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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나케이 Oct 05. 2022

06."이별"의 미래형: 기대

다시 한번 이별을 위한 만남을 기대하다.

어렵사리 연락이 닿고 몇 마디 카톡만 주고받은 게 불과 24시간 지났다.

마음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그래서 일단 아무렇지 않게 선배처럼 다가가 보기로 했다.


-어제 논문 많이 썼어? 혹시 평일 스케줄이 어떻게 돼?

 10분, 30분, 1시간.. 답이 없다. '점심시간이구나' 전문의 준비하느라 일요일도 바쁘겠지'.. 나의 몸은 집안일로 녹초가 되었지만, 머리는 계속 답이 없는 메시지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제 몸을 겨우 눕혀본다. 오후 4:30분.. 주말은 어느덧 이렇게 가고 있었다. 



카톡! 카톡!

-논문 손도 안 대고 게임만 ㅋㅋ

-평일은 일찍 끝나면 6시?

-세미나 있으면, 8시 반이나 9시 정도예요



4시간 여만에 답이 왔다.. 잠깐 화가 났다. 허무하고 무성의한 대답에 콧방귀가 나왔다. 이런 처사를 하는 나도 어이가 없었다. 사실은 그가 대답을 안 해도 괜찮다. 이내 다시 현실로 돌아와 앉는다. 문득 이 상황이 어떤지 나만 잊고 있는 것 같았다.  이내 후회가 밀려온다. 나 역시 오래 두고 답을 하자니 유치하기 짝이 없고, 별 의미 없는 대꾸를 똑같이 한다면 어제와 별반 다를 게 없는 마무리로.. 결국 원점이다.



-나중에 시간 맞으면 그때 잠깐 봐요. 난 이제 논문 쓰는 중

한발 늦었다. 난 또 기회를 놓쳤다. 어렵사리 시도한 2번의 기회가 모두 날아가 버렸다.

-그래 너는 논문 써라, 나는 밥 해야 함. ㅋㅋ

그냥 나도 자폭했다. 이게 오히려 낮겠다 싶었다. 내 마음이 하자는 대로 했다. 나도 별거 아닌 걸로 하기로..



사실은 오늘 나도 모처럼 혼자 시간을 갖는 날이다. 근처 사는 언니네 조카들이 방학이라 다들 다니러 와서 아들도 그곳에서 맡겼다. 고즈넉한 늦은 오후.. 오랜만에 드라이브 겸 근교로 운전대를 돌렸다. 무더운 여름이라 아직 낮이 길다. 얼마 만에 드라이브인가.. 그런데 막상 길을 나서니 갈 곳이 없다. 어디로 가야 할지.. 온전히 나를 감싸 안아 줄 곳을 찾지 못했다. 서글프기도 하고.. 앞으로 남은 인생의 막막함 같기도 하다. 



마음이 이야기한다. 생각이 시작된다. 어느덧 싹튼다. 여기서 1시간 남 짓거리.. 그가 있는 병원이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그러나 그는 마음먹으면 닿을 곳에 있었다. 운전대는 이미 그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달려가는 마음이 이상하다. 


지난 2년간의 연애가 파노라마처럼 하나씩 스쳐 지나갔다. 가슴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나도 그를 많이 사랑했었구나.. 억지 같은 사랑으로만, 그 혼자 사랑했던 왜곡된 기억이 하나씩 바로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 시간은 아주 아름다웠다. 정말 좋은 사람이었구나.. 그리고 우리의 이별이.. 생각나지 않았다. 어떤 그림도 상황도 없었다. 새까만 벽지 같았다. 그저 내 감정만 되살아났다.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잊어내고 지워내고 하루하루.. 그렇게 지난 3년을 오롯이 혼자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을지.. 감히 짐작해 보았다. 잊어내는데 3년 정도 걸렀다고 했다. 그리고 우연히 알게 된 나의 결혼 소식에 그는 마음을 접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좀 덜 방황했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나를 정말 많이 사랑했던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다시는 그렇게 누구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없을 만큼 사랑했던 사람이라고도 했다..



사랑을 치유 정도로만 알던 내 까짓 거는 감히 그런 사랑을 받지 말았어야 했다. 누군가 진심을 다해 사랑한다는 말.. 너무 오래된 기억이다. 결혼 전 남편과의 사랑도 이제 희미하다. 우리 부부에게는 우정과 의리가 쌓여가는 단계다. 나에게 가족은 이제 우산 같은 그늘이다. 오롯이 나는 존재하지 않는 그러나 우리는 함께 만들어가는 세상에 이제 산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그와의 짧고도 긴 시간을 회상하며 마음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럴수록 아픈 기억으로 자리 잡은 이별은 불쑥 튀어나와 나를 어지럽혀댔다.



