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에 반항하는 우리들
영화도 좋아하고 노래도 좋아하는가? 여기 노래를 사랑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사랑하는 영화로 그려낸 작품이 있다. 1970년대의 스타 밥 딜런을 2020년대의 스타 티모시 샬라메가 연기했다. 방금 보고 온 따끈한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을 소개한다.
감독: 제임스 맨골드
주연: 티모시 샬라메, 에드워드 노튼, 엘 패닝, 모니카 바바로 등
장르: 영화(141분)
이미지 및 정보 출처: 아트하우스 모모(https://www.arthousemomo.co.kr/pages/board.php?bo_table=movie&wr_id=2290)
밥 딜런의 전기를 다룬다는 사실만 알고 보러 갔던 영화는 생각보다 음악에 진심이었다. 이야기에 음악이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음악의 변화하는 선율을 따라 이야기가 흘러나간다. 이 때문에 밥 딜런의 음악을 미리 들어보거나, 그 당시 시대상을 어느 정도 알아보고 영화를 보는 것을 추천한다. 내막을 모른다고 해서 영화를 못볼 정도는 아니지만 알고 본다면 영화를 더 깊이 즐길 수 있을 것이다.
1960년대 미국은 격변하는 사회였다. 핵전쟁과 베트남 전쟁 등으로 불거진 전쟁에 대한 불안과 분노, 흑인 인권 신장을 위한 운동 등 모든 것이 흔들리고 변화하고 있었다. 밥 딜런(배우: 티모시 샬라메)은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반항아였다. 밥은 뉴저지에서 기타 하나만 들고 온 가난한 뮤지션이지만 패기만큼은 누구 못지 않은 젊은이로 등장한다. 영화의 첫 씬부터 아무것도 없이 맨하탄 한복판에 와서 자신의 우상이라는 우디 거스리를 찾는다. 유명한 가수였던 과거를 뒤로 하고 병마로 입원한 우디를 찾아나섰다가 그의 멘토가 되는 피터 시거(배우: 에드워드 노튼)을 만나게 된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피터와 함께 무대를 서며 이름을 조금씩 알리고, 우연히 만난 실비 루소(배우: 엘 패닝)와 사랑에 빠져 자연스레 뉴욕에 정착한다. 밥은 통기타와 하모니카 하나로 노래를 부르는 포크 가수이다. 매일 매일 기타를 들고 작곡에만 매진하며 수많은 곡을 써내려 간다. 전쟁의 허망함에 대한 노래를 하기도 하고 방황하는 청춘(자신의 모습)에 대한 노래, 세상의 차별과 편견에 대한 노래를 숨쉬듯이 불러나간다. 어쩌면 숨 쉬는 것보다도 노래하는 게 더 길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하나에만 매몰된 삶은 균형을 잃으며 다른 것을 잃어버린다. 밥 또한 그랬다. 음반의 연이은 히트로 수많은 무대에 서고 인기는 끝없이 높아져 갔지만 정작 본인이 원하는 자아와 주변 사람들은 하나 둘 잃기 시작한다. 혼란스러운 정체감 속에서도 포크 가수로서의 면모를 변화시키며 끊임없이 노래하는 밥. 이 시대의 반항아, 대중에겐 포크송 스타, 누군가에겐 그저 사랑하는 사람. 밥은 이 중 어떤 모습의 자신을 택하게 될까?
가수의 전기를 다루는 영화답게 무수한 음악이 흘러 나온다. 한곡도 허투로 쓰는 것이 없이 모두 아름다웠다. 티모시 샬라메의 매력적인 목소리와 더불어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밥 딜런의 가사들이 만나 이뤄낸 하모니다. 음악은 때로 흔들리는 사랑들의 마음을 대변해주기도 하고 수많은 나의 모습 중 어떤 것이 맞는가 고뇌하는 청춘을 그대로 드러내기도 한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음악이 영화를 이끌어 가기에, 이야기에서 직설적으로 보여주지 않은 인물들의 숨겨진 마음들을 음악으로 곱씹으며 음미할 수 있는 매력이 있었다.
