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결국, 나와 마주하다.

돌아 돌아 문제도 답도 찾게 된다. 가만히 나를 들여다보면

by 루나케이

지난 2년여 동안 아기를 갖기 위한 내 노력이 하늘에 닿지 않는다고 생각이 들던 날 너무 욕심을 부려서 인건 아닐까라는 편한 답을 찾으려는 핑계도 있었지만, 사실은 그냥 내 탓을 하고 싶지 않았다. 암흑 속을 달리기만 하다가 멈췄는데, 여기가 어딘지 몰라서 더 달렸던 가장 두렵고 긴 시간으로 기억된다. 직장 동료들 사이에 묻혀서 나도 문제없이 잘 살고 있는 것처럼 시간을 보내면 위로가 되기도 했다. 견뎌내고 있는 것만으로도 내가 대견해지기도 하는 그냥 시간도 흘러가 줘서 감사했던 그런 때.. 나른한 오후 햇살에 비친 내 모습이 가끔씩 뭔가 잊고 싶어 하기도 하고, 누군가를 탓하고 싶어 하기도 하고, 체념하고 싶어 하기도 하는 나와 마주하고 싶어 하지 않는 피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 모른 척해 주고 싶던 그런 시간들이 있었다. 그때는 앞에 닥친 문제를 잘 해결하다 보면 정리가 되고 뾰족해질 줄 알았다. 팀장으로서 맡은 바 일 뿐 아니라, 팀원에게 도움이 되는 것까지 해결해 나가다 보면 안정도 되고 여건도 괜찮아질 줄 알았다. 그런데 사실 일도 쳐내기가 바빴고, 그러다 보니, 성과 역시 그저 그랬다. 최연소 팀장 타이틀이 사실 좀 버거웠던 것 같다. 이제와 말하지만....


입사 후 1년이 다 되어갈 무렵, 가장 바쁘고 정신없던 그때,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는데, 모르겠다, 그런데 아주 선명하게 그냥 나만 찡하게 비치는 것 같은 기운이 감싸면서, 이게 지금 앞뒤가 맞나?라는 엉뚱한 질문에 "이게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건가"라는 답이 툭 튀어나오면서, 자리에 앉아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나와 마주하게 되면서 문제도 답도 찾으려고 했던 것 같다. 정말 문제라고 드러내 놓고 싶지 않았던 내 마음부터 보이면서, 찬찬히 하나씩 살펴보고 싶었다. 세월에 맡겨 물 흘러가듯 가도 되는 문제인지 말이다. 가다 보면 닿게 될 거라는 1도 없는 희망을 그려야 할지 말이다. 글쎄.... 난 정말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고 있었다. 내가 문제라고 인식하고 싶어 하지 않아서 그냥 묻어두고 지내온 것이었다. 이건 내가 짊어져야 할 문제이지 회사나 동료가 해결해 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오히려 숨을 좀 쉴 수 있었다. 어쩌면 문제도 답도 내가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난 내 문제를 동료들에게 알렸다. " 난 2세를 가져야겠어요. 그런데, 이렇게는 힘들 것 같네요"라고 말이다. 주말 부부라 안 쉽네요도 답이 아니고, 일이 너무 많아서 시간이 없어요도 답이 아니었다. 주말 부부라도 애가 둘씩이나 있는 커플도 있고, 일이 나보다 차고 넘쳐도 보란 듯이 임신하는 동료도 있었다. 나는 이렇게 해도 안 되는 구나라는 인식을 좀 더 빨리 했어야 했다. 나도 곧 되겠지 라는 나도 그들과 같을 거라는 믿음 뒤에 실망을 반복하고 자책할게 아니라, 좀 더 빨리 나는 안 되는구나라고 인식하는 거였다. 알고 나니 뭐 답도 일사천리로 찾아냈던 것 같다. 나 때문에 동료들이 눈치 보게 하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 나를 더 이상 이런 식으로 괴롭히고 싶지 않았다. 마치 무딘 사람인 것처럼도 괜찮아 보이는 사람인 척도 하고 싶지 않았다. 공식적인 내 퇴사 인사는 이랬다.


" 지난 1년 동안 주말 부부 하면서 노력해 왔는데도, 저는 임신이 잘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아무래도 직장생활과는 병행해서 2세를 가지는 것은 어려운 것 같다고 판단이 들어서 더 늦기 전에 아기를 갖기 위한 노력을 해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퇴사를 하고자 합니다."


믿지 않는 분위가 절반 이상이었다. 어딘가 몰래 이직한다고 쑥덕거렸다. 저러다 분명 어디 옮겼다는 말 나올 거라며 곱지 않은 시선과 동시에, 입사 1년 3개월 만에 임신을 이유로 나간다고 하니, 무책임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뭐하러 팀장 맡았냐고.. 그런데 그런 말들이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나는 훨씬 더 아프고 쓰린 시간을 그동안 혼자 보내왔기 때문에 이 정도 가십쯤은 내 임신에 아무런 걸림돌도 되지 않았다. 내가 문제를 안고 노력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나 나름대로 찾아서 떠나는 이 길이 보여서 퇴사지만 행복했다. 퇴사의 절차가 생각보다 단계가 까다로웠다. 부장님 부터 사장님까지 각각 단계별 면담을 통한 결제 승인을 받아야 나갈 수 있을 줄 몰랐다. 초지일관 내 퇴사의 이유는 2세 만들기였다. 각자의 위치에서 문제를 해결하시려는 노력에 죄송하기도 하고 어쩌면 비겁해 보일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난 일부러 이유를 만든 게 아니라서 오히려 담담했다. 결국 내가 나가게 되면서 이사장님은 난임 휴직라는 제도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셨고, 난 진지하게 현재 나의 상황과 만약에 생긴다면 도움 될 거라는 의견도 드렸다. 퇴사 이후 알게 된 사실인데, 정말 퇴사 1년 뒤 난임휴직이 생겼다고 한다. 내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회사의 문제일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뭔가 모탬이 된 일을 한것 같아 나의 퇴사는 정의롭기까지 했다. 결국 돌아 돌아 나와 마주하면 쉽게 해결되기도 하고, 더 큰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 답은 내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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