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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나케이 Oct 05. 2022

07. "이별"의 미래 진행형: 착각

착각을 깨닫는 순간은 눈앞에 놓인 현실이다.

갑자기 생각이 엉키기 시작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차 한잔을 내어왔다. 잠이 오지 않는 이유가 있었다. 그에게 답이 왔지만 왠지 오늘은 긴 밤이 될 것 같았다. 책상에 앉아 머리와 마음을 분리해 보려 노력했다.  


자정이 다 된 시간.. 메시지 읽은 시각은 저녁 8시.. 답을 한 시각은 밤 11시.. 3시간 동안 무슨 생각을 한 것일까? 그러나 한 마디..'어쩐 일이에요?' 지금까지 고민 끝에 하루를 넘길 수 없어서 보낸 흔적이 영역하다. 내가 거기에 갔지만 놀라지도, 미안해하지도 않는 아무런 감정 없는 듯 던진 한마디, 나의 착각이었다. 지금까지 그냥 그렇게 믿고 싶은 나의 착각이었다. 이렇게 보낼 거였으면, 읽자마자 보내거나, 지금 보낸다면' 미안해요 내가 일이 많아서'라는 정도 멘트는 붙는다. 지금 이 메시지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그도 이제 솔직해지려 한다. 이제 우리의 이야기를 시작해도 좋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한참 만에 답을 했다. 

일부러 피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어. 이렇게 카톡을 못 보진 않을 텐데.. 내가  내 마음대로 네 마음까지 같을 거라 착각했었나 봐.. 
 
첫 연락하고  나를 밀어내지 않고 담담하게 받아줘서 내가.. 정말 오해했나 봐.. 고마웠고 미안했고.. 그런데 뭔가 정리 없이 끝내버린 톡이 마음에 걸렸어..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건 얼굴 보고 지난 이야기 편하게 하면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어.. 잘 지내는 얼굴 한번 보면 마음도 가벼워질 것 같지 않을까 해서.. 
 
 내 상황이 네가 연락하기 쉽지 않다는 거 아니까 나도 시간 내는 게 지금 너무 힘든 상황이라.. 마음만 앞섰어.. 너도 옆에 사람 생기면 다신 이런 이야기 하지 못할 텐데.. 제대로 하지 못한 나의 이별이 이제 찾아와서 네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요 며칠.. 네가 어땠을지.. 알게 되었어.. 
 
못 봐도 지금 아니면,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못 볼 것 같고.. 날짜 잡고 보기에 무겁고 그냥.. 좀 아무렇지 않은 듯 우연인 듯 가볍게 보고 싶었어.. 병원 로비 커피를 들고 두리번, 혹시 너인가.. 해서.. 다시 차로 돌아와 앉아서.. 또 미안했어.. 너는 나를 보러 오지도 못 했을 텐데.. 이렇게 오기만 해도.. 난 괜찮은데.. 더 가면 욕심이다 싶었어.. 
 
 연락 없는 네가 밉다가.. 웃었어.. 내가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난 여전히 이기적이구나.. 생각했어..
 어쩌면 너는 내가 연락하는 게 싫다고 말을 못 하는 것 일수도 있겠다 싶어서.. 이제 정말 그만해야겠다 하고.. 자려가려는데.. 톡이 와서 알게 되었다. 모든 게 나의 착각이었다는 사실을.. 
 
그래서 이렇게 장문의 글을 쓴다..
 너.. 나한테 다시 연락하지 말라고 해도 돼
 너 충분히 그럴 수 있어.. 너 힘들지 않았으면 해.. 
 
네가 어떤 마음인지 몰라서 내가 어떻게 너를 대해야 할지 몰라 많이 갈팡잘 팡했어.. 내가 좀 천천히 선배로 다가가도록 해볼게.. 

 


이내 답이 왔다. 꽤 긴 내용을 다 알고 있었다는 듯이 답이 왔다.  

