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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나케이 Oct 05. 2022

08. "이별"의 미래완료형:용서

용서는 나를 먼저 이해하는 것이다.

엎드린 채 잠이 든 모양이다. 접힌 팔과 삐뚤어진 어깨, 굽은 다리도 저리다. 새벽 5시.. 핸드폰이 손에 그대로 있었다. 마지막 메시지도 그래로 열려 있었다. 아.. 내가 답할 차례였구나.. 답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머릿속으로 생각하다 잠들었던 모양이다. 다시 차분하게 답을 써 내려갔다.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워. 알고 싶었어. 내가 뒤늦게 이렇게 미친 듯이 용서를 구하고 싶었던 그날 밤 꿈은 일어나자마자 마치 어제 일처럼 아프고 저리고 슬펐어.. 너에게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불현듯 너에게 연락을 한건  다 말하고 네가 나에게 어떤 말을 하던 듣고 싶었어. 정말 못 했던 8년 전 우리의 이별을  늦었지만 정리하고 싶었어. 내가 결혼도 하고 아기까지 있는데 너에게 연락을 한건 정말 처음으로 너를 보게 된 꿈속 모습을 잊기 전에 이 감정을 담아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싶었던 마음이야.

난, 처음부터 내 카톡에 네가 답을 하지 않거나, 이런 감정 이야기를 다 할 줄 알았어. 그런데 너무 아무렇지 않게 아는 선배 대하듯 해서 의외였고, 내가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오히려 헷갈리게 돼서, 이렇게 지나는 말처럼 하자고 너에게 어렵게 연락한 건 아닌데 싶었어. 그래서 그 후로도 계속 고민한 거였어.

그냥 선후배 사이로 지내려 해도, 한 번은 너를 만나자 싶었어. 너 그렇게 말은 하지만 그게 아닐 것 같아서 확인하고 관계를 정리해야 할 것 같았어. 표면적 너의 표현을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덮어두고 너의 속마음도 모르고 너를 대해서 또 상처 주고 싶지 않아서 그래서 어제 찾아가 본거야. 연락을 하지 않는 걸 보고, 알게 되었어. 내가 착각한 거구나.. 실수했구나.. 나도 앞으로 너를 그냥 후배처럼 대할지, 그냥 딱 여기까지로 할지 나름의 정리가 필요했어. 내가 꿈에 너를 본 이야기를 믿지 않을 것 같아서 난 진심으로 너에게 용서를 구하게 된 계기였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

네 마음  내가 다 모르지만, 솔직하게 전해줘서  정말 고마워. 우리 서로 착각 속에 살게 두자. 내가 그것마저 빼앗을 뻔했어. 미안해.. 너 힘들게 하지 않을게.. 나란 사람 니 인생에서 지워버려.. 너 정말 좋은 사람이야. 네가 언제든 원하면 볼 수 있으면 보는 걸로 해.

난 여기까지 할게.. 멋있게 너의 인생을 그려 나가고 펼쳐 나가길 바라. 먼발치서 응원할게. 잘살아.


그리고 그는 답이 없었다. 마무리는 내가 하고 싶었다. 그래서 더 이상 답변할 필요 없는 메시지를 보냈다. 

머릿속에 맴도는 지시 형용사.."그냥 그런" 


그냥 이런 카톡으로 그리고 찾아와서 미안하단 말하기엔 그 상처 그 배신감 난 절대 용서 못할 만큼 그 상처가 커'. 


어떻게 했어야 나의 진심이 '그냥 그런'이 아니었을까? 인트로부터 무겁게 갔어야 했나? 지난 10년간 내 인생에 단 한 번도 생각나지 않던 그가 긴 밤 꿈에 나타나 잊고 있던 기억을 일깨워 준 사실을 그대로 전하고 용서를 구하고자 한 진심이 그냥 그런으로 돌아왔다.. 난 더 이상 이 용서를 구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는 절대 용서를 못한다고 했다. 상처뿐 아니라 그 배신감이라고 했다.. 내가 그를 배신했다고 했다. 



여기저기 끊긴 감정선을 이어가며 이해해 보려고 했지만, 할수록 그에게 되려 묻고 싶은 말들 투성이로 쌓여만 갔다. 그는 여전히 그날 그때의 감정으로 돌아 가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더 깊은 감정으로 빠져 들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나에 대한 용서 같은 이야기는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다시는 되돌아가고 싶지도 생각하고 싶지도 않을 정도로 상처뿐인 20대의 나와의 연애는 더 이상 추억거리가 아니었다.



서툰 감정과 방식으로 그에게 두 번 상처를 준 것 같아 후회가 되었다. 상대의 마음을 다 헤아려 주지 못하고 내 감정에 취해 용서라는 무기를 들고 무작정 그에게 다가가려 한 것 같아 후회가 되었다. 또 한 번 시기를 놓쳐서 오늘처럼 용서를 구하지 못해서 언젠가 후회할 것 같아 그를 흔들어 버린 지금.. 후회가 되었다. 사실만이 가장 진정성이 돋보일 거라 착각한 내 방식은 지나친 솔직함으로 가벼워 보인 것 같아 후회가 되었다.



그토록 그에게 구하고 싶던 용서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정말 그가 '나를 다 용서했어'라는 말을 원했던 것일까? 나는 어쩌면 그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지 모른다. 나도 너로 인해 정말 힘들었다고 나도 너처럼 힘들었다고.. 비록 늦었지만, 우리의 이별에 너만 힘든 게 아니었다고.. 공감을 기대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이별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고 나를 이해해 달라고.. 몰라서 너를 아프게 했다고.. 이제야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을 전해서 이해받고 싶었던 것 같다. 



용서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의 '그냥 그런'이라는 표현이 딱 맞는 것 같다. 나는 그냥 그런 말들로 그를 이해하는 것처럼 같은 아픔을 겪은 것 마냥 아는 척하는 나로 인해 화가 났을 것 같다. 그나마 괜찮은 척 포장하고 싶던 마음마저 그만하고 싶었을 것 같다. 지난 연인에게 공감과 이해를 통한 용서를 하겠다고 시작한 나의 이별 소환은 후회와 착각 그리고 조금의 미련만 남겼다..



친정엄마와 결혼 날짜 택일을 위해 찾아간 곳에서  뜻밖에 질문을 들었던 기억이 스쳐갔다.

-음... 여기 처자.. 혹시 만나던 사람 중에 아직 못 잊고 있는 사람이 있나 봐?

-제가요? 제가 못 잊고 있는 사람요?

-아니, 그쪽에서 처자를.. 그 사람 많이 힘든 것 같은데... 누군지 모르겠어? 만나서 풀어주면 좋을 텐데..

-에이, 없어요. 얼른 날짜 잡아 주세요


결혼에 들떠 전혀 누군지 짐작도 못했다. 그러나 아마 그였을지 모른다. 그와 헤어진 지 8년 전.. 나의 결혼은 6년 전.. 그는 그렇게 2년 넘게 가슴 절절하게 나를 잊어가고 있었던 것 같다..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을까.. 그때 용서를 구했다면 용서했을까? 그때는 나의 한마디가 그에게 필요했고, 지금은 그의 한마디가 나에게 필요했다. 


우리 서로 용서하고 놓아주자. 아름다운 다음 사랑을 빌어주자        


나는 이제 나를 이해하기로 했다. 그의 미래를 빌아주고 잘 살길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으로 나를 용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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