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 추천 12]킬링 이브

죽이는 여자와 죽여주는 여자

by 앨리쨔

일부 채널에서만 볼 수 있어 나만 못본다고 울부짖던 OTT 방랑자가 드디어 웃으며 보고 왔다.

갓뎀 개쩌는 넷플릭스가 전시즌을 말아온,

죽고 못사는 두 여자들의 이야기.

킬링이브를 소개한다.



킬링이브.jpg

채널: BBC America

출연: 산드라 오, 조디 코머, 피오나 쇼

원작: 루크 제닝스의 '빌라넬 시리즈'

정보 및 이미지 출처: 나무위키


이브와 아담? 아니, 이브와 빌라넬

이브 폴라스트리(배우: 산드라 오)는 MI5에서 근무하는 보안 요원이다. 어릴 때부터 암살자들을 체포하는 MI6의 스파이를 꿈꿔왔지만 매번 좌절되어 시시하게(?) 외국인 용의자들이나 피해자들을 보호하는 일을 맡는다. 그래서 남몰래 취미처럼 사이코패스의 행적을 쫓고 자료를 정리한다. 그러던 어느 날. 살해당한 러시아 정치인의 애인을 보호하라는 임무를 맡게 된다. 어라? 근데 이 살인사건 아무리 봐도 이브가 칭송해 마지못하던 그 연쇄살인범의 패턴과 유사하다. 여자라고 확신하며 살인의 디테일과 자신의 실력을 뽐내는 듯한 과감함이 분명 이브가 쫓던 사이코패스의 흔적이다. 흥분에 찬 이브, 생존자이자 목격자인 정치인의 애인을 찾아가며 몰래 조사를 이어간다. 폴란드 출신인 그를 위해 통역해줄 남편의 제자까지 동원해 병원에 찾아가는데, 이브가 잠깐 화장실에서 머리를 정리하는 사이 살인이 일어난다. 혼돈에 빠진 이브 어쩔 줄을 모른다. 자신의 보호 하에 있던 목격자가 죽고, 몰래 살인사건을 조사해온 사실이 들켜 결국 이브는 MI5에서 짤린다. 망했나 절망하는 것도 잠시 MI6의 수장 캐롤린(배우: 피오나 쇼)이 함께 연쇄살인마를 쫓자며 일자리를 제안한다. 꿈을 이뤄 흥분한 이브, 본격적으로 수사에 들어간다. 먼저 이브는 목격자가 사망했던 당일의 일을 추적한다. 기억을 더듬어 수상한 이가 누구였는지 떠올려 보는데 끈적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머리를 풀라고 하던 금발머리 젊은 여자가 기억에서 스쳐 지나간다. 바로 빌라넬(배우: 조디 코머)이다. 빌라넬은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암살자이다. 그는 살인 자체를 즐기며 남의 고통과 삶에 관심이 없고 뭘해도 심심하기만 한 전형적인 사이코패스다. 그런 그에게 단 하나 재밌는 것이 생겼으니, 이브 폴라스트리가 되겠다. 한 여자는 죽여주는 여자를 잡겠다고 집착하고 한 여자는 그런 여자를 죽일듯 집착하는 대환장 이야기가 시작된다.


서로를 가장 질색하며 가장 갈망하는 이브와 빌라넬. 과연 두 사람은 금단의 사과를 함께 먹게 될까?


볼만한 이유 1: 여자, 여자 그리고 여자

왠만한 스릴러란 스릴러는 다 본 필자가 내린 뇌피셜 통계에 의하면, 사이코패스가 나오는 영화는 대체로 사이코패스와 그를 쫓는 이는 남성으로, 피해자는 여성으로 그려진다. 대부분 피해자들은 살인의 잔혹함과 서늘함의 요소나 섹슈얼한 분위기를 위한 장치로만 등장하여 제 쓰임새를 다하면 어떻게 장례가 치뤄졌는지, 어떤 이야기를 남겼는지 등 그들의 이야기는 바람처럼 사라진다. 마치 존재조차 하지 않았던 것처럼. 킬링이브는 여느 스릴러들과는 좀 다르다. 일단 사이코패스부터가 여성이다. 벌써 주인공 하나가 여자다. 그런데 그를 쫓는 이도 여성이다. 그를 돕거나 감시하거나 동조하는 이들도 여성이다. 여자, 여자 그리고 여자들이 모여 나쁘고 착하고 멋지고 순수한, 모든 역을 해낸다. 이런 와중에 여성만의 관능적인 장면과 묘사를 놓치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자 봐라 이게 바로 성행위이다' 라는 소위 베드신 따위 없어도 두 주인공 간의 성적 긴장감은 차고 넘쳐서 보는 이로 하여금 침을 꿀꺽 삼키게 만든다. 대놓고 보여주는 거보다 그런 거 좋아하신다구요? 뭐하세요 넷플릭스 일단 켜보세요. 보세요, 여성끼리도 이렇게 멋있고 섹시하답니다.


볼만한 이유 2: 화려한 듯 창백한 연출

빌라넬의 화려한 옷들과 세계 곳곳의 거리 및 다양한 장소들의 향연. 꽤나 화려한 연출들이 화면 가득 자리잡는다. 그런데 어딘가 서늘한 느낌이 들게 한다. 사이코패스라는 주인공의 특성에 걸맞게 화면의 색감을 창백하게 연출한다던가,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소품과 어울리지 않는 소품들을 함께 배치하여 한 화면에 보여준다던가, 때로는 주인공의 감정에 따라 화면을 이리저리 비틀고 당겼다가 멀리 놓아준다. 스토리가 워낙 재밌어서 간간히 이런 연출이 있음을 눈치채지 못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스토리를 배로 재밌게 만드는 연출에 감탄하기도 했다. 도파민이 뿜뿜 터지는 스토리에서 간간히 마주치는 제작진들의 피땀눈물도 함께 볼만한 이유가 되겠다.


볼만한 이유 3: 사랑해요, 산드라 오

스테레오 타입이란, 나도 모르게 떠오르는 어떠한 존재에 대한 이미지와 고정 관념을 의미한다. 헐리웃에서 아시아 배우, 그것도 여배우들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은 정말 무식하고 근본 없어서 화도 안나고 웃길 지경이다. 생머리에 찢어진 눈, 2000년대에도 안했던 이상한 색의 브릿지 염색, 순종적인 성격. 하! 그런데 산드라 오는 그 존재 자체로 그게 얼마나 말도 안되는 소리인지를 몸소 보여주었다.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가끔 화딱지 나서 물건 정도는 가볍게 부수고 무서워도 일단 나서서 내지르고 보는 한국인의 성질머리를 그대로 내비추면서도 그가 가진 중년의 섹시함을 아낌없이 보여준다. 미드, 영드 등등 다른 나라 드라마를 즐겨 보는 필자에겐 귀한 단비 같은 배우라고 하겠다. 이런 역할과 이야기가 더 많아지도록, 특히 컨텐츠를 만드는 이들의 머릿속에서 아시아 배우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을 없앨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이 봐주면 좋겠다. 이미 끝난지 3년이 지났지만 뭐 어때. 재밌으면 90년대 영화도 재개봉하기 마련인데.


한줄평(★★★★☆)

이야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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