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빛이 될 날을 꿈꾸며
부크크(bookk)의 존재는 작년에 브런치를 시작하기 전에 ‘책 쓰기’, ‘책 만들기’ 등을 검색하면서 알게 됐다. 자가출판 플랫폼인 부크크는 POD 출판 방식이다. POD는 ‘Publish On Demand’의 약자로 기존처럼 책이 서점에 깔려있는 상태가 아니라 구매자의 주문이 들어오면 책으로 제작하는 방식이다. 승인을 받으면 온라인 서점을 통해 구매할 수 있다.
부크크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책을 무료로 출판하고 작가가 되세요!”라는 문구가 메인에 적혀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 봤더니, 책의 가격이 책정이 되면, 그 안에 인쇄 비용, 부크크에서 가져가는 수수료, 작가가 얻는 수익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신기했다. 처음 부크크를 발견했을 때, 유레카를 외쳐야 할 것 같았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었다. 꼭 출판사를 거치지 않고서라도, 글을 쓰면 책을 내고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걸 깨닫고 내가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투고를 했던 이유는 내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편집자를 만나서 수정을 거친 후에 많은 독자에게 닿을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를 발견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약 140군데에 원고 투고를 진행했으나, 기획 출간을 제안하는 출판사는 단 한 군데도 없었다. 힘이 빠지고 속상했지만 처음부터 A플랜이 안 되면, B플랜으로 가자고 생각했었다. 그 B플랜은 '부크크'였다. 부크크를 통해 내가 책을 직접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나의 1분기 목표였다. 완성도가 좀 떨어진다고 할지라도 책을 내면서 한 단계씩 올라가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내 책을 판매하자니, 너무 부담스러웠다. 출판사에 투고는 용감하게 했지만, 수많은 거절을 받으며 때론 쓴소리를 듣기도 하면서 너덜너덜한 상태였다. 책에 가격을 매기고 사람들에게 상품으로 판매한다는 것에 자신이 없었다. 시행착오를 겪어가는 건 맞지만, 내 책을 구매할 독자에게는 온전한 상품을 보이고 싶었다. 컴맹인지라 표지 디자인도 자신이 없었고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이 복잡했다. 글도 안 써지고 괴로웠다.
그러다 K언니와 대화를 나누게 되면서 너만 보는 책으로 만드는 건 어떠냐는 말에, 무릎을 쳤다. 부크크에서 책을 만들 때, 판매용과 소장용 중에 자신이 원하는 방향을 선택해서 책을 만들 수 있다. 소장용으로 만들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표지 디자인도 내가 원하는 대로 막 하라고 조언해줬다. 디자인은 하나도 할 줄 모르기 때문에 부담스러웠는데, 내가 브릭이니까 표지에 벽돌 사진 하나 넣으라는 말에 빵 터졌다. 새삼 왜 이렇게 어렵게 생각하고 있었나 싶었다. 내가 감당하지 못할 만큼 무리한 일을 떠안는 것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차근차근 쌓아가는 게 더 현명한 방법이었다.
원고 서식을 다운로드하여서 A5를 기준으로 지금까지 내가 써왔던 글을 맞춰서 넣고 편집했다(부크크에서 책 만들기 탭을 누르면 하단에 원고 서식을 다운로드할 수 있다). 부크크 안에 무료 표지 디자인을 활용할까 하다가, ‘미리캔버스’가 생각나서 사이트에 들어갔고 이것저것 눌러보면서 책 표지를 디자인해봤다. 클릭 몇 번에 시간이 금방 갔다. 원고를 첨부하고 내가 제작한 표지 디자인도 올렸다. 지원하지 않는 글씨체와 표지 규격이 맞지 않아서 반려처리가 되었다는 안내 메일을 받았고 다시 수정 후에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첫 책의 담긴 이야기는 스무 편의 글이라면, 그 후에 열 편의 글을 더 써서 이번 책을 만들었다. 총 서른 꼭지의 이야기를 담았다. 엄마가 왜 같은 책이 두 개냐고 하셔서 왼쪽은 글쓰기반 통해서 편집자분이 만들어주신 책이고, 오른쪽은 내가 전부 만든 책이라고 말씀드렸다.
표지는 아예 기대하지도 않았고 무료 표지 디자인을 이용할 생각이었는데, 표지까지 내가 만들어낸 것을 보면서 아주 뿌듯했다. (저작권이 없는 디자인을 활용했으니,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뿌듯했다)
날이 좋은 날 도서관 주변에서 책 사진을 엄청 찍었다. 꽃과 풀을 배경으로 찍고 책을 벤치에 놓고 찍기도 했다. 몇몇 지나가시는 분들이 쳐다보는 눈빛이 느껴졌으나 상관없었다. 마냥 신이 났다. 도서관에 꽂혀있는 수많은 책 옆에 내가 만든 책을 살포시 올려놓기도 했다. 내가 만든 책 앞에서 재롱을 부리며 주접을 떨었다고 할까. 내가 봐도 내 모습이 웃겼다.
언젠가 내 책이 도서관에 있으면 좋겠다고 상상했다. 책이 출판되면 사서 선생님들에게도 보여드리고 싶다. 집 근처 도서관에 자주 가다 보니, 인사도 나누고 가끔 대화도 하면서 친근해졌는데 ‘저 사실은 책을 쓰고 있었어요.’ 하면서 책 선물로 서프라이즈를 하고 싶다. 막상 그 날이 되면 용기가 날까 싶기도 하다.
행복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혼자 김칫국부터 시원하게 마시고 있다. 지금은 연습 삼아 나만 보는 책으로 만들어봤지만, 독자가 볼 수 있는 그날도 반드시 올 것이라고 믿는다.
조급해하지 않고 차분하게 나와 세상을 바라보면서 내 안에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아가고 싶다. 해치우듯이 책을 만들고 싶진 않기 때문에, 시간이 조금 걸려도 가치 있는 책을 만들고 싶다. 언젠가 내 이름으로 된 책이 세상의 빛을 볼 날을 꿈꾸며, 또 누군가에게 빛이 될 날을 꿈꾸며 나는 오늘도 조금 느리게 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