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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나케이 Oct 05. 2022

09. "이별"의 미래완료 진행:관계

연인과의 이별 후 관계 가이드도 필요하다.  

자신의 길을 묵묵히 잘 걸어가고 있는 그가 고마웠다. 행여 나로 인해 지금도 아파하고 자신의 길을 포기한 채 살아가고 있었다면, 나는 정말 후회했을 것이다.. 나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나를 절대 용서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떤 미래에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 그를 찾아 나선 지난 한 달간의 나는 내가 아니었다. 그러나 진심이었다. 생각이라는 것을 먼저 했다면 나는 또 용서를 미루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의 스물여덟의 꽃다운 사랑은 기억 저 넘머 묻혀 있었을 것이다. 



굳이 그를 통해 용서를 하려고 했던 나의 무모함이 오히려 용기로 돌아왔다. 두려웠지만 드러내 놓을 용기.. 나를 이해하고 용서하게 된 용기.. 아플 줄 알고도 그의 마음을 들어줄 용기.. 가 생겼었다.. 어쩌면 지금의 내가 행복하기에 가능했던 것들이다. 나는 너무 행복한데 그는 나로 인해 불행하다면 그의 인생에 내가 아직 있다면 잘 꺼내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방법이 용서를 구하고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을 전하는 길이라 생각했다. 우리의 관계를 설명할 방법이 없지만, 다시 시작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우리였던 시간은 있었다. 어떤 관계였던 시간은 분명 있었다. 그 지분만큼 그에게 다가가고 싶었다.        



그러나 남녀 사이의 관계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이미 누군가의 아내, 엄마가 되어버린 옛 연인과의 대면은 상대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냥 옛사랑으로 재회하기에 상대는 이미 다시는 내 사랑일 수 없는 사람이다.. 그리고 다른 어떤 관계 설정이 없다면 그들의 만남은 어쩌면 허락되지 않는다.



나는 아름답고 아주 이상적인 재회를 상상했던 것 같다. 우연처럼 찾아간 그에게 그가 먼저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그렇게 한참을 말없이 쳐다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잘 지내'하며 안부 인사를 묻고 서로의 살아있음에 그냥 감사하며 내가 덜 민망하게 예전의 따뜻하고 배려심 많던 그가 먼저 손을 내밀어 주길 기대했던 것 같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예전의 그였다면.. 한 번만 더 나를 이해해 주리라 혼자 바랬던 것 같다.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도, 혹시나 하는 미련은 그를 한번 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헤어진 연인과의 관계는 그냥 없던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 우리가 다시 사랑할 수 없는 관계라면 말이다.


관계는..

지어지는 것 같지만 주어지는 것이다.
다가오는 것 같지만 스며드는 것이다.
만져지는 것 같지만 느껴지는 것이다.

새로울 것 같지만 언제나처럼 익숙한 것이다
영원할 것 같지만 마지막처럼 아쉬운 것이다.
꼭 필요할 것 같지만 또 없어도 괜찮은 것이다.

갖고 싶다고 가져지는 것이 아니다.
간단할 것 같지만 쉽지 않은 것이다.
끌고 가는 것이지 끌려가는 것이 아니다.

절실할수록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조금 욕심내어 다가가려 한 것이 남아있던 관계마저 빼앗아 버린 것 같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름답게 사랑했고, 갑작스레 이별했고, 죽을 정도로 아파했으며 다시 그의 시간을 살아왔다. 가끔씩 가슴 절절하게 사랑했던 그녀가 어른거려 새로운 인연을 맺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이고, 배신감에 또 가슴이 아파오는 날에는 술에 취해 잊어버리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게 시간에 기대어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가던 어느 날.. 예고 없이 내가 들이닥친 것이다. 순간 반가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내 그 뼈아픈 이별이 떠올라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이제와 용서를 빌겠다며 몇 마디 하는 나와의 관계를 명확하게 하고 싶었을 것이다.



나는 뭔가 하려고 한 것이 아니다. 내가 알던 사람이었고, 사랑했던 사람이었고, 우리의 사랑을 너무 쉽게 치부해 버린 어리석고 서툰 이별을 뒤늦게 깨닫게 되어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리고 아프겠지만 어차피 또다시 이별이겠지만 못다 한 말을 전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가 힘든 만큼은 아니라고 해서, 늦었다고 해서 내 진심이 왜곡되어 아무렇지 않은 그냥 그런 것으로 치부되는 것이 슬플 뿐이다. 그냥 한번 호기심에 선후배처럼 지내자고 연락한 것처럼 그가 내 진심을 너무 쉽게 생각해 버린 것이 아플 뿐이다.



그러나 이제 괜찮다. 그에게 전했다. 내 마음을 내 방식대로 물러서지 않고 다가갔다. 그리고 미안하다고 그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그러나 닿지 못했다. 나의 착각과 욕심 때문에.. 우리의 관계가 예전과 다르다는 사실을 놓친 것이다. 첫 만남처럼 우리는 이제 그런 선후배도 사이도 아니다. 더 못한 관계가 되어 버렸다. 아니 우리는 그냥 아무도 아닌 사람처럼  모르는 척 살아가야 한다. 그는 그냥 자기를 이대로 내버려 두길 원했다. 아무것도 아닌 것보다 못한 관계로 끝나버렸다..



어설프고 서툴렀던 우리들에게 이별 후 관계 가이드가 있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 관계로 정의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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