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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May 04. 2021

맛있는 게 진리 아니던가

<우리 음식의 언어-한성우>를 읽고

 맛있는 건 정말이지 최고다. 우울한 일이 있어도, 누군가와 싸워도, 좋아하는 걸 먹으면 사르르 사라진다. 이걸 두고 단순하기 짝이 없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구도 먹는 거로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걸 부정할 순 없다! 그만큼 음식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 자연스럽게 우리가 쓰는 언어에도 스며들 정도니까. ‘가을 전어는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 ‘꿩 대신 닭’, ‘그림의 떡’,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 음식이 들어간 속담이나 관용어는 언제나 넘쳐난다. 이런 표현이 아니더라도 단어부터가 다양하다. 김치의 종류며 명태의 호칭이며, 나물의 사투리를 생각해보라. 가뜩이나 한자어와 고유어, 외래어가 섞인 우리나라다. 종류가 넘쳐난다!      


이 책에선 그런 단어의 기원에 대해 해석한다. 전어의 전이 돈을 뜻하며, 그만큼 귀히 여겨졌다는 것처럼. 아귀의 옛 이름이 ‘물텀벙’인 이유는 어부들이 버려 물이 텀벙텀벙 소리 난다고 했기 때문에. 은어가 도루묵이 됐단 이야기는 허구지만 본래 도루묵과 묵이란 표현이 있었을 거라는 추론이나 과자의 기원이 과일처럼 달지만, 과일 모양으로 만든 다른 것이라는 것.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도 많았고, 눈을 뜨게 된 부분도 많았다. 특히 쌀과 밥이 어느 지역을 가든 사투리가 없다는 것이 놀라웠다. 부추만 해도 열 개가 넘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가장 많이 먹는 쌀이 없다니! 그 정도로 쌀과 밥이 중요했고, 어딜 가나 통하는 이야기였음이 와 닿았다. 가장 중요하고 무엇보다 귀한 것임을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는 지금도 전국 곳곳의 식당에서 공깃밥이 1000원이다. 백숙 하나가 천정부지로 뛰어도 밥의 가격은 변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저 가격대가 깨지는 순간 시대가 달라질 것이라 하기도 한다. 세월이 많이 흘렀어도 밥의 위치는 변하지 않았다. 그 조상에 그 후손이다. 

    

물론 밥의 종류가 세분되면 약간의 차이가 드러나긴 한다. 콩밥이나 보리밥, 조, 수수 등이 포함이 되니까. 그렇다면 밥도 여러 이름이 있는 게 아니냐, 너무 과대해석이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든다면 부추를 떠올려 보시길. 절대 과대해석이란 생각이 들지 않을 테니. 밥을 기준으로 국과 반찬이 나오는 밥상에서 밥은 중심을 잘 지키고 있었다. 지금이야 밥의 가치가 떨어지고 다채로운 반찬이 중심이 되었지만 말이다. 이 변화를 나쁘게만 봐선 안 된다. 그럴 필요가 없다. 더 살기 좋아진 걸 부정할 필요는 없는 법! 옛날을 마냥 태평성대로만 생각하며 전통에만 눈이 멀면 퇴화하는 법이다. 그런 많은 변화가 나타났음에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기는 하다. “밥상의 구성이 단순하지 않다”라는 점이다. 가짓수나 조리법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생각해보라. 밥만 하더라도 종자와 모내기에서 얼마나 많은 손과 이야기가 오갔는가. 여러 지방에서 이런저런 해결책이 나왔고, 몇몇 천재들이 그걸 정리했다. 모두가 싸우는 와중에도 백성을 생각하는 관리는 존재했고, 그 관리의 아래 성실한 농민들이 일군 터전이 빛났다. 힘겨운 세월을 지나면서도 그런 방식은 먼지 쌓여 처박히지 않았다. 나물을 무칠 때도 기름을 썼고, 그 기름은 또 장터에서 말이 나왔고, 누가 먼저 시작했고, 김치를 담가도 어디서 어떤 방식을 썼고…. 밥상의 복잡함에 대해선 끝이 없다. 지금의 식탁도 별다를 바 없다. 보리차나 쌀밥은 국내에서 어떤 경로를 통해 만들어진 것이고, 인기인 마라탕이나 버블티도 외국에서 들어와 우리 입맛에 맞게 계량됐다. 짜장면이나 라면도 마찬가지고, 각종 새로운 빵과 디저트가 나타났다. 그 가짓수는 옛날과 비교하면 수라상에 가까울 지경이다. 점점 우리의 밥상은 커지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런 변화에 대해 부정적일 수도 있다. 외국의 음식을 너무 좋아하면 안 된다고 할지도 모른다. 외국의 음식을 좋아하고, 외국에서 전래된 음식을 먹으면 우리의 것이 사라진다고 볼지도 모른다. 과연 그럴까. 우리나라는, 한반도는 태평성대인 적이 아주 적다. 아래로는 왜구가 위로는 여진, 말갈, 몽골, 거란, 한족, 만주족이 괴롭혔고 전란은 흔한 일이었다. 가뭄이나 홍수도 다반사였고 프랑스나 미국이나 러시아나 우릴 정당히 대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를 겪었고 6·25를 치렀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지키고자 한 게 헛된 일이었나? 우리는 우리의 삶을, 문화를, 역사를 지켰다. 그 사이사이에 외국의 영향을 안 받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그 영향을 나쁘게 봐서 무엇하나. 악영향도 있었으나 선한 영향도 있다. 애초에 세계는 서로서로 무역하고 교류하며 발전했다. 식민지라는 개념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그래 왔다. 거기다 주제는 음식이 아닌가. 깊은 의미가 있어 누군가가 만들어낸 하나뿐인 신념이나 문화재가 아니다. 우리의 삶에 계속 자리한 필수 요소다. 너무 엄하게 그 잣대를 들이댈 필요가 있을까. 

     

이 곳이 원조다, 저곳이 원조다, 이 논의는 얼마나 불필요한가. 원조라 함은 전통을 의미한다. 이는 오늘날 저작권과 창조성에 있어선 아주 큰 가치다. 상품성이나 가치에도 마찬가지. 하지만 그걸 떠나 예로부터 온 요리나 대중화된 요리를 굳이 원조를 따지는 건 얼마나 무가치한 일인지 모르겠다. 결국, 음식은 먹는 것이다. 먹기 위해 존재하고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걸 먹고 사람이 힘을 내고 살아가기 위해서. 그러니 어느 정도 건강하고, 나쁜 재료를 쓰지 않고, 맛이 좋으면 된 일이다. 그게 음식의 핵심이니까. 그야말로 ‘예로부터 내려온’ 음식의 원조 의의가 아닌가. 맛있는 건 언제나 최고인 법, 인생의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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