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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May 08. 2021

이젠 없는 걸 알아야 하는 이유

<뜻밖의 한국사-김경훈>을 읽고

전통은 우리나라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다. 역사를 모른다면 어느 나라에서보다 힐난을 받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폐비 윤 씨와 장희빈에 대해선 알아도 그때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아는 사람은 극소수다. 대다수가 아주 어렴풋이 짐작할 뿐 정확히 말하지 못한다. 나 역시 그런 경향이 있다. 다행히도 그런 경향을 눈치챈 많은 작가, 전문인들이 그에 관련한 많은 책을 내주었다. 그중에 하나가 이 책이었다.     

 



부제가 <조선왕조실록에서 챙기지 못한 이야기>인 이 책은 그 부제가 참 잘 어울린다. 실록에서야 왕실, 그중에서도 왕에 대한 것만 나오지 않던가. 그 기록에서 다루지 못한, 소소하고 기반인 이야기를 이 책에서 볼 수 있었다. 연지가 처녀성을 상징한다던가, 귀걸이가 선조 때나 돼서야 금지당했다던가, 신 씨 집안은 성씨 때문에 장을 담그지 못했다던가…. 스치듯 지나가지만 지금과는 많이 다르고 그때는 중요했던 이야기들을 말이다. ‘한때’ 중요했던 것들은 그 의미가 생각보다 깊다. 그런 요소들에서 변화한 가치, 생각, 태도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긴긴 역사 속에서도 변치 않는 건 존재하는 법이다. 사랑이나 도덕이나 윤리 같은 것들.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가치들 말이다. 변하는 가치와 요소보다 그런 절대적인 가치가 더 중요한 건 안다. 변하지 않는 가치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다만 그렇다고 변하는 요소들이 가치가 없다는 게 아니다. 생각해보라. 안타까울 정도로 세상은 빨리 변했다. 20살이 갓 넘은 사람들이 옛 시간을 추억할 정도록 변화가 많이 일어났다. 조부모님과 부모님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다. 많은 것들이 너무 순식간에 사라졌다. 긴 시간, 지속된 것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계속해서 중요하게 여겨져야 했을 요소가 가치를 잃기도 했었고 우스꽝스러운 숭배가 일어나기도 했었고…. 그렇다면 그 변화로 가득한 나날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계속해서 가쁜 시간 속에 변한 양상은 자칫하면 변화 속에 묻힌다. 그 시절이 어떤 시절이었는지 어떤 시간이었고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없는, 혹은 변한 시간의 이야기는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때의 모습을 그 무엇보다 잘 알 수 있으니까. 많은 변화가 사이에 존재하는 시간의 이야기는 생각보다 매력적이고 흥미롭다. 그게 우리의 생활과 유전자에 남아있다면 더더욱!     


예를 들어보자. 남성이든 여성이든 지금 조선시대로 간다면 선비들은 첩을 마음껏 취하고 데려갈 수 있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실제로 그러했으니까. 하지만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게 있다. 예나 지금이나 조강지처의 한은 어마어마하다는 점이다. 그건 조선시대라고 다르지 않았다. 첩과는 비교할 수 없는 위치와 권력이 있었으나 그녀들의 증오는 잔인하게 나타났다. 고문하고 머리카락을 자르고 두들겨 패고 독까지 먹었다. 심지어 그런 살인과 학대가 문제가 되어 남편이 벌을 받아도 아내는 대신의 처라는 이유로 처벌을 피하기도 했다. 그러니 어찌 보면… 그 시대의 여성들이 무조건 참아야 했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저 그때는 여성 대 남성, 양반 대 노비 중 성별보다 신분이 더 강하게 작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 모든 원흉은 물론 양반 남성들에게 있었다. 하지만 우습게도 여성이 남성에게 그 대가를 요구할 수 없었기에 많은 본처가 첩에게 화풀이를 했다. 그렇다 해도 과한 처사가 아니었느냐고? 첩의 입장에선 그럴지도 모른다. 대부분 본인의 의사보단 남성의 의사로 첩이 되었을 테니까. 억울하고 눈물이 날 수도 있다. 어쨌든 한집에 사는데 그렇게 모질게 굴어야 하느냐고.   


그럼 한번 처의 입장에서 보자. 그 당시 여성들은 시집가면 모든 집안일을 해야 했다. 양반 여성이라면 모름지기 제사를 모시고 친척들을 모두 보살피고 노비들의 생활까지 다스리며 자식들의 교육까지 모두 신경 써야 했던 것이다. 이렇게 할 일이 많았는데 남편이 수입이 없거나 요절하면 자식 교육과 생계를 위해 술을 빚어 팔고, 삯바느질하고, 빨래해 돈을 벌어야 했다. 시부모를 모시는 건 기본이요 잘해야 본전이었다. 집안을 몸소 쓸고 닦진 않았을지라도 그 관리는 모두 한 사람에게 쏠려 있었다. 남편 뒷바라지며 혼례 준비 같은 것도 전부! 이렇게 일하면 누구나 스트레스가 쌓일 텐데, 그 화를 발산하기도 쉽지 않았다. 일 년에 몇 번 친정을 가는 것도 어려웠고 여인들끼리 만나는 것도 그 수가 적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할 일은 끝이 없고 화는 다스리기 어려운 와중에 의지할 수 있는 남편이 또 다른 여자를 만난다? 눈이 안 뒤집히게 생겼는가? 그 원망은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것이다. 혼인이 여인의 두 번째 인생이란 말은 괜히 나왔던 게 아니다. 그 시대는 그런 인생을 여인들에게 강요했다. 그러니 여인들의 화는 첩에게 쏠릴 수밖에. 그 범죄의 양상을 변호하는 것은 아니나, 그때 진정 대가를 치러야 했던 원흉은 아무 처벌을 받지 못했던 걸 생각해주길 바란다. 그런 점을 생각해보면 그건 단순 범죄가 아니라, 사회 구조의 잘못된 점이었다. 한두 명도 아니고 꾸준히 그런 일들이 발생했던 것만 보더라도 명확한 잘못이었다!

     

보라. 우리는 옛날 처첩 갈등에 대해 아주 짧게 알고 지나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갈등은 단순 질투나 시기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그건 조금만 살펴보고, 상황과 뒤의 처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지금은 첩이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처첩은 이제 한때 있었던 일의 요소로만 남았다. 그러나 그런 요소를 통해 우리는 그때의 사회 구조가 어떻게 잘못되었었고 왜 그런 일이 일어났었는지 파악할 수 있다. 그 사이의 변화가 마냥 부정적이지 않았다는 것도 함께 말이다. 이게 우리가 변화해 이젠 없는 일들을 알아야 할 이유다. 세상이 긍정적으로 변한 면이 있으며 사회의 실수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으니까! 그걸 아느냐 모르느냐는 살아가는 데 큰 차이를 보여줄지도 모른다. 그 차이가 아주 조금 더 긍정적인 모습에 불과할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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