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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Jan 07. 2021

음식으로 향수 느끼기

<생강빵과 진저브레드-김지현>을 읽고

기분 탓인지 모르지만, 기시감이 들었다. 뭔가 많이 본 책 같달까? 

책의 내용보다 표지가 더 익숙했다. 어쩌면 학교에서 본 적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내 취향의 책이었다.

나는 많은 소설과 에세이에서 나오는 묘사를 사랑한다. 그 묘사들은 정말 빠져들게 되니까! 옷의 광택과 질감, 정교한 아름다움, 풍경의 생생함과 음식의 군침은 정말 어느 책이든 마음에 든 구절이 있었다. ‘제인 에어’에 한창 빠져 있을 때 좋아한 부분도 록우드 학교에서 좋은 음식을 먹으며 여유를 부리던 순간과 화려한 파티가 열린 날 음식의 향연이었다. 소공녀에서 나온 파티의 묘사도, 키다리 아저씨와의 다과도, 앤이 정성 들여 만든 케이크도 잊히지 않는 구절들이다. 나오는 음식의 묘사는 먹어보고 싶을 만큼 이국적으로 느껴지고 환상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일까, 나는 데운 우유에 꿀을 탄 평범한 간식도 한때 부처가 먹은 ‘우유 죽’처럼 생각하고 먹어 가장 즐기기도 했다. 황금빛 버터는 신들의 음식처럼 신선하게 느껴졌고, 별다를 바 없는 빵도 대단한 것처럼 여겨졌다. 월귤 같은 낯선 표현으로 다가오는 과일에도 흥미가 치솟곤 했다. 여담이지만, 나는 붉은 머리의 앤이 만든 첫 케이크가 ‘레이어 케이크’인 관계로 초등학생 때 카페 놀이를 할 때면 무조건 케이크를 레이어 케이크로 설정하곤 했다. 가장 좋은 케이크인 줄 알았으니까. 그리고 고기는 무조건 차가워야 하는 줄 알았다. 그 당시 즐거운 나만의 소설을 쓸 때 따뜻한 고기를 묘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의아했지만 고급스러워 보여 절대 갓 구운 고기 따위를 놀거나 이야기할 때 쓰지 않았다. 세상에, 책이 어린 여자애에게 주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보이는 순간이다!     


저자는 번역과 관련하여 음식에 관해 서술했는데,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도 나와 새로웠다. 젤리와 잼, 설탕 절임의 구분이 그토록 애매할 줄이야! 젤리를 바른 닭고기를 늘 궁금해하곤 했는데, 투명한 잼 정도로 생각하면 미묘하다. 지금도 잘 상상이 가지 않는다. 과일즙에 설탕을 넣고 끓인 것이라니, 과육이 없는 잼이라니…. 이것이 또 가금류의 고기와 어울린다는 게 아이러니할 뿐이다. 잼에서 과육을 골라낸 것을 설탕 절임이라 하는 것도 놀랍다. 음… 요즘은 설탕 절임이 좀 나오고 있긴 하지만, 차라리 젓갈이 익숙한 내겐 어쩔 수 없나 보다. 다만 좀 아쉽다. 내게 설탕 절임은 흔한 잼보다 맛있는, 달고 단 무언가였는데, 무너져버렸다.


그래도 폭풍의 언덕에서 나온 거위 구이의 경우에는 새로운 이해로 인해 그 상황의 비극이 더 잘 다가왔다. 아쉬웠던 것은, 저자가 어른들은 캐서린이 히스클리프는 잊고 호화스러운 지금에 집중하길 원했을 것이라고 했지만 사실 그 당시의 어른은 캐서린의 오빠와 새언니 정도였다는 것이다. 부모님이 한 분이라도 계셨다면 히스클리프가 그렇게 방치되지는 않았을 테니까, 부모님을 원망하는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다 자신한다. 음식과 큰 관련은 없지만….     


