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이밍으로 배우는 '왼손, 아니 왼발은 거들뿐'
다른 산의 하찮은 돌도 도움이 된다고 하는데, 하물며 돈을 주고 배우는 클라이밍 수업에서는 클라이밍뿐만이 아니라 참 많은 것을 배운다. 수업 때마다 차근차근 기초를 다지는 것의 중요성을 몸소 느꼈는데, 최근 수업에서는 눈 앞의 욕심을 버리고 주위를 둘러보는 법을 배웠다.
클라이밍을 하다보면 때로는 몸을 날리거나, 전완근이 땡땡해지도록 힘이 많이 들어가는 코스를 정복해야 한다. 하지만 단순히 힘만 쓴다고 해서 해결이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 생각없이 진행하기에 앞서 한 발 한 발, 한 손 한 손이 나아갈 곳이 어딘지 확실히 고민을 해야한다.
예를 들어 양손으로 잡을 두 홀드가 모두 바짝 붙어있고, 발을 지탱할 홀드는 애매하게 멀리 떨어져 있는 코스도 있다. 그런 경우에는 숨을 크게 들이쉬어 멀리 떨어진 홀드로 발을 호기롭게 내뻗고! 그리고 재빠르게 바닥으로 쿵 떨어진다. 이상하네.. 분명히 발을 디딜 홀드가 저것 밖에 없는데 밟기만하면 떨어지니 문제를 낸 선생님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그런데 사실 애매하게 멀리있는 홀드는 당장 밟을 녀석이 아니다. 아니 정확하게는, "한 번만 쉬고" 밟을 두 번째 홀드이다. 밟을 홀드가 저것 밖에 없는데 무슨 개똥같은 소리인가? 싶지만, 무작정 밟기보다는 몸을 안정적인 삼각형 형태로 만들어줄 '벽'을 먼저 디디고 나서 밟을 홀드인 것이다.
내가 잡거나 밟을 홀드들만 바라보고 있다가 홀드들이 박혀있는 '벽'도 내가 사용해야할 대상이라는 것을 알게되면 처음에는 참 낯설다. 하지만 벽과 내 신발 밑창의 마찰이 생각보다 크기 때문에 벽을 이용하면 꽤나 많은 동작을 연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벽을 사용하지 않고 자세가 불안정한 상태에서 욕심만 내면, 바로 떨어지거나 그 다음 홀드에서 힘이 빠져 바로 떨어질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팔과 다리가 각각 모여있는 지금처럼 불편한 자세에서는 한 발을 떼어서 잠시 벽에 붙임으로써 자세를 안정적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그러고나서 벽에 디딘 발을 아까 그 애매한 홀드에 다시 올려주면 신기하게도 편안히 올라간다. 왜냐하면 발을 벽에 디디는 동안 무게 중심도 이동했고 팔도 충분히 펴졌기 때문에, 잉여로운 왼발은 그저 홀드에 편안히 올려다 주기만 하면 될뿐이다. 마치 "왼발은 거들뿐"
한참 바닥에 계속 떨어지다보면, 이게 아닌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하지만 당장 눈앞에 내가 실패한 그곳에 도달하게되면,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아까와 같이 똑같은 동작을 하고 있다.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그 순간만 되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되는 웃기고도 슬픈 모습을 반복하게 된다. 나는 떨어지려고 매달리는 것인가? 아니면 일단 저기는 밟아보려고 매달리는 것인가? 알다시피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홀드를 밟고 정상에 도달하려는 것이지, 홀드를 단순히 밟는 것이 목적은 아니다. 무작정 달려가기에 앞서서 그저 기본이되는 원칙만 머릿속에 계속 담고 있었으면 해결될 문제였는데도, 그 순간에는 그게 참 쉽지가 않다.
이제는 앞으로 나아가기전에 한 번만 더 고민해보자. 내가 한 발 한 발 뻗어서 '정상'으로 나아가려고 하는데, 지금 무엇을 해야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