시간이 흐른다는 의미는 변한다는 말과도 같고, 변하지 않는다는 말과도 같다. 변한다는 것은 각자 겪은 세월에 맞게 적응되어 서로가 알던 사람이 더 이상 아니다. 그리고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쩌면 그 시절 우리가 만난 기억 속에 서로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는 변하지 못한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문득  더 이상 나는 그를 알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오늘 그를 만나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 목적지에 도착할 때쯤에서야 깨달았다. 우리는 많이 변했을 수도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아직은 낮 기운이 더 많이 느껴지는 무더운 날씨다. 막상 도착하니 막막하기만 하다. 그냥 돌아갈까? 자칫 내 의도가 가볍고 무성의하게 느껴지는 건 아닐까?



문득 의미 없는 그의 '나중에 시간 맞으면 그때 봐요'가 불안하게 맴돌았다. 난 한 번은 시간 내어 꼭  만나자고 할 생각에 평일 스케줄을 물었지만, 그의 대답은 다른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만나고 싶지 않다는 말일 수도..있겠구나..

그의 입장에서 그의 말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내 방식의 해석이 오늘은 자신이 없다. 


-혹시 시간 잠깐 되나

-바쁘면 톡이라도 남겨줘


저녁 7시.. 이제 겨우 1시간 정도밖에 시간이 없는데.. 답이 없다. 읽지도 않는다.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거 같다. 차 밖으로 나와 걸었다. 주변에 의사 가운 입은 사람들은 다 똑같아 보였다. 혹시 내가 그를 알아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우연기대해 보았다가 커피 한잔을 다 비우고.. 화장실도 들락날락.. 여전히 답이 없다.. 나에게도 이제 시간이 없다..


많이 바쁜가 보네.. 저녁시간이면 좀 괜찮을까 했는데.. 오늘 아니면 보기 어려울 것 같아서 정말 얼굴만이라도 봤으면 하는 마음에 여기로 왔어.. 못 만날 수도 있겠다 했는데....

역시.. 그래 다시 만나는 거는 쉽지 않네.. 그래도 내 감정에 충실하자 해서 왔더니 마음은 좋다.. 내가 이러지 않으면 못 만날 것 같아서.. 기다려보니, 어떤 마음인지 그냥 조금 알겠더라.. 내 마음 좋자고 왔으니까 괜찮아... 이제 그만 갈게...

 

아무 말 없이 그냥 돌아갈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이미 내가 여기 왔다는 뉘앙스가 남아있다. 그는 분명 안다. 내가 여기 왔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 어차피 한 번은 만나겠다고 온 거니 왔다 간다는 말은 전하고 싶었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너를 만나고 싶어 하는지 그가 알았으면 했다. 이제는 나도 그만 미안하고 싶어졌다. 고작 불과 몇일인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좀 허전했다. 마음은 더 바닥으로 내려갔다.  어차피 드라이브 차 간 거라 달래 보았지만, 알고도 답이 없는 그의 마음이 여전히 나를 헷갈리게 했다. 괜찮다는 말이.. 아니었던가? 어쩌면 아직도.. 그렇지만 그의 말투는.. 모르겠다.. 이제는.. 그냥 자꾸만 화가 난다. 이렇게 지지부지 끌고 있는 나도, 솔직하지 못한 그도.. 그러나 알 것 같다. 그는 지금 솔직하지 못하다..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하다..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보다 만나러 갈 수 있어서 좋았다. 사실 진짜 그가 나왔다면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 생각이 없던 터였다. 나 역시 솔직하지 못했다.. 이별을 핑계로 어쩌면 그를 한번 만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보고 싶었다. 정말 잘 사는지 보면 미안하다고 진지하게 말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같은 마음만 있을 뿐이었다. 사실은 그의 마음을 알 수 없어서 답답하고 화가 나는 것 같았다. 그가 나한테 어떻게 해도 상관없지만, 조금만 더 성의가 있었으면 하는 나의 헛된 바램이 그렇게 날아가 버렸다.



오늘은 자정이 다 되도록 잠이 오지 않는다. 뒤척이다 뒤척이다. 잠을 정해 본다.

카톡!

-어쩐 일이에요?


밤 11:58분.. 그에게서 답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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