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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나케이 May 17. 2022

곧 일어날 일도 이벤트처럼

일상에 기대어 쉬어야 하는 이유

뻔한 하루가 시작해도 눈뜨는 아침이 눈감는 밤보다 셀레는 이유가 있다. 기대... 나에게 일어날 하루의 일들에 대한 작은 기대를 상상해 본다. 나의 시간은 오전 9시 30-오후 5시 30분까지 주어지지만, 나의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나는 느리게 성장하는 비효율적인 관계이지만, 오늘 하루도 고스란히 잘 흘러갈 수 있도록 매일같이 나서는 현관문에서 나지막이 기도한다. 오늘도 무사히..


생물을 다루는 일이 직업이다 보니, 본의 아니게 동물을 가지고 연구를 많이 하게 되었다. 역시.. 동물용 쥐를 다루는 연구가 주를 이루었다. 동물윤리 승인도 받아야 하고, 왜 어떤 목적에서 꼭 동물을 사용해야 하는지부터 연구 후 사후처리까지.. 결론은 동물과 인간은 참 많이 다르다는 내가 아는 뻔한 답이라서 씁쓸하지만..



휘몰아치게 바쁘게 살던 지난날 한 번도 내 감정에 와닿지 않던 "생명"이 출산을 하고 나니 연구보다 더 크게 자리 잡았다. 그냥 새끼처럼 생긴 것만 봐도 눈물부터 난다. 가슴 어딘가부터 시려온다.  


숨이 멎는 것 같은.. 견디는 것보다 차라리 눈물 한 방울이라도 흘리면 좀 후련해진다. 감당할 여지가 좀 생길 것 같은 숨구멍 말이다.. 아직 잘 모르는 감정이지만, 이제 이 짓으로 연구는 더 할 수 없다는 건 명백해졌다.


이렇게 눈물바다로 연구를 하는 건 생명을 제공하는 공여 동물에게도 인류의 나은 삶에 조금 이남아 보탬이 되고자 연구하는 나에게도 상처만 줄 뿐이다. 연구랍시고 버텨온 이 분야에 꽤 오래 몸 담았았다. 박사 후 10년 가까이 거의 전공을 바꾸다시피 해서 직진했지만, 지금... 다시 또 변화를 필요하다. 닥쳐올 알 수 없는 일들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알면서...


나는 크기가 작은 분자의 화학기반 형광 물질을 합성하는 연구팀에게 물질을 제공받아서 생물에 적용하는 연구를 하는 화학 생물학자다. (굳이 꼭 정의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 몸에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을 보이게 염색해서 정상과 그렇지 않은 상태의 변화를 형광의 밝기나, 반응을 통해서 질병 진단이나 약물 개발에 응용될 수 있는 길라잡이 역할을 하는 물질을 개발한다. 그래서 최종 응용연구에 동물실험은 빠질 수가 없다.. 


연구를 그만 둘 순 없기에, 뭔가 대신할 개체 모델 선별을 위해 지난 몇 달 복직과 동시에 찾아 나섰다. 작고, 다루기도 쉬우면서, 동물 생체 영상 연구가 가능한 모델이었으면.. 살아 있는 상태로 연구가 가능하고, 다시 살려서 다음날도 다 다음날도 인사하며 볼 수 있는 동물이었으면.. 그렇게 같이 늙어갈 수 있는 동물이었으면.. 문득 유학시절 호주에서 학위를 마치고 왔던 동료가 유리그릇에 새끼손톱보다도 작은 물고기를 들고 지나가던 모습이 떠올랐다. 아하... 물고기,,, 맞네... 물고기... 가 있었구나... 간혹 너무 작아서 놓치는 실수로 생명을 잃는 경우는 봤지만 이건 분명 연구자 탓이다. 난 왠지 이제는 엄청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차고 넘칠 때는 눈앞에 가져다줘도 본 듯 만 듯했던 것들이 차분히 앉아 여유를 가지고 생각하니 선명하게 떠올랐다. 나는 잊었지만 기억은 저장되어 어딘가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직접 겪지 않았지만 눈으로 본 경험이 사진처럼 기록되는 것과 같은지도...


 비록 사실은 아니라도 해석할 수 있을 정도의 정보 나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 주었다.  


지금 내가 보는 별거 아닌 것들을 놓칠 수 없는 순간이다. 새로운 뭔가가 살아날 것 같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창문밖에 나른한 오후도 한가득 담아본다. 불현듯 세상의 모든 물고기가 다르게 보이지 시작했다.


바닷고기의 연구용 목적은 주로 식용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서 제공받는데 실패하고, 몇 차례 발표를 통해 결국 민물고기 센터에서 연구에 도움을 주시기로 했다. 물고기 전영상을 해야 하다 보니, 가급적 갓 태어난 아기물고기가 필요하다고 하니, 수정란을 줄 테니 직접 부화해서 연구하라고 하셨다.. 부랴부랴 수조며, 공기 주입기며, 태어나 어항 한번 사 본적도, 수족관 한번 가본 적도 없지만, 난 그렇게 물고기 엄마가 되기로 했다..


이제 겨우 13개월 아들 하나 키우면서 끙끙거리는데, 엄청난 양의 수정란을 받아와서 지금 부화 준비 중이다. 힘들지 않게 태어나길 기도하며..


부화 준비 중인 물고기 알들


자연분만이 그렇듯 부화시기는 예측만 할 뿐이다. 그저 간절한 마음만 담아서 묵묵히 기다릴 뿐이다.. 제발 퇴근 후가 아니길... 수온 22도를 유지하고 오늘 하루는 자주 물을 갈아주라는 지침을 받고 내 밥은 굶어도 깨끗하게 수조를 갈아주면서 주변을 서성거린다.. 암컷일까 수컷일까.. 언제 태어날지 모르는 생명을 기다리며..


매일 똑같은 일상으로 치부해버린 하루가 물고기 하나로 들떠서 몇 리터의 수조 물을 혼자 갈아주면서 나는 기대라는 단어와 마주했다. 나에게 처음은 설렘을 주었고, 익숙함은 지루함이 섞인 여유를 주었다. 일상 속 먼발치서 누릴 수 있는 여유는 다음을 준비할 찰나의 선물이기에... 여유가 있어야 다음도 셀레일 수 있다. 이토록 일상이 고요한 이유는 쉽사리 놓칠 수 있는 미미한 것 마저 이벤트처럼 크게 보일 배경이 되어 그냥 흘러가기 위함은 아닐까.. 일상에 기대에 잠시 머물 시간만 있으면 충분하다.. 일상은 아마도 늘 새로울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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