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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나케이 Feb 22. 2023

나를 이기는 시간 단 1분

생각보다 대단한 정신력  

다시 얼굴이 조금씩 작아지기 시작했다. 낯빛이 점차 밝아지고, 입가에 살짝 미소가 자연스럽다.

나는 분명 행복해지고 있다. 조금씩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지도 못하고 살아가던 어느 날, 누군가에게 내가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 아주 작은 변화.. 그렇게 나는 하루하루 미미하게 변화고 있었던 것이다. 하루도 멈춰있지 않고 오롯이 살아나간 나의 노력이 보여준 아주 아주 작은 변화가 나를 이끌어 내는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다니.. 새삼스레 다시 나는 힘이 난다. 



3달 전으로 거슬러, 작년 11월인가 다시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마음을 다시 먹은 건 건강검진을 앞두고였다. 가슴 두근거리는 그 두려움에서 정말 벗어나고 싶어서.. 매년 이맘때 꼭 건강하게 살겠다 다짐만 다짐만 수도 없이 나이 믿고 까불던 때도 이제 그립다. 나와 하는 거짓말이 해마다 반복되고.. 무책임하다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검진 당일날 바로 PT샵을 찾았다. 세상에서 가장 보람찬 발걸음이었다. 



내 마음 같지 않은 현실에 한번 현타가 왔다. 무슨 겨울에 이리도 PT를 많이 하는지.. 당장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나를 봐줄 트레이너가 없다고 했다.. 이건 정말 너무 속상했다. "나 이제 막 마음먹고 왔는데, 지금 아니면 나 안되는데.. 나 진짜 열심히 할 건데.. 나 좀 누가 도와주면 안 돼요?" 이런 내 맘이 전달되었던 모양이다. 



-회원님, 혹시 오후에는 시간 어떻게 되세요?

-네? 저요? 저 돼요 다 돼요.. 아기 데리러 가기 전까지.. 4시에 하면, 씻고 아기 데리러 가면 돼요

-네, 그럼 화/목 오후 4시에 저하고 하시지요

-아... 너무.. 나. 너.. 무.. 아 정말 감사해요!! 저 그럼 내일부터 당장 나올게요 아하하하


누가 들으면 내 돈 내고 하면서 뭐 하는 짓이냐 하겠지만, 난 절실했다. 내 다짐에 응답해 줄 누군가.. 매일 꾸준히 한 걸음씩 나를 일으켜 끌어줄 누군가가 말이다. 내가 이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갈 그 길에 끝까지 지켜봐 줄 누군가가.. 그렇게 절실했던 적이 없었다. 왠지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여기를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절대 운동복을 탓하지 않기로 했다. 뿐만 아니라, 다시 새것도 사지 않기로 했다. 살이 빠질 때까지.. 나는 나를 직관하기로 했다. 아프지만, 다듬어 가기로 이젠 보듬어 가면서 이겨내 보기로 했다. 누구의 탓도, 피하고 싶은 핑계도 대지 않고 부끄럽지만, 내 배를 보면서 그렇게 빼 나가기로 했다.



간단한 몸 풀기만 했는데, 턱에 벌써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자세를 바로 잡는데 시간을 꽤 오래 썼던 것 같다. 유사해 보이는 동작인데, 미세하지만, 다른 곳의 근육에 자극이 다양하게 오기 시작했다. 한 달 정도 난 그 어떤 기구도 사용하지 않았다. 마치 기구가 있는 것처럼 정확한 자세를 잡는데 최선을 다했다. 



내가 집중해서 운동을 배우게 된 작은 동기는 그렇게 대단하지 않았다. 선생님의 간단한 시범 동작은 나에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면서, 막상 자세를 잡고 개수를 채우기 시작하면서 바로 깨닫는다. 나와 선생님은 다른 삶을 살았구나.. 내가 나를 정말 잘 모르는구나.. 고작 이 동작에 내가 이렇게 쉽게 무너지는구나..



몰아치는 내 숨소리가 주변에 들릴까 부끄럽기까지 하다. 도대체 뭘 했다고.. 헛웃음이 났다. 그러나 현실이다. 그리고 못 이겨 내는 나를 놓아 버리고 싶은 순간이 어찌도 이렇게 자주 찾아오는지.. 내 숨소리가 잦아들고 평정을 찾을 때쯤 들리는 소리


-자 그럼 해 볼까요? (나를 일으키는 시그널: 아직 더 할 수 있다는 긍정의 메시지와 같다)
-천천히, 정확한 자세, 자, 급할 거 없어요 (잘하고 있다는 시그널: 힘을 내라는 메시지와 같다)
-많이 쉴게요. 물도 마시고요 (재정비하라는 시그널: 아직 힘이 남았다는 메시지와 같다) 


우리의 대화는 아주 담백하다. 3가지 정도의 메시지만 적절하게 선생님께서는 던질 뿐이고,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아도 된다. 구령에 맞춰 숫자를 채워 나갈 뿐이다. 엄청난 힘을 써서 끝까지 해내야 한다. 


 지칠 대로 지쳐 힘이 빠지는 순간 꽤가 난다. 다른 남은 곳의 힘을 쓰려고 자세를 바꾸는 순간, 바로 깨닫는다. 모든 것이 갑자기 무너지는 것 같은 어느 곳도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주저 않을 수밖에 없는 그 순간, 

포기하지 마세요

이명이 들린다. 누군가 나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하는 말.. 너무 오랜만에 들었던 말이다. 내가 돈을 내고 하는 운동이지만, 어떤 선생님도 나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한 적은 없었다. 대신 다들 그랬다. 

힘내세요라고..

그랬다. 힘은 어떻게 내는지 몰랐다. 그러나 포기는 할 줄 알았다. 그래서 난 포기 하지 않고 끝까지 버텼다. 세상에게 가장 긴 시간 단 1분을.. 이 악물고..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는 나를 이겨보라는 응원 같았다. 내가 해낼 수 있다고 믿으니까 그러니까 포기하지 말라는 나보다 더 나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았다.   



마무리 운동으로 어김없이 찾아오는 플랭크 1분 (코어 운동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운동. 엎드린 상태에서 몸을 어깨부터 발목까지 일직선이 되게 한다.)은 나를 이기는 가장 긴 시간이다. 



내 맘대로 나와 타협하던 그때 나는 내가 할 줄 알지만, 할 수 있지만 단지 하지 않는다고 대충 정리하고 운동을 마무리했었다. 그래서 쉽게 접고 쉽게 시작했던 젊었던 날이 있었다면, 비록 1분이 찰나지만, 오롯이 나를 지탱하는 자세가 한순간 무너져버릴 수 있는 건 정신력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조금 늙은 지금의 내가 있다.  



나는 이제 안다. 살면서 포기할 일이 더 많아지는 나이가 되어가고 있기에 "포기하지 마세요"의 속삼임을 "이것부터 포기하지 마세요"라는 작은 것부터 이겨낼 삶의 자세를 갖게 해 준 것이 아닐까?



1월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운동을 하고 있다. 변화가 보이지 않아서 관두기보다 포기하지 않으려고 지금도 진행중이다. 그리고 난 이제 행복하고 있다. 작은 변화도 나의 삶에 함께 보이고 있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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