넌 내가 보낸 그 시간들이 어땠을지 상상조차 못 할 거야..

꿈에서 봤던 그 모습이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네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었어.
난 모든 걸 그냥 내버렸어.. 죽고 싶었고 죽을 만큼 힘들었고.. 나의 그 시간들은 정말 두 번 다시 상상도 하기 싫을 정도야.. 그냥 이런 카톡으로 그리고 찾아와서 미안하단 말하기엔 그 상처 그 배신감 난 절대 용서 못할 만큼 그 상처가 커.

그리고 안 걸어도 될 그 길던 길을 걸어 다니면서 통화음조차 가지 않던 니 번호로 수도 없이 전화했었어.. 잊고 싶고 지우고 싶었고 그냥 세상에 없던 사람처럼 살고 싶었어..

그냥 다 잊었다 착각하고 살고 있는 지금 날 그대로 내버려 두었으면 좋겠어..

감히 짐작했다 말하며 그의 지난 시간을 아는 것처럼 말할 수 없었다. 오롯이 혼자 버텨내며 감내한 이별은 죽음을 빗대어 말할 정도로 그에게 지울 수 없는 감정으로 자리 잡혀 있었다. 다시는 꺼내어 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3년간 방황의 끝의 이유는 말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 시간들이 미안하다면 지금의 나의 감정들이 그에게 영향을 안 미쳤으면 좋겠다는 말도 함께 전했다. 자신도 결혼 후에 아기가 생기고 나서 그때 나와 같은 상황일 때 만나고 싶다고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 마음은 이제야 좀 차분해졌다. 처음부터 이렇게 시작했어야 했다. 아프더라도 그는 솔직했어야 했다. 지난 일이라 이제 괜찮다고 멋있는 척하는 그는 내가 아는 그가 아니다. 비록 시간이 흘렀다고 해도 내 연락이 반갑지만, 분명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딱 거기까지가 그가 나에게 허락한 정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선을 넘어버렸다. 그래서 착각을 깨닫는 순간 눈앞에 놓인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것이다. 그 누구도 아닌  나에게 들켜버러서 그는 지금 이 현실이 더 두려웠을 것이다.



잠시 그가 단단해졌다 착각했었다. 정말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지난날의 감정과 에피소드.. 그리고 연락처를 먼저 건넨 그가 많이 단단해졌다 생각했었다. 이제 정말 괜찮구나라고.. 난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다시 이별을 소환하고자 그를 만나도 될 거라 착각했었다. 어쩌면 그가 괜찮은 척하는 건 아닐까 생각도 했었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하면서 나와 연락할 이유는 없다고도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말 그대도 믿고 다가갔던 것이다. 착각이었다. 나는 그를 안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지난 이야기를 하고 싶지도 나를 만나고 싶지도 않았던 것이다. 



이별 후 우리는 각자 착각하며 산다. 그래서 다시 만나면, 혹시 우리가 예전처럼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착각을 하기도 한다. 간혹 다시 사랑하기도 한다. 못다 한 사랑이 남았다면.. 또 이별하더라고 다시 사랑해야 한다. 미련은 착각보다 더 강하게 우리에게 속삭인다.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다음은 없어요'라고..



다시 시작하기 위한 지난 이별은 모든 것이 잠시 어긋난 설정 같아서, 시작 값만 다시 잡으면 잘 될 수도 있다는 기대가 있지만, 다시 이별하기 위한 지난 이별은 이미 세팅된 구도에서 아무리 내용을 충실히 잘 다듬어도 결국은 변하지 않는 잘 마무리된 이별이다. 그래서 어차피 또 아플 테니까.. 또 헤어질 테니까.. 그냥 착각하며 사는 건지도 모르겠다. 다 잊었다고 각인된 기억인지도 모른다.. 사랑만 기억하기에도 우리 머릿속은 여전히 비좁을 것이다. 다음 사랑을 위해 또 비워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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