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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Apr 29. 2021

'공무원'에게 변화가 일어나길

<나는 9급 공무원입니다-이지영>을 읽고

공무원은 내 삶에서 빠지지 않는 단어였다. 부모님이 두 분 다 공무원이셨으니 당연한 이야기다. 거기다 성격이나 성적이나 좀 특출 난 데가 없어서 공무원은 항상 내 추천 직업이었다. 내게 공무원은 아빠의 직업이자, 평생의 직업 후보였다. 조금 과장하자면 내가 이미 공무원의 길을 걷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다. 나는 지금 미대에 재학 중이니, 아빠의 말버릇처럼 돌연변이라 할 수 있다. 거기다 부모님은 두 분 다 이과에 전산과 출신. 문과에 미술을 전공하는 딸이 나왔다는 걸 신기해할 만도 하다. 딱히 일가친척 중에 예체능 분야에 있는 분이 많은 것도 아니니 더더욱. 왜 공무원의 길을 안 걸었느냐 묻는다면 아직 후보에는 있다고 답하겠다. 다만 행정이나, 경제학과 같은 전문 분야에 진학하지 않은 건 정말 싫어하는 분야였기 때문이다. 내게 공무원은 안정적이고 재미없고, 모범적이지만 때로 무의미한 직업이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한 건 아빠의 생활을 본 탓도 있을 것이다. 아빠는 정말 꾸준하고 무난한 시간을 보냈다. 더 큰 승진 대신 지방으로 내려온 걸 누군가는 비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빠의 그 결정으로 우리 가족은 훨씬 화목해졌다. 다른 이유도 있었지만 일단 서로 여유가 생겨 이야기하거나 나들이 가길 즐겼다. 한 번도 아빠의 지방 발령을 아쉽다 여긴 적이 없다. 아빠도, 엄마도, 나도. 그래서일까? 나는 공무원의 승진이나 생활에 대해 조금 무관심했다. 대체로 평탄하고 괜찮았으니 다 그런 줄 알았다. 그게 아니라는 걸 수없이 쏟아지는 뉴스의 기사로 깨달았고, 그건 꽤 충격이었다. 아빠는 그에 담담했고 엄마도 공감했다. 공무원의 길을 평생 염두에 뒀음에도 대학을 그런 방향으로 가지 않은 건, 그런 면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공무원 관련 책도 의도적으로 피해왔으니 말이다.  

   

그러니 이 책은 내가 처음 읽은 공무원 관련 책이나 다름없다. 내 공무원에 대한 인식을 틀은 책은 이게 유일하지 않을까? 많은 책을 읽었어도 공무원 생활의 이야기는 그리 끌리지 않았다. 거기서 거기인 이야기가 많아서인지…. 대부분이 무의미한 업무에 질려 떠나는 이야기였기에 읽을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 책은 10년 차 공무원이 썼다는 점에서 좋았다. 많은 이야기가 있었고 어느 정도 오래 자리 잡은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많은 자식이 부모님의 직업을 어렴풋이 알듯 나도 그러했다. 명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자리인지는 퇴직하신 지금도 잘 모른다. 조금 우스울지도 모르지만, 이 책을 통해서야 나는 공무원이 정확히 뭘 하고 뭐가 힘든지 알게 되었다. 그게 모두의 이야기가 아닌, 일부의 공무원 이야기라도 말이다. 공무원이 하는 일은 내 예상 이상이었다. 그래, 뭔가 무의식 중에 ‘나라에서 하는’ 건 모두 공무원이 다 한 것이었다. 나라라는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 아니라 가장 최전방에 있는 공무원 하나하나의 움직임이었다. 투표 날의 모든 요소부터 크고 작은 행사와 민원, 각종 관련 문서 모두가. 당혹스럽기도 했고 대단하기도 했다. 이렇게까지 힘드니 그토록 많이들 포기하는구나 싶었으니까. 그건 ‘아, 힘든가 보다’하고 지나가는 것과는 아주 다른 이해의 깊이였다. 마치 지금껏 배경이었던 것이 조명을 받은 것 같았다. 어떤 일이든 입체적이기 마련인데 그게 드러나지 않았다고나 할까. 시대가 많이 변해서 공무원에 대해서도 다양한 시각이 나온다. 그런데도 아직 공무원은 너무 평면적으로 보이는 게 아닌가 싶다.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닌데.

      

사람들은 생각보다 단순하고 편협하다. 착한 사람일수록 의문을 가지지 않고 잘못된 행동을 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니 어떤 직업이나 주제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가지는 건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게 거기서 멈춰야 한단 이야기는 아니다. 어려운 일이니, 그러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소리다. 공무원이 많은 우리나라지만 그만큼 관심과 생각이 따르는지는 의문이다. 저자가 지적한 것처럼 허례허식도 있고, 잘못된 인식도 있고, 너무 함부로 대하는 것도 있고 의미 없는 겉치레의 일들도 존재한다. 공무원이 철밥통이다, 하는 것도 없으면서 나라의 녹을 먹는다고 하기 전에 그런 점의 개선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욕도 안 먹고, 효율적이고, 얼마나 좋은 일인가. 꿈같은 소리라고 해도 그게 가장 좋은 길임은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9급 공무원은, 뭔가 현실적이면서 힘든 모습을 대변하는 청년의 느낌을 담고 있다. 청년들이 그만큼 안정적인 직업을 열망하기도 하고, 그만큼 지원하기도 하는 직업이라서 그럴까. 그래서 좀 만만하기도 하고, 좀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괜히 그런 감상이 든다. 언제쯤 그런 인상이 바뀔 수 있을까. 저자는 어떤 업무든 주민이 필요로 하는 일이 공무원의 일이라고 한다. 그러니 너무 우울해하거나 무가치함을 느끼지 말라고. 분명 언젠가는 그런 나날이 쌓여 배울만한 게 있다고 말이다. 공무원들이 느끼는 그 힘든 감정이 하루빨리 덜어졌으면 좋겠다. 그럼 내가 가지고 있는, 어쩌면 다른 누군가도 가지고 있을 공무원에 대한 인식도 바뀌지 않을까. 그게 또 이어져서 좋은 사회의 시작이 될지도 모르고…. 부디 공무원에 대한 인식도 바뀌고, 공무원의 업무도 좀 바뀌었으면 좋겠다. 그게 한 구성원의 행복을 좌지우지하고, 심하면 인생도 좌지우지하지 않던가. 그러니 어쩌면 그 작은 시작은 아주 중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짐작보다 훨씬 대단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사소하기 짝이 없는 변화가 새로운 나날의 문을 열지,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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