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나케이 Oct 05. 2022

04. "이별"의 현재 진행형: 미련

절대 버리지 못하는 이별 감정은 미련이다. 

"넌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상상도 못 할 거야 난 죽은 사람처럼 살았어" 그의 차갑고 담담한 한마디였다. 꿈속에 그는 방금 전까지 나와 함께 있었던 것 같았다. 그의 힘든 기운이 나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새벽녘 숨이 멎는 것 같은 가슴 저림으로 잠에서 깨어났다. 지난 10년간 한 번도 그를 떠올려 본 적이 없었다. 



다음에 통화하자고 한 말은 나는 지키지 못했다. 그리고 3년 뒤, 국가번호 82, 뒷자리는 모르는 번호였다. 한참 교수 임용 준비로 여기저기 지원하던 때라 혹시나 합격 연락 일지 몰라 다급히 받았다.  



-네, 말씀하세요

-.................. 나야, ..

-..........................음... 어.. 너구나.. 그래..


3년 만에 헤어진 연인과의 대화는 불청객과 대화하듯 짜증 섞인 말투와 마치 어제 다툰 것 마냥 차가웠다. 기대가 한 번에 무너져내리는 한숨을 그에게 내뱉고 말았다. 마치 내 합격을 방해한 것처럼.. 

- 어.... 내가.. 지금 들은 게 한숨인 건가? 참, 너 대단하다. 나 전할 말이 있어서 의전원 합격했어. 너한테 꼭 알려야 할 것 같아서, 아니 알리고 싶었어. 

차분하고 당당했지만, 목소리에 꾹 눌려진 지난 감정이 담겨 있었다. 

-어? 그래.. 그래 잘됐다. 다행이다. 잘 살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우리 마지막 인사도 제대로 못했는데, 얼굴 한번 보는 거 어때?

-아... 글쎄... 꼭 그래야 할까? 그래 뭐 그럴 수 있으면 우연히라도 우리가 만날 기회가 생기면 봤음 좋겠네..

그를 만나 얼굴을 보면.. 못 놓을 것 같았다. 그리고 헤어진 연인이 다시 날짜를 잡고 장소를 고르고 대화를 공유하고 단 하루를 위해서 이런 짓거리를 한다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다시 돌아가는 게 싫었다. 



나는 그렇게 또 다시 한번 더 마지막을 미루었다. 잠에서 깨어 10년 전 우리의 마지막을 떠올려 보았으나, 우리에게 마지막 모습은 없었다.. 갑작스레 밀려오는 알 수 없는 감정들이 가슴 사이로 빠져나가면서 바람소리가 났다. 시렸다. 얼굴이 찡긋거렸고, 코끝이 시큰했으며 그에게 미안함 마음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미련이었다. 제대로 끝내지 못한 이별이 마음 한구석 어딘가 처박혀 있다가 이렇게 우연처럼 다가왔다.



난 이별했다고 생각했다.  지난 10년간 단 한 번도  떠올린 적 없는 그였다. 추억이랄 것도 기억나지 않는 지난 사랑으로 나는 정리했다고 생각했다. 잠자리에서 한참을 앉아 그를 떠올렸다. 기억나지 않았다. 가슴 시린 감정만이 나를 지배하고 머릿속은 다른 사람 같았다. 



서재로 가서 그의 기록부터 찾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이름 외에는 그 어떤 연락처도 남아있지 않았다. 혼자만의 이별식을 했던 그날, 사진이며 이메일, 연락처.. 모든 기록과 함께 추억도 하나도 남기지 않고 지웠던 기억이 스쳐갔다. 유학시절 쓰던 폰을 겨우 찾아 전원을 켰다. 켜질 리 없다.. 단자가 맞을 만한 것들은 죄다 맞춰보니 헐겁지만 충전이 가능했다.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그에게 한 발짝 다가간 것 같았다.  양손으로 연결부위를 붙잡고 한참을 기다려 겨우 전원을 켰다. 오래된 핸드폰의 반응은 실오라기 같은 내 희망에 대해 화답하는 것 마냥 아무것도 없었다. 있을 리 없다. 미련 없다 자부하며 당당히 그를 떠나보냈노라 멋있는 척 잘난 척하던 지난날의 내가 떠올랐다. 



