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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Apr 28. 2021

아름다움이여, 영원하라

<아름다운 것들의 역사- 유아정>을 읽고

아름다운 건 늘 기분이 좋다. 보석, 옷, 레이스, 장갑, 그림, 부채… 종류는 아무 상관이 없다! 설령 그게 내 것이 아니라도 보는 것만으로 행복해진다. 괜히 전시회가 생긴 게 아니다. 공적인 물건이라도 무슨 상관인가. 예쁜 걸 보면 다들 기분이 좋아지지 않던가. 그래서 전시회에 그렇게 많이 오는 게 아닌가. 그게 아무리 역사적이어도, 의미가 깊어도 일단 사람들의 흥미가 있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하는 법이다. 전시회의 대중적인 입지와 성공이 아름다움의 중요성을 알려준다!     


그렇다면 아름다움은 보편적인 것일까? 이는 좀 어려운 문제다. ‘아름다움은 변덕과 친구’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변화와 함께하기 때문이다. 어떨 땐 풍성한 모란꽃의 치마였다가 줄어들어 난초의 꽃잎이 된다. 고귀한 은과 보석으로 만든 실버 드레스가 흰색의 레이스 웨딩드레스에 패배하기도 한다. 최신 유행이었던 옷이 잠옷이나 값싼 옷으로 취급받는 것도 흔한 일이다! 그러니 ‘아름다운 물건’은 늘 변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아름다움’은 언제나 추구받는 보편적인 사항임이 틀림없다. 시대가 변하고 왕조가 변하고 유행이 달라져도 아름답지 않으면 늘 조용히 사라졌으니까. 아름다움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바란 궁극적인 이상이 아닌가 싶다. 예쁘다고 생존에서 유리하진 않다. 적어도 어느 기준 이상이라면 맹목적으로 추구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인류는 일평생 그 명성을 얻기 위해 죽음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벨라도나의 액은 독이다. 하지만 이걸 눈에 떨어뜨리면 동공이 커지는 효과가 있었다. 독이라는 건 상관없이, 미용 목적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당연하게도 많은 여인이 죽어 나갔다! 그러나 절대 멈추지는 않았다. 화장을 위해 사용한 파우더는 오랜 시간 납이 들어갔다. 납이 들어간 파우더를 계속 쓴 미인들은 ‘역시나’ 죽음을 맞이했다. 수은이 들어간 화장품은 천연두 자국을 가리기 위해 애용되었다. 그 파우더를 가슴 부분에 바르기도 해, 아이와 남편까지 죽는 참사가 일어나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패션 유행은 건강을 신경 쓰는 법이 없었다. 적어도 드레스를 입던 그 시절에는! 가발을 쓰는 건 귀부인으로서의 몸가짐이었다. 머리칼을 붙이고 올리고 파우더를 또 뿌리고. 그 과정만으로도 지치는데 그 규모도 커서 많은 위험이 함께했다. 우리나라 이야기에도 간혹 나온다. 어린 며느리가 놀라 일어나다 가체 때문에 목이 부러졌다고. 서양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머리에 이가 끓고 가려워 죽을 판인 데다, 샹들리에의 불이 옮길까 노심초사했다. 심지어는 머리가 문에 끼어 오도카니 갇혀 있기도 했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머리 때문에 궁전의 문을 높이는 공사까지 할 정도였다니, 유행이 대체 뭐길래!      