가수 전기를 다룬 대표적인 영화 중 하나인 '보헤미안 랩소디'와 비교해봤을 때 이야기 상으로 좀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사실 필자는 매우 만족했지만 요즘 인기 있는 자극적인 영상들에 비해 내용이 잔잔하기도 하고, 주인공 삶의 굴곡이 프레디 머큐리에 비해선 완만하게 느껴져 사람에 따라 큰 줄기의 이야기가 지루하다 느낄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그 지루함은 음악이 달래줄테니 꼭 사운드가 빵빵한 영화관에서 한번쯤 보라 추천하고 싶다.
영화의 배경인 60~70년대. 필자의 부모님이 고뇌했을 10대 시절이다. 그래서 그런지 보통 2030이 자주 찾는 영화관에 나이 지긋한 장년층 관객들이 몇몇 보였다. 추억이 떠올라 노래에 맞춰 손가락으로 박자를 맞추거나 입모양으로 따라 부르기도 했다. 나와는 상관 없을 것 같은 몇십년 전의 이야기들이 시대의 주인공들과 함께 영화를 보며 나의 이야기처럼 다가왔다. 심심할 때면 통기타로 올드 팝송을 부르는 필자의 엄마 취향이 조금은 관심이 생긴달까. 인간의 의사소통이란 어렵다. 특히나 시간을 건너, 세대를 건너 소통하는 것은 답답하다 못해 막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 영화가 가진 의외의 매력은 시대를 교류하고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된다는 것이다. 가족들과 함께 보며 엄마 아빠도 겪었을 그 시대 청춘에 대해서 같이 이야기를 나눠보았으면 좋겠다.
티모시 샬라메와 에드워드 노튼의 연기를 무수한 작품에서 보아왔기에 이번 작품도 당연히(정말 당연한 건 아니지만) 잘할 것이라 예상했었다. 그런데 그 두 사람보다도 눈에 들어오는 이들이 있었으니, 실비 루소 역의 엘 패닝과 포크가수 조안 바에즈 역을 맡은 모니카 바바로였다. 엘 패닝하면 다코다 패닝의 동생, 말레피센트의 공주 이 두가지로만 기억이 남아 그다지 '연기자'의 면모를 기대하지 않았었는데 엘은 필자의 편견을 우습다는 듯이 깨부쉈다. 어리게만 느껴지던 그가 당당한 연기자로 나타나 밥과 조안 사이에서 불안한 마음을 표정과 눈물 한방울로 모두 표현한다. 밥 딜런의 이야기이기에 길게 등장하진 않지만, 이야기가 클라이막스로 갈수록 짙어지는 그의 연기를 보면서 안타깝기도 하고 실비의 입장에 동화되면서 더 몰입해서 볼 수 있었다. 모니카 바바로는 일단 매력적인 목소리로 필자의 마음을 사로 잡아버렸다. 실제로 가수 조안 바에즈는 목소리가 곱고 아름다운 것으로 유명했는데 감독이 또 어쩜 그렇게 귀신같이 외모도, 목소리도 닮은 이를 섭외했는지 영화 내내 모니카의 목소리를 들으며 호강했다. 노래만큼 연기도 능숙했다. 천재적인 밥의 모습을 보며 사랑에 빠지면서도 가수로서 질투심을 느끼는 조안의 모습을 매력적으로 표현한다. 언제든 어디서든 당당하게 노래하는 조안을 구현해낸 모니카 바바로의 연기가 마음에 쏙 들었다. 엘과 모니카 말고도 다른 조연들의 연기도 훌륭하니 배우들을 하나씩 조명하며 관람하는 것을 추천한다.
혼란스러운 청춘을 잠재우던 노래가 이젠 낭만이 되어 영화가 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