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은 스케줄대로 문제없이 흘러갔다. 떨리고 무섭고 두렵지만, 이 시간은 곧 흘러 이쁜 아가가 태어난다는 기대가 있었으니까,
그날의 기억은 생생하다. 나는 선택제왕을 했다. 노산에 초산에 뭔가를 걸고 자연분만을 우기고 갈 자신도, 오기도 없었다. 그저 아기가 건강하고 안전하게만 태어난다면 내 배에 칼을 데도 괜찮다 생각해서 38주 3일에 용하신 분께 시간까지 받아서 오후 2시 23분에 3.3kg, 54cm 황금이가 태어났다.
믿어지지 않았다. 아기 울음소리가 듣고 싶어서 하반신 마취를 선택했지만, 이런 오만이 있었나 싶었다. 만삭의 몸에 새우등을 만들라니... 이것도 힘든데, 척추에 마취약이 들어가니, 정말 하반신이 마비되었다. 너무 두려웠다. 그 순간에도 아 하반신 마비가 이런 기분이구나.. 하체는 천근만근에 머리와 상반신만 살아서 그 순간이 꽤 오래갔다. 몸이 흔들리고, 의사들의 말소리 등등 온갖 잡생각에서 사로 잡힐 때, 갑자기 아기 소리와 함께 다 깨어났다. 세상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냥 눈물이 났다. "울면 아기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없어요. 아기에게 한마디 하세요"의사 선생님의 말소리가 들었다. " 황금아 엄마한테 와줘서 너무 고마워" 그렇게 우리의 첫 만남은 시작되었다.
마취에 깨서 드는 첫 기분은 홀가분했다. 아기가 내 눈앞에 있으니 걱정도 두려울 것도 없다고 생각하니 수술 후 24시간이 채 되기 전에 소변줄도 뽑고, 찢어지는 고통도 이겨내고 걷기 시작했다. 행복했다. 아기가 이제 내 몸에서 떨어져 있어서... 내가 문제가 생겨도 아기는 괜찮을 테니까. 무거운 배를 안고 매일 불안하고 걱정했던 시간이 다 보상되는 듯했다. 이건 정말 오만과 착각이었다.
불과 조리원 생활을 일주일 겨우 하고, 갑자기 아기가 고열이 나서 2차 병원으로 전원 하고, 코로나 검사에, 아기 면회는 일주일에 한 번... 태어난 지 며칠 되었다고 아기가 아프다니... 세상이 내려앉는 듯한 내 마음을 누가 알까... 매일 모유를 유축해 가져 갔다. 아쉽고, 갔다 오면 마음이 찡하게 아팠다. 다행히 걱겅과 달리 별문제 없이 아기는 4일 만에 퇴원을 했다. 정말 지옥과 천당을 다녀온 것처럼 아팠다 몸도 마음도... 뭐든 다 감사했다. 내 품에 잠든 아기를 보니, 어떤 지옥도 다 감당할 수 있을 에너지가 마음만 넘쳤다.
불과 몇 시간 기족의 방문도 잠시, 오롯이 나 혼자 남겨졌다. 아기와 덩그러니... 한 번도 경험도 생각도 상상도 못 해본 상황이 너무 낯설었다. 아기의 반응하면 난 대처하고 이렇게 간단하지 않지만, 지금의 내 생활이 그런 것 같다. 24시간 대기조 같은 삶이 아무 생각 없이 만든다. 극한의 육체적 고통으로 아무 생각도 나지 않게 말이다. 아기를 보면 그냥 배시시 웃고, 울면 안아서 배를 채워주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아무도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그냥 한다 마치 처음부터 알았던 것처럼. 배안에 10달 얼굴도 모른 채 우리는 서로를 의지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문득 드는 생각은 너무 아무 대책 없이 이 엄청난 일을 저지른 것 같다. 지금 이 상황을 헤쳐나가는 내가, 그리고 내 품에 안겨있는 네가 낯선데, 너는 마치 나를 본적 있는 것처럼 안겨서 너를 맡기고 있는 모습이 너무 평화스럽다. 우린 어쩌면 이 끝이 없는 길에 같이 들어선 건지도 모르겠다. 지금 난 육체적으로 힘들지만, 너는 낯선 이곳에 나 하나 믿고 왔으니, 나보다 더 힘든 길에 들어선 건지도 모르겠다. 같이 한번 이 길을 가보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