이쯤 되면 인간이 마냥 어리석게만 느껴진다. 서로의 깃털을 탐색하고 유행하는 걸 얻기 위해 제 부리가 상처 입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는 까마귀가 아닌가 싶을 지경이다. 갈비뼈를 부수는 코르셋과 중독시키는 파우더는 그 생각을 아주 강력히 지지한다. 하지만 세상만사 나쁜 게 있으면 이로운 것도 있는 법. 그 아름다움 때문에 많은 발전과 변화가 일어났다. 사람들이 모피 코트에 열광한 걸 기억하는지? 한때 예물이면 ‘밍크코트’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들 했었다. 물론 그 코트에 사용된 건 모두 동물의 목숨이었다! 사람들은 코트의 촉감과 디자인에 환호했다. 생명에 대한 존중은 두 번째였다. 자연스럽게도 동물은 거의 씨가 말랐다. 사람들은 초조해졌고, 다른 방안을 내놓았다. 생명에 대해 존중하면서도 아름다움을 챙긴 인조 모피가 나온 것이다. 그 과정에서 화학 처리 때문에 문제가 많아 환경오염의 주범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완벽한 해답이란 없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중요한 걸 깨닫게 되었다. 사람의 옷과 아름다움을 위해서 마냥 희생되는 존재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걸 말이다. 그건 결국 모두의 비극을 초래할 거라는 걸 그때 모두가 실감했다. 


그런 바람직한 변화 외에도, 조금 의아하고 낯선 변화도 있었다. 좋은 면도 있고 이게 왜 이렇게 발전했는지 잘 납득이 안 될 정도로 의미가 부여되는 변화가. 옛날에 서민들이 일하기 위해 겉옷을 찢고 속옷을 드러낸 적이 있다. 거추장스럽고 잘 안 맞는 옷을 입고도 활동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게 귀족에게 가서는 의상에 대한 유행이 되어버렸다. 유일하게 세탁할 수 있었던 속옷이 섬세해지고 화려해졌다. 속옷에 대한 개념이 바뀐 것이다. 조금 성급할지는 몰라도 이 변화는 모든 스타일과 유행이 ‘겉옷’에 치중되었던 걸 뒤집었다. 몸에 가장 가까운 옷이 제 대접을 받게 된 것이다. 살갗을 보호하고 방한 효과를 위해 끼던 장갑도 나중에는 의중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었다. 부채도 날파리를 쫓는 데 멈추지 않고 부채 언어까지 나올 정도로 고급 전유물로 자리 잡았다. 반지마저도 이 손가락 저 손가락을 옮기며 각종 의미를 만들어냈다!     


자, 이 많은 변화는 어떤가. 사람들은 어떤 유행을 만들고, 쫓고, 발전시키고, 때로는 아예 다른 세계를 창조해낸다. 아름다움에서 시작해 기술의 발전을 요구하고 생각의 변화를 촉구한다. 아무것도 ‘아주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았다. 태초부터 있던 게 얼마나 되겠는가. 레이스가 대량 생산될 수 있게 된 것? 웨딩드레스의 기준이 하얀 웨딩드레스가 된 것? 다양한 색깔과 디자인의 옷이 나오는 것? 그 무엇도 원래 존재하지 않았다. 독을 미용에 쓰면서 부작용이 세상에 널리 퍼졌다. 색깔이 위험하지 않도록 많은 공모를 내걸었다. 어느 여왕님은 자국의 면직 발전을 위해 결혼에 큰 결심을 했다. 그 과정은 결국 아름다움을 위한 것이었다. 아름다움을 목적으로 한 일들이 모두 다른 분야의 변화도 가져온 것이다!     


전시회도 결국 아름다움 때문에 만들어지고 시작되었다고 말한 바 있다. 비단 전시회뿐만이 아니다. 기술의 발전으로도 모자라 많은 문화의 전통이 아름다움에 그 목적을 두지 않았던가. 그래, 세상이 그렇다. 어쩌면 아름다움의 추구, 미의 추구를 사람들에게서 앗았다면 어땠을까? 세상은 지금의 모습이 아닐지도 모른다. 모두가 가마니 같은 옷을 입고 추울 땐 담요를 둘둘 말고 더울 땐 벗고 살았을지도. 그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움을 예찬하게 된다. 고운 마음을 가져야 세상이 곱게 보인다고 하지만, 나쁜 이도 순간 곱게 마음먹을 정도로 고운 건 얼마나 아름다운가. 

아름다움이여,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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