은 넓어서 두루미처럼 나는 새도 얼마든지 있고 여우처럼 돌아다니는 동물도 얼마든지 있다. 그런 존재들과 서로 밥을 먹고, 친하게 지내면 되는 것이다. 그럼 되는 이야기였다. 굳이 진정한 배려는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이야기의 표본이 될 게 아니라! 여우와 두루미는 그저 가다가 인사 정도 하고 지나가면 되었다. 그 둘이 굳이 붙어 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럴 필요도 없었고. 참 단순 명쾌한 진리다. 안 맞으면, 안 맞는 상태로 지내면 된다. 꼭 나아지거나 발전하거나 친해지지 않아도 된다. 내 앞의, 옆의 사람이 나랑 사이가 별로라고 내가 평생 혼자인 건 아니니까. 어디엔가는 나와 맞는 사람이 존재하니까 말이다.     


아무리 많은 사람을 알고 지내도 그 관계 하나하나가 똑같을 리는 없다. 지낸 세월, 지낸 시간, 지낸 사이의 무게가 어찌 같을 수 있을까.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것도 옛말이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그러하니 타인과의 관계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 이유로 자신을 스스로 탓하거나 미워할 것도 아니다.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만족스러운 사이도 있는 법이다. 여우와 두루미도 서로 나무 위와 나무 아래서 이야기했다면 즐거운 사이였을지도 모른다. 그래, 그런 거다. 그 사실이 이제는 널리 퍼져서 나처럼 헤매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마냥 모든 이와 친한 사람을 부러워할 것도 나를 싫어할 것도 없다는 걸 알아주기를.     




세상은 넓고, 사람도 많다. 나와 맞는 사람은 반드시 있다. 

옆에 있는 사람이 나와 맞지 않는다면, 구태여 붙잡지 말아라. 관계에 최선을 다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최선을 다했는데도 서로가 힘들고, 맞지 않는다면 함께하지 않아도 된다. 세계는 멸망하지 않는다. 

그러니, 당신 옆의 바로 그 사람이 꼭 자신과 맞아야 할 필요도 없고 같이 있어야 할 필요도 없다. 

안 맞는 걸 인정하고 각자 잘 살아 나가면 되는 일이다. 

깔끔한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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