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단단히 다지는 시간
작년 12월 9일, 지인을 통해 출판사와 첫 미팅을 하게 됐다. 상무님은 글솜씨는 있으나 글의 내용이 중구난방 해서 주제를 다시 잡고 글을 쓰자고 하셨다. 그렇게 해보려고 노력했지만 능력의 한계를 느꼈다. 당연히 계약은 성사되지 않았다. 그리고 12월 말부터 2월 초중반까지 본격적으로 원고 투고를 시작했다.
그러던 중, 한 출판사 대표님께 전화를 받았고 내가 보낸 원고에 대해서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셨다. 큰 동기부여를 얻음과 동시에 또다시 한계를 느꼈다. 내 글의 메시지를 어떻게 힘 있고 뾰족하게 만들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답답했다. 그래도 묵묵히 글을 쓰고 투고를 진행했다.
투고하는 과정은 정말이지, 고독했다. 답이 오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고, 답이 온다 해도 출간이 어렵다는 거절뿐이었다. 그런 메일을 받을 때면 힘이 빠졌고 글을 쓰고 싶은 의욕이 자꾸 줄어들었다. 그래도 꾸역꾸역 투고를 진행했다. 총 141곳에 투고를 했다. 이력서도 이렇게 많이 넣은 적이 없었다. 취업보다 더 어렵게 느껴졌다.
공동 출간을 제안해주신 곳도 두 군데 있었다. 하지만 공동 출간은 출판사와 작가가 나눠서 공동으로 비용을 부담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최소 백만 원 이상이 필요했다. 취준생인 나에게는 금전적으로 큰 부담이었다.
형식적인 거절의 내용이 아닌 원고에 대한 피드백을 주신 편집자분들도 있었다.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지만, 바쁜 시간 쪼개어서 내 글을 전문가가 읽어주셨다는 자체가 감사한 일이었다. 그러나 좋은 약은 입에 쓰다고, 내 원고가 일기 수준 같다는 피드백은 내 글이 그렇게 못난 글인가 싶어서 위축되고 속상한 마음도 들었다. ‘나는 왜 이렇게 무능한가?’ 자책하기도 했다.
출판사로부터 일기 같다는 얘기를 듣고 '내가 계속 글을 써야 하나, 책을 내는 게 맞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아빠한테 말씀드리자, 아빠는 “일기 같은 글이면 안 되나? <안네의 일기>도 있잖아.”라고 얘기해주셨다. 생각지 못한 아빠의 말씀에 용기를 얻었다. 친한 언니도 아예 일기를 콘셉트로 잡아서 책을 내보라고 격려해주었다.
나는 가치 있는 책을 만들고 싶었다. 나만 위로받고 끝나는 글이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울림을 주는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런데 출판사로부터 계속 거절을 받으니, 내 글이 가치가 없는 것 같아서 책을 내는 게 과연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과정을 보내면서 글을 쓰는 시간은 정말 힘든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고독한 싸움이었다
출판사를 통해 책을 내는 것만이 가치 있는 책은 아니었다. 좋은 책이 잘 팔리는 책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었다. 인기가 많은 책은 베스트셀러로 선정되지만, 인기가 없는 책이라고 해서 가치가 없는 책은 아니었다. 누군가의 노력과 시간, 정성으로 만든 책은 많은 사람이 봐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이미 가치 있는 책이었다.
나의 이야기는 약 140군데의 출판사로부터 인정받지 못했을지라도, 이미 그 자체로 가치 있었다. 아무리 내 이야기가 외면받는다고 해도, 나까지 외면해서는 안 됐다. 내가 나를 외면하고 있었다는 걸, 이 글을 쓰면서 깨달았다. 지나쳤던 나를 마주하니까 무언가 안에서 쏟아지듯이,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도서관에서 글을 쓰다 울고 말았다.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친한 언니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많은 사람이 내 책을 보지 않더라도, 한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힘이 된다면 그걸로 된 거 아니냐고. 맞다. 그게 맞는 거다. 처음 내 마음은 그러했다. 그런데 글을 쓰며 점점 욕심이 생긴 것 같다.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계속 생겨났다. 그때마다 다시 마음을 잡긴 했지만 쉽지 않았다. 잘 팔리는 책을 만들고 싶었고, 인기도 많아지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인기가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인기가 없기 때문에 나의 내공을 차곡차곡 쌓아갈 수 있다. 알맹이 없이 겉만 번지르르한 속 빈 강정이 되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인기는 오래가지 못한다. 모래 위에 지은 집처럼 와르르 무너져버린다. 나를 단단하게 다지고 만드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실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인기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다. 사실 혼자 쓰는 일기가 아닌 이상, 외부에 자신이 쓴 글을 공개한다는 것은 타인의 평가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을 얻으려고 하지 않을 때,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을 마음 편히 할 수 있다. 거품을 쫙 빼고 그 안에 있는 진짜 나를 마주하며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진솔하게 쓸 수 있다. 그래야 나도 살아난다. 내가 살아야 남도 살릴 수 있다.
어쨌거나 책을 내는 방법은 원고 투고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방법이 있다. 투고가 잘 안 된다고 하면 부크크(bookk)를 통해 책을 낼 생각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책을 만들기로 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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