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의도적인 분리
우리의 오랜 명작 만화 드래곤볼을 보면, 피콜로는 지구의 신이 자신의 악한 부분을 떼어냄으로써 탄생하게된다. 피콜로를 분리해냄으로서 신은 더욱도 고귀한 존재가 되었겠지만 악의 화신 피콜로도 그 존재감이 더욱더 커지면서 드래곤볼의 초전반부의 묵직한 캐릭터로 성장한다.
대학원생 시절, 연구와 생활에 찌들려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했다. (알다시피 공대 대학원생의 현실이 정말 부정적이였을 가능성도 크다.) 그래서 그 무렵 싸이월드에 우울하고 슬픈 일기를 많이 적었는데, 처음에는 생각과 마음을 정리하고 추스리려던 행동이었는데 어느샌가 그 자체가 나 자신이 되고있다고 느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런 느낌일까? 그래서 나도 피콜로의 탄생처럼 나의 감정을 분리하기로 하였다. 하나는 하얀색 일기장에 적을 수 있는 밝고 즐거운 자신, 하나는 검은색 일기장에 적을 수 있는 어둡고 칙칙한 자신이였다. (물론 싸이월드 다이어리에 제목만 하얀색, 검은색 일기장이다.)
직급이나 상황이 사람을 다른게 만드는 것처럼, 감정을 의도적으로 분리하여 적을 곳이 생기니 그 나름대로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을 정리할 수 있었다. 일기장에 적기 위해 소소하게 즐겁거나 보람찬 일들을 찾아보고 그런 일들을 되새김질하면서 다시 행복을 느끼기도 했다. 물론 그만큼 부정적인 생각들도 잘 정제되어 피콜로처럼 무섭게 응어리졌을 것이다. 핵폐기물마냥 잘 모아두어서 보관을 하더라도 쓰나미가 크게 몰려올 때면 속수무책일테니 그런 생각을 하면 조금 소름이 끼친다. 그래서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 피콜로 마냥 응축된 검은색 일기장의 기억이나 관성이 내 속에 남아있는 건 아닐까?하는 걱정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