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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May 03. 2021

그냥 행복하면 되는 거지 뭐

타고난 것, 성공과 인생에 대하여

“넌 왜 애가 욕심이 없니?”     


이 말은 내가 평생 들어온 말이다. 언뜻 들으면 좋은 거 아니냐고 할지도 모른다. 욕심이 없다는 건 달리 보면 딱히 물욕이나 독점욕이 없어 착하다고 느껴지기도 하니까. 하지만 저 말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 성취욕에 대한 이야기다. 더 높은 성적이나, 더 높은 등수에 대해 왜 욕심을 내지 않느냐며 답답해하시던 와중에 튀어나오곤 했던 소리다. 사실 높은 성적, 좋은 점수 바라지 않는 학생이 몇이나 되겠는가. 모두가 이왕 하는 거 좋은 결과를 내고 싶을 것이다. 그 분야에 관심이 있건 없건, 싫어하건 좋아하건. 어쨌든 하는 거니까 점수가 높고 등수가 높다고 싫어할 사람은 없을 것 아닌가. 차이점이라면, 나는 굳이 욕심이 나진 않았을 뿐이다.   

   

높은 점수, 좋다. 높은 등수도 좋다. 내가 치른 시험의 결과가 좋으면 좋을수록 기쁘긴 하겠지. 원하는 목표를 이뤘을 때 느끼는 성취감의 달콤함을 안다. 그게 내 인생에 도움이 되면 되었지 나쁠 건 없다는 것도. 그럼 왜 그런 모습을 안 보이느냐? 혹은 왜 그런 성취에 욕심을 내지 않느냐? 그저 그렇게 지내고 싶지 않을 뿐이다. 사람이 타고난 모습이 있지 않은가. 나는, 예나 지금이나 주어진 대로 행복을 찾을 타입이다. 나쁘게 말하면 향상심이 없지만 좋게 보면 있는 한도 내에서 누릴 줄 안달까. 신분제 시대에 태어났으면 문제점을 보고 혁명을 일으키고 개혁 의지에 불타는 위인은 아니어도, 제 할 일 하며 잘 살았을 범인이었을 거다. 그런 모습이 너무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걸 보면 그냥 내가 그런 사람인 거겠지. 그게 반드시 고쳐야 할 점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딱히 단점도 아니다. 그냥 내 모습일 뿐이다. 세상에 완벽한 존재, 완벽한 모습이 있던가?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 너무 모나서 내가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고쳐야 한다. 혹은 내가 지닌 게 윤리나 도덕, 예의와 배려에 어긋난다면 그것도 교정해야 한다. 반대로 말하면 그런 게 아니라면 굳이 고칠 필요는 없단 이야기다. 본인이 바뀌고 싶다면 이야기가 다르지만 바뀔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면? 그럼 바꿔야 할까? 사람이 타고난 성격이 있는데 그걸 다 천편일률적으로 다듬는 게 과연 좋은 일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해 보라. 취향은 얼마나 다양한가. 단순하고 깔끔한 것부터 화려하고 복잡한 것, 부드러운 곡선과 딱딱한 직선, 눈에 확 들어오는 빨간색부터 은은한 연분홍색까지 그 다양성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다. 취향은 홀로 생기지 않는다. 사람이 있어야 취향도 있다. 취향이 그토록 다양한데 사람이 단순하길 원하는 건 이상하지 않은가. 사람은 다양한 성격과 본질을 타고났다. 그러니 모든 이가 영웅이 되길 바라지 않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누군가는 평범한 생활에서 지루함을 느끼겠지만 누군가는 그 안에서 행복과 평화를 느낀다. 나는 명백히 후자라서, 모든 이가 영웅이 되길 요구하는 요즘 시대를 좀 낯설어하기도 했다. 굳이? 저걸 해야 하나? 왜? 이런 생각을 멈추기 힘들었달까…. 직업을 가질 준비를 하는 지금도 큰 틀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게 직업은 참 어려운 길이다. 영웅은 원하는 게 확실하다. 명예면 명예, 돈이면 돈, 지위면 지위. 그렇지만 직업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사람이라면? 나는 솔직히 어떤 직업이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고 윤리, 도덕,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면 잘하고 살 것 같다. 목표가 있다면 부모님 용돈 드리고 내 생활 내 돈으로 충당하고, 내가 사고 싶은 것 가끔 사면서 사는 인생이랄까. 기부도 하고 놀기도 하는 그런 인생. 내가 바라는 건 어떤 직책이나 도달점이 아니라 그냥 삶의 모습이다. 정말 그렇게만 되면 난 좋을 것 같다. 그거면 소원도 여한도 없다. 음, 아주 괜찮을 것 같다.      


어쩌면 이런 내 이야기에 못마땅함을 표출할 수도 있다. “저런 불효녀가 있나!”라느니 “요즘 젊은이들이란!”라고 하면서. 솔직히, 이 말에 마냥 당당하진 않다. 나만 해도 성취욕을 지니고 나아가는 사람들을 선망하곤 하니까.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 걸 어쩌겠는가. 사람이 타고난 걸 너무 부정하고 살면 삶이 힘겨운 법이다! 물론 나는 희대의 효녀는 되지 못할 것이다. 부모님께 어마 무시한 호강을 누리게 해 드릴 순 없겠지. 인생이 갑자기 역전한다거나 빛을 보게 되진 않을 거다. 하지만 나는 희대의 개망나니도 아니다. 명품에 빠져서 돈을 몇 백, 몇 천씩 들이고, 복권에 온 재산을 쏟거나 땅문서를 들고 튀거나 하는 일은 없을 거란 이야기다. 정말 천재지변이 아닌 한, 우리 가족의 인생엔 큰 복도 큰 재앙도 없을 거다. 외동의 특권이랄까, 나만 어떻게든 제 할 몫을 찾아 자리 잡고 살면 걱정도 없고. 그러니 너무 염려하지 않길 바란다. 세상엔 생각보다 괜찮은 조건도, 괜찮은 인생도 많다. 성공가도를 달리는 사람들만의 인생이 인생이 아니다. 

     

혹시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다면 세상의 압박에 너무 지치지 않길 바란다. 나 역시도 내가 잘못됐나,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건가, 왜 이럴까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그냥 사람 중엔 그렇게 태어난 사람도 있는 것뿐이다. 그게 전부다. 그러니 그냥 폐 안 끼치고, 올바른 선에서 타고난 대로 살면 된다! 이왕 태어난 거 행복하게 잘 살고 가야지. 모든 이의 인생은 제각각의 인생이 아니던가. 모두가 모두의 방식으로 행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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