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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May 09. 2021

어느새 행복의 한가운데이길

모든 순간의 인문학-한귀은을 읽고

인문학이란 이름은 중요하게 느껴져는 이름이다. 나는 인문학에 부담을 느낀 적이 딱히 없어서 가볍게 책을 골랐는데, 이 책은 내 생각보다 가벼운 인문학이었다.      




모든 순간에 인문학이 나온다는 것은 생각보다 인문학이 별 거 아니고 내 순간들을 더 윤택하고 의미 있게 만들어준다는 것이었다. 생소할 만큼 인상 깊은 구절이 많아서, 표시한 흔적이 지금껏 읽은 책 중에 가장 많았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책은 너무 주마간산 식이라 좋아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그중 구원이 일상 속에 있다고 언급한 것이 있었다. 숨 쉬고, 공부하고, 먹고, 하는 것 자체가 기쁨의 대상이고 이를 통해 구원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소소한 기쁨으로 가득한 일상이 곧 구원이라고나 할까?      


우리는 진학하고 승진하기 위해 공부하고 건강을 위해 산책하는데 이것이 그 자체로 목적이 된다면 얼마나 생소할까?

라는 게 저자의 말이었다. 정말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었다. 나는 행복이 삶 자체여서 살다 보면 오기 마련이라고 여긴다. 뭘 이룬다고 행복이 영원히 유지되진 않으니까. 그저 사는 것이 행복해야 행복을 알고 느낀다고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이런 게 흔한 생각이 아니라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그래서인지, 저자의 의견이 반가울 지경이었다. 저자는 구원을 가벼운 구원으로 연결시킨다. 엄청난 목표나 달성이 아니다. 그저 민소매 원피스와 같은 가벼운 구원을 상기시킨다. 구원이란 말이 얼마나 무겁게 느껴지는지 생각해보면 좀 황당할 지경이다. 구원이라 함은 사람의 인생을 구하는 게 아니었던가? 그런 큰 변화가, 행복이, 어떻게 이토록 가볍게 느껴지는가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우리의 일상에서, 말하자면 정말 별 것 아닌 가벼운 나날의 지나가는 말이 구원이 되곤 하는 걸. 그건 우리에게 낯선 소리가 아니다. 누군가가 스치듯 이야기한 게 큰 격려도 도움도 되는 게 그리 드문 일이던가? 그럴 리가! 우리 인생이 언제 그렇게 무거운 말들로만 가득하다고 그렇게 말하는지!      


내가 아무 생각 없이 격려해주겠다는 생각 만으로 한 말이 친구에게 큰 의미가 될 수도 있고, 무시할 수 없단 이유만으로 들어준 것이 그 사람에게 뜻깊게 다가올 수도 있다. 흔하고 뻔한 이야기지만, 이걸 구원이라고 인식한다면 그 사실은 다르게 다가온다. 우리의 인생이 마냥 힘들고 고되진 않다고나 할까…. 저자는 그래서 굳이 구원이란 표현을 쓴 걸지도 모른다. 도대체 어떤 것이 구원인가, 우리의 어떤 모습이 구원인가에 대해 인지함으로써 살아가는 게 아주 달라질 수 있으니까.       


저자는 또 하나, 구원 말고도 이상형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상형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심리학적으로, 철학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지는 몰랐다. 5~8세 사이의 인상으로 이상형이 결정된다는 것이 무섭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뭘 아냐고 다그침을 받을 나이에 이상형이 생긴다라…. 다들 주목하지 않는 유년기가 참 큰 힘을 지니고 있어 소설 속 흑막을 본 느낌이었다. 이로써 우리는 어린아이들을 무시하지 않을 이유가 더 생겼다. 많은 이들이 이상형을 만나기 위해 노력한다. 혹은 연인을 이상형으로 만들고자 한다. 이는 이기적이고 무섭게 다가온다. 하지만 만약 그런 과정을 서로에게 이야기하고, 털어놓으며 서로가 성장하고자 한다면 이상적인 한 쌍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쪽이 무조건 강요하거나 한쪽이 아예 아무것도 모른 채 조종당하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고치고 바꾸는 게 아니라 더 서로를 사랑하고 발전하는 과정이라면… 그걸 뭐라고 비판할 수 있을까? 사람은 사람을 그대로 봐줘야 한다고 하지만 이미 교육받은 사람을 만나는 것 아닌가. 그러니 예를 들어 책을 안 읽던 사람과 함께 책을 읽고, 관심이 없던 분야에 함께 빠져보고 한다면 그건 서로에게 좋은 과정일 수도 있다. 물론 그 과정이 불쾌하거나 싫으면 해서는 안 되는 법이고! 어쩌면 서로가 진정한 이상형이라 믿으면 그 둘은 결국 행복해질 수도 있다. 거짓으로 시작된 관계는 거짓뿐이라는 대다수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자신이 믿고 행함에 따라 스캔들이 운명적인 사랑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꾸며진 인연이고 우연이어도 그 끝맺음이 아름답게 꾸며지는 경우는 허다하다. 우리는 이에 대해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마냥 비판할 일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사실 우리의 나날에서 순전한 진심으로만 다니는 게 얼마나 되는가. 그러면서 인연에서만 순전한 진심을 바란다라…. 그 관계에, 서로에 진심을 다하면 거짓도 진실이 될 텐데. 시작에서의 진심에만 집중하면 파멸만이 남을지도 모르겠다.     

 

삶의 소소한 부분이 구원이나 다름없다. 한 끼의 맛있는 식사, 좋은 햇살, 기분 좋은 농담과 이야기, 즐거운 만남이나 흥겨운 음악 같은 것들이. 사랑이라고 별반 다를 건 없다. 그 순간순간의 힘겨움이나 고통에 대해선 뭐라 할 수 없지만 그것조차 나중에 이르면 추억이 된다고들 하지 않던가. 그러니 사랑이든 인생이든 너무 고민하지도 힘들어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행복으로 물들어 정신 차려보니 행복의 한가운데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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