마지막 희망으로 이제는 쓰지 않는 오래된 이메일 계정을 찾아 들어갔다. 역시나 편지 한 통 남아있지 않았다. 뒤져도 뒤져도 없었다. 보낼 수 없지만 편지 한 통에 오늘의 내 감정을 담아 미안함을 전하고 싶었다.  갑자기 눈에 들어온 주소록... 설마..혹사..그의 이름을 클릭하니 이메일 주소가 저장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안녕...

너무 오랜만이지.. 연락처를 찾을 방법이 없어서 며칠 헤매다 이메일 주소를 겨우 찾았네.. 답을 받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보낼 수 있어서 한편으로 다행이다 싶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메일 보내.. 혹시 메일 보게 되면 회신해주면 좋겠다..
염치없이 너무 바라는 거 같네..

잘 지내고 있지? 연락 닿으면 또 연락할게..



헤어진 이후 한 번도 그에게 연락을 한 적이 없었다. 나의 이별은 그토록 당당했다. 그냥 담담하고 싶었다. 내 마음을 진지하게 들여다볼 겨를이 없었다. 메일을 보내고 알았다.  내가 그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난 한 번도 그에게 미안하다고 하지 않았다.



난 미안했어야 했다. 비겁하고 이기적인 이별을 통보했고, 진지했던 나와의 사랑을 가볍게 치부해버린 상처 입은 그의 마음에 미안했어야 했다. 난 기다려줬어야 했다. 하루아침에 우리 사이가 연인이 아니라고 하자고 다 지난 일로 하자고 내가 정한 끝을 그도  받아들이고 비우고 다시 일어설 시간을 기다려줬어야 했다. 나는 솔직했어야 했다. 이별의 이유가 너와는 미래를 함께할 자신이 없다고, 너는 아직 아니라고 아프지만 털고 일어설 수 있게 그에게 솔직했어야 했다. 제대로 이별하지 못한 내 마음에 미련이 한가득 차지하고 있었다. 



매일 같이 이메일 수신함을 확인했다. '역시나.. 뭐 하루니까.. 이메일을 잘 안 쓸 수도 있고'.. 나를 달래며 하루를 보내고 또 하루, 하루.. 하루.. 오늘도 역시.. 그렇게 매일 같이 나는 그에게 출근 도장을 찍었다. 너무 늦어버린 우리의 마지막 인사는  결국 허락되지 않는 것일까? 나는 또 내 방식대로 마지막을 전하려 하고 있었다. 대답 없는 그를 미친 듯이 찾아 나서는 지금, 누구를 위한 것인가? 불현듯 멈췄다. 이게 그가 원하는 것일까? 지금도 우리가 마지막 인사를 하기를 그는 원할까? 나만 이렇게 속죄하겠다며 그를 찾아 나서는 게 맞는 것인가? 



보고 싶은 그리운 감정이 미련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미련은 그리워서가 아니라 지워지지 않아서 잊히지가 않아서 남아있는 감정인 것이다. 그와의 이별이 지워지지가 않아서 잊히지가 않아서 미련이라는 감정이 자리 잡은 것이다. 돌아 돌아 이제야 알게 된 절대 버리지 못하는 이별 감정이 미련이라는 사실을..



나는 원도 한도 없이 최선을 다해 사랑하지 못했다. 그는 사랑을 시작할 기회조차 빼앗겨 버렸다. 서로를 바라보며 다른 사랑을 꿈꾸었던 우리는 결국 헤어졌다. 나는 제대로 사랑하지 못했기에 지난 사랑이 아닌 지난 이별이 지워지지 않아 이렇게 미련한 마지막을 다시 한번 기다린다. 다시 우리에게 마지막이 주어지기를 오늘도 수신함을 확인한다..


 



 





이전 03화 03."이별"의 현재형: 추억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