이와 다르게, 주 이야기인 로빈슨 크루소의 모험은 관심 없었지만, 음식인 거북에는 관심이 많기도 했다. 바다거북을 먹는 이야기는 어떤 소설에도 없었다! 물론 대부분이 소녀의 성장 소설이었던 독자에겐 당연하겠지만, 강렬했다. 맛있다는 표현이 나를 사로잡아서 무슨 맛인지 정말 궁금하고 어떻게 저런 생각을 했을까 했는데, 그 당시 그렇게 유행했었다니 경악스럽다. 가짜 바다거북 요리까지 있을 정도였다니. 요리 방법도 소설과 유사했다니! 하기야 랍스터도 한때 죄수나 먹는 음식이었으니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음식의 귀천은 정말 유행에 따라 좌지우지되는구나. 나중엔 흔하게 먹은 보리차가 포도주 정도로 비싸지는 건 아닐까?      


월귤은 내가 버터밀크만큼 환상을 가진 재료였는데, 블루베리, 링곤베리류라는 걸 알게 되니 허탈했다. 알 수 없는 향기에 매료된 줄 알았는데 그게 내 코앞의 장미라는 걸 알았을 때의 허탈함이랄까. 그래도 정체를 알아 시원하다. 차라리 링곤베리라고 번역했다면 덜 매료되었을 텐데! 하필 월귤은 그렇게 글자도 예쁘게 어우러질 일일까. 이에 대해선 번역가인 저자도 많이 헤맨 것 같다. 그래…그래도 베리류라고 그대로 썼으면, 그것도 그것대로 아쉬웠을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원래 상상의 음식이 항상 더 맛있어 보이는 법이니까!     


버터밀크도 마찬가지다. 물론 당장 생크림으로 만드는 건 아주 달고 맛있다지만, 그 당시엔 냉장고가 없었으니 시큼했을 것이라는 설명은 차디찬 현실로 이끌어지는 기분이었다. 지금도 있지만, 영양 보충용이고, 요리의 재료로 취급된다는 것이 아쉽다. 어딘가에서 버터밀크 음료를 따로 팔았으면 좋겠다! 로라와 메리가 그렇게 좋아한 맛이 어떤 맛인지 공감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 너무 아쉽다. 나 역시 초원의 집의 열렬한 독자인데! 비밀의 화원에 대해 함께 찬탄한 동료인데! 굉장히 아이 같은 투정이지만 저절로 투정이 나온다. 가장 순수하게 책을 좋아할 때 접한 묘사들이라 무시할 수 없다. 지금까지도 그 책을 이야기하면 웃음이 절로 나오니까. 그런 책은 흔치 않다. 그러니 있을 때 맘껏 누리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게 문제는 아니다! 놓치면 늦는 법이니까.      


책에 나온 묘사는 한 번쯤 본 요리들이었고, 나 역시 가진 환상과 궁금증이었기에 굉장히 반가운 책이었다. 어른으로서의 이해와 동심의 환상이 결투를 벌이긴 했지만. 아쉬운 것은 내가 본 다른 묘사나 모르는 음식에 대한 것도 나왔기 때문에 내가 직접 쓰고 싶어졌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어릴 적 읽은 책들의 묘사와 음식들에 대해 보고 나니 그 시절이 생각나 향수를 느꼈다. 옛 학교에 간 것도 아니고 옛 친구를 만난 것도 아니지만, 다른 무엇보다 아련하고 그리운 감정이 가득했으니. 처음 책을 읽었을 때의 흥분과 설렘이 생생해 읽는 내내 웃음이 나왔다. 분명 나만 이런 감정을 느끼진 않았을 텐데, 어쩌면 지금 명절 음식을 소개하는 몇몇 책도 나중엔 이런 감정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르겠다. 훗날 명절 음식은 사 먹는 음식의 대표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러면 더 많은 사람이 내 소감에 공감할 수 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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