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서의 여성의 날은 2번(이틀)이다. 이것을 두고 베트남 남자들은 베트남에는 남자들의 날은 없고 여성의 날만 2번 있다고 푸념섞인 말을 하지만, 이것을 두고 베트남 여자들은 이렇게 얘기하곤 한다. "베트남에서 1년 365일 중 여성을 위한 날은 2일이지만, 363일은 남자들의 날"이라고 말이다.
위 얘기는 베트남 남성들이 일반적으로 부엌일과 집안일을 잘 거들어주지 않는 것을 꼬집어 얘기하는 것이다. 아무튼 2번의 여성의 날에 여성들에게 꽃과 선물 그리고 외식을 통해 그들의 날을 축하해 주어야 한다. 가정에서도 그렇지만 직장에서도 이 날을 기념하는 곳이 많다. 이 날 아오자이를 입은 여성들도 많이 볼 수 있다.
베트남의 꽃값은 우리나라에 비해 상당히 싸다. 600,000 VND(한화 약3만원)이면 한국에서는 작은 꽃다발 정도밖에 살 수 없겠지만 이곳에서는 정말 아주 큰 풍성한 꽃바구니를 한 아름 들고 갈 수 있다. 이곳에서는 100송이 장미도 큰 지출 없이도 선물해줄수 있다. 점원이 처음 부르는 가격보다 다소 값을 깎을수 있으니 협상을 잘 해보자.
그러나, 1년에 2번 있는 여성의 날(10월 20일) 전에는 일시적으로 금액이 올라간다. 약 1.5배 정도 오른다고 보면 된다. 이때만 피해서 사자. 이때는 에누리도 잘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공급자보다 수요자가 많기 때문이다.
베트남 거리에서 실크옷을 입은 여성분을 본다면
한국인이 베트남에서 생활할 때 한 번쯤 당황스러운 때가 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베트남 여성분들의 실크 옷일 것이다. 실크는 베트남 지역에서도 특산품으로 키울 만큼 질도 나쁘지 않거니와 가격도 한국에 비해 약 1/3 정도 싼 것 같다. 그래서인지 베트남에서는 실내용 또는 잠옷으로 많이들 입는 것을 볼 수 있다. 당황스러운 것은 이 실크 옷을 입고 마트와 같은 바깥에 나온다는 것이다.
베트남은 잠옷과 실내복의 개념이 없어 실크 옷을 실내복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실내복 역시 실외에 입어도 큰 문제는 되지 않으므로 실내복인 실크 옷을 실외복으로 입고 슈퍼마켓 등에 장을 보러 나오는 것이다. 마치 우리나라로 치면 집안에서 입던 반바지와 T셔츠 걸치고 나오는 것과 비슷한 상황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이는 잠옷과 실내복을 엄격히 구분하고 있는 한국인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운 상황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여기는 베트남이다. 베트남 문화와 베트남을 이해한다면, 그러한 모습을 보고 이상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 물론 한국에서 이러한 일이 일어날 경우는 한국땅이므로 베트남 분들의 주의는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필자가 알기로 베트남 분들이 한국에 여행 올 때 주의할 점 리스트에 바로 이 실크 옷이 있다고 한다.
오토바이를 타는 여자 닌자의 모습을 본다면
아오자이를 입고 오토바이를 타는 베트남의 젊은 여성분들만 있을 거라고 생각한 분들이라면 베트남에 처음 와서 또 한 번 놀랄 것이다. 몸 전체를 뒤집어쓴 닌자 복장을 하고 오토바이로 출근하는 여성들을 많이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선글라스와 마스크까지 장착하게 되면 몸 전체가 전혀 보이지 않게 된다. 이는 하얀 피부를 좋아하는 베트남 여성들에게 있어서 최대의 적이라 할 수 있는 햇볕을 막기 위한 조치이다. 아시다시피 베트남에서의 태양은 정말 뜨겁다.
베트남 여성분들이 필요한 화장품도 UV 제품들이라고 하니 선물 줄 때 한 번쯤 고려해보기를 바란다. 실제로 베트남의 북부 하노이시 여름은 우리나라 기온으로 볼 때 거의 4월부터 10월까지 지속된다고 본다. 처음 베트남에 가서는 이러한 기후에 몸이 적응하는데 시간이 꽤 걸린다.
베트남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역사를 알아야 한다.
베트남 역사는 우리나라의 역사와도 상당히 비슷하다. 우리나라의 단군왕검과 같은 건국설화도 있으며, 중국의 지배를 약 1,050년간(BC111∼939년) 받아왔기에 중국의 영향도 상당히 크다. 이후 독립국가 시대를 거치게 되는데 여기서 가장 마지막의 통일왕조가 응웬(Nguyen) 왕조이다. 현재 베트남 성씨 중 가장 많은 성씨로 한국의 ‘김’과 비슷하다. 응웬(Nguyen) 왕조의 수도는 후에(Hue)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찾아갔던 다낭 바로 위에 있는 도시이다. 우리나라의 '경주'정도의 도시로 생각하면 된다.
이후 1858년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어 1954년까지 약96년 동안 점령당한다. (프랑스 점령기 영향 때문인지 건물들이 프랑스풍이 많이 남아있다). 중간에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1940년∼1945년까지 점령하여 통치를 당하기도 하는 등 열강으로부터 많은 시달림을 받은 것 또한 우리나라의 역사와 흡사 비슷하다.
이후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프랑스로부터 독립하였고, 미국과의 약9년간의 전쟁(1965년∼1974년)에서도 북쪽의 공산당에 의해 승전하게 되어, 1975년 베트남 남북이 완전히 통일되게 된 바 있다. 이렇듯 미국, 중국, 프랑스 등 세계열강과의 전투에서의 승리는 베트남인들에게 자긍심을 주게 되었고, 현재도 베트남인의 자존심은 상당히 센 편으로 비즈니스 등의 관계에 있어 이러한 성품에 대해 항상 유의해야 한다.
또한, 베트남은 고대로부터 모계 중심의 사회를 유지하여 왔고, 근대에 전쟁에 있어서도 여성도 큰 역할을 수행하는 등 여권이 강한 나라에 속한다. 실제로 일하는 여성의 비율도 상당하고, 정부 및 기관에서의 고위공직자로 많은 여성분들이 일하고 있는 것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예로부터 지방자치권이 강하였고, 현 사회주의 체제하에서도 중앙정부에서의 지침에 따라 각 지방의 자치적인 결정들이 제각각 다를 수 있다는 점에서 마찬가지 사업적인 측면에서 유의해야 할 점이다.
베트남인은 우리나라와 같이 젓가락을 쓰기 때문에 손재주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6 성조와 영어와 유사한 어순 등으로 중국어, 영어 등 외국어 습득도 용이할 뿐 아니라, 젊은 층에서의 교육열도 상당히 강하여 향후 발전 전망이 큰 국가이기도 하다.
베트남 지도를 보면 수도 하노이가 우리나라 광역시 같은 형태로 매우 큰 규모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하노이 수도 1,000주년 기념으로 2009년 하노이를 전략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종전 면적을 3.5배로 확장하여 집중 투자했기 때문으로 현재 호찌민시보다 큰 면적을 자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