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포기가 아니라 선택이 필요하다..

모든 일은 다 때가 있다. 포기도 때가 있다.

by 루나케이

마음먹고 또다시 더 단단히 각오를 해도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깨달은 개기가 있었다. 아기를 갖는 일..... 여자면 누구나 하는 생리현상쯤으로 여기는, 같은 여자가 여자를 여자로 인정하지 않고 선을 긋고 사람을 한없이 초라하게 만드는 잔인한 일... 그게 그렇게 내 맘대로 안된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나에게는 기적처럼 아기가 찾아왔었지만, 긴 시간 동안 뭘 해도 내가 가진 모든 걸 다 해도 안된다는 벽에 부딪혔던 그 기분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 간절했던 시간을 겪고, 그 결실을 맺고 나니.. 삶을 대하는 내가 달라졌다. 세상에 온 지 6개월 인생을 산 너와 함께 가기 위해서다. 한 사람이 일방적인 방향으로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어깨 넘어 세상을 공유하며 같이 가기 위해서다.


1. 노력도 밸런스가 필요하다.

다 쏟아부어도 하나도 건지지 못하는 경우가 있더라. 본전이 생각나고, 생각보다 승산이 없는 결과물 때문에 노력을 부정하는 경우 말이다. 그때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이 " 포기할걸.. 굳이 왜 안 될 노력을 무식하게 해서는..." 그런데, 아이와 같이 사는 삶은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게 균형을 잡고 가야 하는 긴 항해와 같아서, 심지어 내가 쏟아내는 노력도 균형이 필요하더라. 처음에는 몰랐다. 최선을 계속할 수 없다는 사실도, 끝이 없는 노력이 빠른 포기를 만나게 된다는 것도.. 비로소 알았다. 약간이지만, 그래도 쏟아낼 노력이 남아있다는 사실은 다른 선택지가 있고, 다시 백프로로 시작할 수 있다는 긍정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2. 사랑도 눈치가 필요하다.

원래 아기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내가 내 아기를 가져야겠다 마음먹고 잘 되지 않을 때, 모든 아기가 다 그저 그렇더라. 이쁘지도, 꼭 좋아 보이지도 않았다. 어쩌면 그렇게 생각을 해버린 건지.. 임신하고도 우리 부부 인물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난 딱 두 가지, 키가 컸으면(내가 키가 작아서 나중에 엄마 원망할 것 같아서. 아빠는 키가 크고 비율도 좋다), 머리숱이 많았으면(아빠가 머리숱이 많지 않아서 나중에 아빠 원망할 것 같아서. 난 출산 후 일시적 탈모가 와도 끄떡없었다.) 간절히 바랬다. 초음파 상으로 보니, 팔다리가 길고 머리숱이 많단다. 그래서 아기 얼굴은 아예 기대로 상상도 안 해봤더니, 세상에 이런 최상의 조합이 나올 줄이야. 계 탔다. 남편만을 바라보던 내 사랑이 오롯이 이 아기에게로 넘치도록 나 혼자 미쳐 사랑에 빠질 줄이야.. 말도 못 하는 이 생명체에게 난 하루 종일 사랑을 확인하고, 나를 인식시키려 애궐복궐 하고.. 이런 사랑을 질투하는 남편이 옆에 있더라. 내가 줄 수 있는 사랑은 제한적이고, 이걸 나누어 줘야 한다고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일이 생겼다. 임신 준비기간이 길었던 탓에 우린 아주 많은 계획을 세웠었다. 아기가 태어나도 우린 중심을 잡자고. 난 이미 졌다. 사랑은 변하는 거라고 속으로 외치던 중 남편의 엄청난 질투에 화들짝 했다. 아하, 이게 사랑도 눈치껏 해야 하는구나.. 적당히 티 안 나게 난 둘 다 너무 사랑한다는 표시를 꼭 하면서 말이다. 균형을 잡아야 하는 이유가 그래야 내가 보이더라. 그 어디쯤 내가 있고, 내가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지 보게 되고, 그 사이 나도 나를 사랑하며 내 사랑의 책임도 지게 되면서 우린 아주 건강하게 각자의 삶의 방향을 공유하며 가고 있다고 믿고 싶다.


3. 포기가 아니라 선택이 필요하다.

계획은 뭔가를 하기 위한 중요한 로드맵이 된다.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디딤돌 같은. 임신을 계획한다고 할 때, 무슨 계획이 있었을까? 다들 결혼하면 가지니까, 별다른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단 하나 시기만 마음에 세웠다. 거듭된 실패에 기간만 무한 연장하다 보니, 유산이라는 변수가 너무 충격이었다. 어찌 이리도 무지할 수 있는지 여자라면 다 임신에 대해 알게 되는 줄 알았다. 너무 나태했던 나 자신에게 화가 났었다. 난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원인을 찾아 나서면서 하나씩 지워나갔다. 운동을 끊고, 커피를 끊고, 술을 끊고, 뭔가를 자꾸 내 삶에 제한을 두고 옥죄여질수록 못 지키는 날이 더 많아졌고, 다시 처음부터 되뇌며, 마음만 자꾸 다그쳤다. 무리한 야근과 팀장 승진 이후 넘쳐나는 과제가 감당이 안되더니 결국 탈이 나게 되면서 아무것도 못할 정도까지 아파보니 난 알겠더라. 내 선택이 옳지 않았을 수도 있겠구나.. 지금 이렇게 악 쓰고 바락바락 해치우기 식의 일처리만 하고 있는 지금 이 자리 여기가 나를 이렇게 만들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구나. 단 한 번도 난 왜 아기가 갖고 싶은지, 정말 가지고 싶은 건지.. 거듭되는 실패에 나 하고 마주한 적이 없었다. 무한시간 속에 난 언젠가 임신을 할 수 있을 거라 믿고 싶어서 덮어두기만 했었지, 간절함이 뭔지 몰랐다기보다 너무 간절해서 혹시 못 가지게 될까 봐 마음의 여지를 뒀던 것이, 시간이 흘러 40대 초반.. 어쩌면 지금 임신이 안 되면 정말 내 인생에 아기는 없어도 괜찮겠니 라고 나한테 처음으로 물었다. 눈물이 흘렀다. 난 퇴사를 선택했다. 지금이 아니면, 회사를 방패 삶아 일을 핑계로 평생 살아갈 나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임신이 안되서가 아니라, 내가 임신을 포기했다고 포장하면서 부모님은 설득시킬 자신이 있었지만, 나.. 나를 설득하면서 살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아름다운 퇴사를 선택했다. 내가 건강한 이성으로 아기를 맞이 할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회사를 포기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후회도 없다. 난 포기가 아니라 다른 선택을 한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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