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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나케이 Oct 05. 2022

05. "이별"의 현재완료형:연락

다시 한번 이별을 소환하다..이별을 위한 이별도 리콜이 되나요?

돌배기 아기와 함께하는 하루 일과는 주말에도 돌봄의 연속이다. 단지 양육자만 바뀔 뿐 여전히 누군가와 함께 하루를 보내야 한다. 늦잠도 휴식도 주체는 내가 아니다. 오늘따라 유독 피곤하다..한 며칠 정신을 다른 곳에 팔려서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한몸 두인격체 같은 생활은 사람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머리속에는 여전히 오늘 아침에도 확인 못한 수신함 생각으로 비좁기만 하다. 



2주가 넘어 3주째... 이렇게 반복하다 보면 지쳐서 마음도 옅어지고 생각도 멀어질 줄 알았다. 더욱 더 집요해지고 선명해지고 아팠다. 용서를 구하고 싶은 마음이 점점 더 커져갔다. 그도 그랬겠구나..하루 하루 나를 잊어가는 시간이 더 짙어지고 아파오고 매일매일이 지옥갔았겠구나..연락해도 받지 않고, 어느나라 어느곳에 사는지만 알 뿐 당장 달려와 하소연도 할 수 없는 길고 긴 시간을 괜찮아 질때까지 안고 살았겠구나..이제야 그가 되어 그 마음이 조금 짐작이 되었다. 비교조차 하면 안되는 시간을 나란히 놓고 동병상련이라 위로해 본다.



뒷북도 이런 뒷북이 있나 싶고, 그냥 잠시 이러다 말려니 하는데, 마음이 안 편하다. 지워 지지도 않고..명치 끝만 더 아파올 뿐이다. 휴..뭘 어떻게 마음먹고 그냥 털고 일어날까 하는 생각에도 나는 어느덧 수신함을 확인하고 있었다..역시나..



갑자기 이메일 주소가 눈에 들어왔다. 주소가 낯이 익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카카오 친구찾기에 아이디를 넣어 보았다..

헉....그였다.. 안 이름에 안 흔안 성을 가진 그라는 사람이 있었다..

가슴이 미친듯이 두근거렸다..눈물이 왈콱 쏟아져 나오려는 느낌을 감지 했다. 칭얼대는 아들 덕에 확 정신이 차려졌다..



잠시..생각을 가다 듬었다..'내가 왜 이토록 연락을 하려고 하는거지?' 지난 시간 연락만 닿기를 매일같이 바라던  마음의 목적을 잃었다. 떨리는 마음은 처음 그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던 그 때 같았고, 두려운 마음은 마지막 나의 비겁함을 알아챌까 하는 그 때 같았다.



-혹시..내가 아는 사람이 맞는지 모르겠네요..

연락이 닿았다..아..준비가 안 된것 같다는 생각이..

-오랜만이네요..

-어..맞구나..불쑥 미안해.

-아기가 생겼군요..축하해요..

-어..아..

-잘 지내지?

-잘 지내요.. 그래도..반갑네요..10년만인가..

곧 전공의 끝나가요. 병원갈일 있으면 말해요.

난 아직 결혼도 못하고..음..주변 좋은여자 있으면 소개해 주세요..선배



더이상 내가 알던 그가 아니다. 여지가 없다. 지난 이별을 굳이 소환할 변명도 없다. 말하고 싶었다. 미안하다고..진심으로

- 아..몇일전 니가 꿈에 나와서..자다깨서 가슴이 너무 아팠어..마지막 니 모습이 생생히 그려져서 마치 본것 처럼..

그는 카톡을 읽고도 한참을 답이 없다..

-미안하다고..말 하고 싶었어..너무 늦어서 미안해..미안했어..10년이 흘러서야..깨닫는다..

이번에도 답이 없다..기다렸다..

- 처음에 힘들었는데..괜찮아지는데 3년정도..

그리고 연락했을때는..마지막 인사 하고 싶었는데

언젠가 한번은 안녕하고 싶었어요..



내가 지난 이별을 다시 불러오기에 그는 지금 너무 평온하다. 그 때 못한 내 미안한 마음만  전하고 용서를 구하기에 나 혼자만 10년전이다..서로 안부 인사나 하자고 이렇게 어렵게 연락한게 아닌데..

갑자기 어떻게 이 대화를 이어나가야 할지 멍해졌다.

- 여기 제 연락처요. 지금 생활에 방해 안되는 정도 후배정도로 해 두세요.

나는 더 이상 아무말도 못했다..

-꿈에서라도 힘든거 알아서 다행이네요. 미안하면 잘 살아요. 난 병원 나가봐야 해서요.

또 연락해요.

- 어..아..나도 아기가 울어서 그래 또 연락하자..


다리에 힘이 풀렸다. 너무 긴장했나보다. 그런데..여전히 편하지 않다. 아니, 오히러 더 찝찝하다. 짧은 대화는 맥락도 모르겠다. 그가 이제 진짜 의사가 된다는 소식과 아무렇지 않게 내 입장을 이해한다며 연락처를 먼저 

내민 행동은 어떤 의미를 부여하자니, 후배 정도로 하자 선을 긋는다. 내가 다가가지도 멀어지지도 못하는 새로운 관계가 어설프게 설정 되어져 버렸다.  



그리고 헷갈렸다. 나를 용서한 것인지..괜찮은 척 하는 것인지..그래서 정말 내가 이제부터 선배여도 되는지..선배처럼 모르는 척 뭉개고 다가가도 되는건지..묻고 싶었다. 이것조차 물을 수 없다.

더 복잡하고 괴로웠다. 제대로된 사과조차 못하고 뜸금없이 연락한 생각없는 X여친정도..



난 다시 그를, 그와의 이별을 해야 한다. 평생 가슴에 새겨진 한 사람의 진심을 무참히 짓밟은  댓가를 이제라도 치러야 한다. 우린 좀 더 잘 헤어졌어야 했다. 그에게서 그토록 도망치고 싶었던 나는 바라던 삶을  살고 있는가? 그렇다면 그도 그럴까? 아니면 여전히 오기로 독기로 나에게 보여주기 위해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나의 착각이여도 좋다. 그가 이젠 정말 그의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



내 연락은..이제 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무하게 끝내버린 우리의 대화는 마치 내일도 볼 수 있을것 만 같은 너무 평범한 일상 이었다. 혼란스러웠다. 다시 그에게 보낼 메세지가 없다. 난 이제 막 시작하려고 하는데..겨우 인사만 하고 기약없는 다음이 되었다.


아무렇지 않게 그가 나에게 다시 한번 연락이 오길 난 오늘도 기다린다.


이별을 위한 이별도 리콜이 되나요? 나에게 진지하게 다가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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