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아이스바닐라라떼를 마신다.
엄마가 되기 전까지는 바닐라라떼를 마셔본 적이 거의 없다.
그저 아메리카노만 마셔댔다.
그리고 아이스를 좋아하지 않았다.
한여름이 아닌 이상 따뜻한 커피만을 마셨던 나다.
그런 내가 엄마가 되고 나서부터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아이스바닐라라떼다.
나에게 아이스바닐라라떼는 흔한 표현이겠지만 사막의 오아이스, 한여름의 소나기 같은 한마디로 생명수다.
매일 똑같은 생활, 반복되는 육아에 찌들어 죽어갈 때쯤 아이스바닐라라떼 한 모금 꿀꺽해 주면 그나마 조금이나마 위안이 된다.
육아가 원래 힘든거겠거니 하고 아무리 머릿속으로 수천번, 수백만 번 되뇌어보고 하루에 열두 번도 더 아기니까 그런 거야 하고 나 자신을 다독여보지만 때로는 다독여서 될 일이 아닐 때가 있다.
간혹 원더윅스라던지 성장통이라던지 하는 알다가도 모를 아가만의 세계가 펼쳐질 때는 말도 통하지 않는 이 상황이 적잖이 당황스럽고 어떨 때는 아주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다.
가령 아가가 새벽에 종달 기상을 했을 때, 이후에 잠들지 않고 새벽에 소리 지르면서 놀려고 하거나 실컷 놀다가 다시 잘 시간이 되어 눕혔는데 그때부터 울음을 터뜨려 이러지도저러지도 못하게 막무가내로 울어재낄 때.
방금 응가해서 씻겨놨는데 기저귀를 채우기도 전에 쉬를 했을 때 등등 흔한 일상이지만 쌓이고 쌓이면 멘붕이 되고 멘붕이 쌓이면 감당이 안 되는 지경에 이르러 결국은 나에게 독이 되는 법.
엄마답게 슬기롭게 잘 극복해 내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나는 아직 엄마가 되어가는 중이라 안타깝게도 슬기는 개뿔 내 마음하나 다잡지 못하고 저 어리고 어린애만 잡으려고 슬슬 발동을 건다.
그럴 때는 산책이 답이다.
무작정 아가를 유모차에 태우고 어디든 나가야만 한다.
어디든 좋다. 무조건 집을 탈출해야만 한다.
올여름은 유난히도 덥고 더위가 오래가서 산책이 어려웠지만 나를 막을 수는 없었다.
저녁 무렵부터 밤까지 비만 안 오면 나는 유모차를 끌고 거닐었다.
물론 밤에도 덥고 땀나고 했지만 나에게는 그깟 더위, 그깟 땀쯤이야 육아에 비할 바가 못된다.
일단 집 밖을 나가자마자 생명수를 들이켜기 위해 걸음을 재촉하여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바로 카페.
시원하고 달달하면서 쌉싸래한 아이스바닐라라떼를 주문하고 나면 마시기 전부터 이미 기분이 스르르 풀리는 것만 같다.
기다리는 동안 괜스레 아가에게 말을 걸어본다.
"너두 집 밖에 나오니까 좋지?"
드디어 나왔다. 나의 아이스바닐라라떼.
아이스바닐라라떼를 받자마자 섞지 않고 그대로 쭈욱 마시면 달달한 바닐라시럽향이 온몸을 감싸 안으며 마치 육아에 찌든 나를 포근히 안아주는 것만 같다.
한번 휘저어 또 쭈욱 들이키면 고소한 우유와 달달한 바닐라시럽이 만나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커피와 함께 마구 섞어 마시면 비로소 정신이 번쩍 나면서 쑥쑥 줄어드는 아이스바닐라라떼처럼 스트레스가 덩달아 줄어드는 느낌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산책길에 한 손엔 유모차, 또 다른 한 손엔 아이스바닐라라떼를 들고 있다.
몇 모금 마신 후에야 룰루랄라 기분이 급 전환되며 아가와 눈을 맞추고 그제야 방긋 웃어 보인다.
불과 아이스바닐라라떼를 마시기 전까지는 아가를 보는 둥 마는 둥 하는 못난 엄마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의 아가는 그저 그런 엄마도 좋다며 해맑게 눈웃음까지 지어가며 웃어준다.
아가의 웃음은 아이스바닐라라떼와는 비교가 안될 만큼 달달 그 자체.
아가의 웃음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나에게 아이스바닐라라떼는 육아라는 삭막하고 때로는 외롭고 한편으로는 과분한 행복에 두려움이 밀려올 때 단비가 되어 걱정을 시원하게 씻어내려 주고 육아의 힘듦을 촉촉이 적셔 말랑하게 만들어준다.
곧 날씨가 추워지면 그땐 과연 무얼 또 먹어야 하나 벌써부터 고민이다.
영하의 날씨에도 설마 아이스바닐라라떼를 마시진 않겠지.
엄마는 오늘도 아이스바닐라라떼 한잔에 아가의 미소 한 모금을 더해 파이팅 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