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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Apr 27. 2021

차의 진정한 품격

<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이나가키 히데히로>를 읽고

 가장 품위 있는 ‘마실 것’은 무엇일까? 커피? 술? 혹은 그냥 순수한 물일지도 모르겠다. 굉장히 어려운 고민이다. 커피는 그 향의 풍미가 대단하다. 거기에 피곤한 몸을 달래주어 현대에서 가장 사랑받는 음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품위라는 말이 모호하긴 하지만, 그 가치와 대우로 치면 커피도 품위가 넘친다. 술도 무시할 수 없다. 포도주, 위스키, 과실주, 소주, 맥주… 다채로운 매력의 술이 얼마나 많은가. 도수가 낮아도 높아도 좋다. 안주와 함께 마시면 하루의 피로가 사라진다. 가볍게 곁들여도, 여러 재료를 섞어 칵테일을 만들어도 매력적이다. 물론 중요도를 생각하면 물을 이기진 못한다.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 유일한 액체다. 존재 자체의 의미와 의의를 품위를 보라. 물을 이길 게 있기는 한가?      


이 중에서 식물과 연관된 걸 찾아보면 제법 많다. 포도주는 말할 것도 없다. 커피도 바로 식물에서 나온 커피콩이 주재료다. 과실주도 소주도 맥주도 식물에서 다 시작된다. 물만이 유일하게 식물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지만, 물과 품위는 뭔가 안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취향과 필수는 다른 맥락이니까. 그래서일까. ‘품위 있는 마실 것’을 떠올렸을 때, 뇌리를 스친 건 다름 아닌 ‘차’였다. 영어로 Tea, 밀크티와 홍차, 허브차와 과일 청을 포함하는 음료 말이다.      




조금 엉뚱하지만, 나뭇잎의 맛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요즘 애들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생각보다 많은 아이가 이것저것 따먹곤 했다. 농약의 위험 때문에 먹지 말라고 해도, 주목의 빨간 열매 따위를 빨아 꿀을 먹는 건 놓치기 어려운 재미였으니까. 쑥을 캐는 것도 그다지 먼 이야기가 아니었다. 쑥을 캐는 건 그저 일종의 놀이이기도 했다. 나무 사이사이로 뛰어 들어가는 것도 그땐 괜찮았다. 꺾어진 나뭇가지를 들고 칼싸움을 하는 것도 아주 인기였다! 그런 환경이었으니 한번 넘어지거나, 고개 한번 돌려 나뭇잎이 입에 들어오는 경우는 한 번쯤 있었다. 쓰고, 떫기도 하고, 이상한 풋내가 가득했다. 그 틈에서 나물을 찾아 뜯는 아주머니들이 신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런데, 차는 무슨 조화인지 참 향기롭다. 찻잎 자체는 물론 쌉싸름하고 고약하기도 하지만. 그 약간의 이파리를 우린다고 향기와 건강, 맛까지 달라지니 꼭 오염을 정화하는 느낌이다. 실제로 영국 등 유럽 각국에서 차가 유행한 이유가 위생에 좋았기 때문이다. 수질이 그다지 좋지 않은 유럽에서 차를 마시기 시작하니 끓여야 해서 자연히 소독하게 되었고, 질병도 금세 누그러졌다. 한창 산업혁명으로 수많은 노동자가 발생했을 당시 그들을 받쳐준 것도 홍차였다. 우리가 아는 것보다도 그들에게 홍차는 중요했으리라. 항균 성분도 있고 수인성 질병도 예방해준다. 카페인이 있어 머리도 맑게 해 줬다. 그들에겐 진시황처럼 신의 음료로 느껴지지 않았을까. 차를 신의 음료, 불멸의 음료로 여겼던 진시황을 진정 이해 가능한 건 후손인 중국이 아니라 바다 건너의 영국일지도 모른다.     


차의 인기는 노동자들에게만 국한된 게 아니었다. 상류층도 애프터눈 티 (Afternoon tea)라는 우아한 의식까지 만들 정도로 차에 빠졌다. 모든 일을 집사와 하녀에게 맡겼던 귀족들이 손수 한 게 차를 다루는 일이었다니, 중국의 귀족, 조선의 선비, 일본의 다도가 서양까지 퍼졌다는 게 확연히 느껴진다. 그 모습이 너무도 유사해서 놀랄 지경이다. 다만 서양에서는 홍차와 밀크티 등이 자리 잡았다. 녹차 등을 주로 즐기는 동양과는 다른 취향이다. 이는 오랜 기간 운송을 해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녹차 대신 보존 처리를 거친 홍차를 수출했던 것이다. 그 덕에 동양과 서양의 차 문화는 아주 달라졌다. 동양에서 덜 시선을 끈 홍차는 서양에서 우유와 함께 상승세를 탔다. 거기에 설탕을 더해 아주 매력적으로 동양에 다시 들어왔다. 가장 오랜 음료이자, 가장 많이 마신 음료라는 게 과언이 아닐 수도 있다. 술처럼 몸에 무리가 가는 것도 건강에 안 좋은 것도 아닌데 그렇게 오래 전해졌다니. 지혜가 응축된 식물로 보이기도 하고, 모두가 매료된 수수께끼 같기도 하다. 그 매력 때문일까. 차는 두 번의 전쟁을 일으킨 도화선이 되었다.     


미국의 독립전쟁이 차에서 비롯됐다는 건 제법 유명하다. 보스턴 차 사건이 있기 때문이다. 영국이 식민지인 미국에 지나친 관세를 매기자, 분노한 미국인들이 차를 모두 바다에 던진 사건. 그 여파로 한동안 바다는 홍차의 빛깔을 띠었다고 한다. 영국의 유행이 그대로 미국에 가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 이후로 미국은 차 대신 커피를 받아들여 지금의 문화가 나타났다고 보기도 한다. 서양에만 전쟁이 나타난 게 아니었다. 동양에선 아편 전쟁이 일어났다. 이것도 영국에서의 차 인기 때문이었다. 영국은 차를 수입해야 했다. 하지만 청나라는 영국에서 살 만한 게 없었다. 자연히 영국의 적자만 기록될 수밖에. 그걸 메꾸고자 영국이 아편이라는 악랄한 수를 썼던 거다. 중독된 청나라는 갈수록 적자를 기록했고… 금지령도 소용이 없었다. 영국 상인들의 아편을 압수해 버리는 것이 유일한 해결이었다. 그게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일어난 전쟁이 다름 아닌 아편 전쟁이었다! 차에 매혹된 자, 차를 차지하기 위해 전쟁도 불사했다는 게 신화에만 나오는 소리가 아니다. 아주 현실적인 역사였다.     




옛날부터 차가 귀했고, 그 효능이 알려져서일까. 차를 차지하기 위해, 혹은 그 인기 때문에 전쟁까지도 일어나서일까. 차는 여전히 대중적이고 매혹적이지만 그 품위를 잃지 않는다. 양면적인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씁쓸하면서도 그 풍미가 살아있는 걸 보라. 그 쌉싸래함에는 전쟁의 피가 있고 노동의 그림자가 담긴다. 그 그윽함에는 살아난 표정이 있고 건강한 미소가 자리한다. 차는 언제나 그런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그것이 차의 진정한 품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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