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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릭 Jan 14. 2021

출판사와 첫 미팅을 하다

내가 나를 홍보하면 벌어지는 일 (2)

지난 이야기에 이어서


대략 한 달 전에 벌어진 일이다. 사실 출판사 미팅이 이렇게 빨리 잡힐 줄은 생각도 못했다. 내가 나를 홍보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속전속결이라고 했던가. 월요일에 연락을 받았는데 그 주 수요일에 뵙기로 했다. 실감이 안 나기도 했고 아무 생각 없다가 전날 밤이 되니 긴장이 되었다. 유튜브에 ‘출판사 첫 미팅’을 검색해보고 여러 사람들의 후기를 영상으로 봤다. 더 떨렸다. 입을 옷도 대충 생각해놨는데 뭘 가져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준비물을 검색해봤다. 딱히 나오는 게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잠이나 푹 자야겠다.' 하고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평소에는 7시나 8시에 일어났는데 6시 30분에 눈이 떠졌다. 첫 미팅을 하는 날이어서 몸이 긴장했나 보다. 평소 같으면 늦장을 부리며 잠을 더 청했을 텐데 몸을 일으켰다. 이 시간에 일어나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기분 좋은 시작이었다. 미팅은 오전 10시였고 넉넉하게 출발했다. 2월 10일 퇴사 후, 10개월 차 백수로 지냈던 나에게 출판사와 첫 미팅이라니. 긴장되고 설렜다.


다만 출근시간이어서 사람들이 미어터지는 지옥철은 영 설레지 않았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사이에 껴 있었더니 어느새 목이 말랐다. 용산역에서 갈아타야 하는데 너무 목이 말라서 전철역 안 편의점에서 물을 샀다. 내가 가야 하는 목적지는 효창공원역이었다. 용산역에서 갈아타서 한 개의 정류장만 가면 도착하는 코스였는데, 지하철 어플에서 ‘1개(3분)’이라 적힌 것을 ‘3개’로 보는 바람에 엉뚱하게 서강대에서 내렸다. 와-소름. 식겁했다. 다행히 시간은 9시 20분이었다. 미팅 시간은 10시니까 여유가 있는 상태였다. 일찍 나온 게 천만다행이었다.


다시 반대편으로 갈아타서 이번에는 정확한 곳에서 내렸다. 전철역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걸렸는데 길치인지라,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어서 조금 헤맸다. 그리고 도착했더니 딱 10분이 남은 상황이었다. 시간 맞춰서 나왔으면 늦을 뻔했다. 안도의 한숨을 돌리고 지인께 도착했다고 연락드렸다. 혼자서 상무님을 뵈어야 하는 자리였다면(나중에는 혼자 해야겠지만) 너무 긴장되고 어렵게 느껴졌을 텐데, 지인께서 동행해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알고 보니, 지인분도 그곳에서 책을 내실 예정이라는 약간의 반전이 있었다. 어쨌든 지인분과 한 팀이 되어 미팅을 무사히 마쳤다.



출판사라는 곳에 난생처음 가는 것이었기에, 그 세계가 어떤지 전혀 알 수 없었는데 첫 미팅을 통해서 작가의 입장과 출판사의 입장을 느낀 하루였다고 할까. 나는 내가 쓴 글을 최대한 살려서 책으로 만들고 싶은 반면에, 출판사는 주제가 두루뭉술하다며 키워드를 새로 잡고 다시 쓰는 걸 원하셨다. 글 솜씨는 있다고 칭찬해주시면서 3개월이면 완성할 수 있을 거라고 하셨다. 덧붙여 팔리는 책이 되어야 한다는 걸 강조하셨다.


처음에는 글을 다시 쓰라고 하면 나의 신념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배운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해야겠다고 각오를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내가 공들여서 쓴 글들을 (브런치북을 기준으로 원고 20 꼭지는 완성한 상태였다) 거의 다 버리고 1, 2개만 살릴 수 있다는 말을 들으니 마음이 아팠다.


게다가 내가 책을 내려는 방향과 출판사 상무님이 원하시는 방향이 다르다고 느꼈다. 나는 아픔을 통해서 나의 내면이 성장하고 느낀 것을 나누고 싶었고, 온전히 내 이야기를 담은 책을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상무님께서 말씀하시는 내용은 내가 생각하는 그림과 달랐다. 겉으로 표현은 안 했지만 속으로 의문점이 점점 커져갔다. 어찌해야 하나, 다른 출판사에 투고를 해야 하나 고민했다.


사실 그 출판사에서는 주력하고 있는 분야는 과학, IT계열 쪽이었다. 그 출판사에서 에세이를 낸다면 내가 처음이었다. 그럼에도 지인께서 자리를 마련해주셨던 것은 상무님께서 신인작가를 발굴하고 있는 상황이고 에세이 분야의 책도 출판을 계획하신다고 하셔서 자리가 만들어진 것이었다.




주제를 다시 잡으라고 하시면서 금방 쓸 거라고 원고를 검토하면서 자주 보자고 긍정적으로 얘기하셨다. 첫 미팅 때 바로 계약을 하진 않았다. 알겠다고 감사하다고 말씀드린 후에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봤다. 나를 위한 글이 남을 위한 글도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정말 내 글이 그런가? 팔리는 글이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러 가지 질문 끝에 얻은 한 가지는 내가 쓰는 글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들어야겠다는 것이었다.


그럼 어떻게 가치 있게 만들어야 하는 거지? 지금도 충분히 나의 삶을 통해 메시지를 담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책 한 권이 나오려면 보통 원고가 35 꼭지가 나와야 하는데, 내가 쓴 20 꼭지를 모두 버리고 새로 쓰려고 하니까 의욕이 전혀 나지 않았다. 출판사에서 원하는 느낌은 나의 얘기가 온전히 담긴 에세이보다 자기 계발서의 느낌을 원하는 것 같았다. 물론, 한 권의 책을 내려면 많은 책을 읽어보고 공부를 해야겠지만 과연 내가 출판사가 원하는 방향으로 글을 쓸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출판사와 작가의 입장 차이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상무님께서 브런치북의 내용을 다 읽어보신 상태는 아니었기 때문에, 나의 전체 원고를 보시면(처음 기획안과 보낼 때는 몇 개의 원고만 보냈다) 다른 반응을 보이실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고집이라면 고집일 수도 있겠지만, 내 에세이를 한 번은 다 읽어주시길 바랐다.


처음에는 ‘다시 쓰라고 하면 다시 써야지.’라는 마음이었음에도 내가 내려는 책과 방향이 다르다고 생각이 드니까 마음도 달라졌다. 사람 마음이란 게 그런가 보다. 일주일 넘게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고민한 끝에, ‘아님 말고, 어쩔 수 없지’라는 생각으로 내 기존의 원고를 수정해서 보냈다. 크게 방향을 바꾼다거나 아예 새로 쓰지 않았다.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결과는 ‘거절’이었다. 내 글에 메시지가 없다고 하셨다. 그렇게 계약은 성사되지 않았다. 그때는 꽤나 그 말에 충격을 받고 마음이 쓰리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하다는 생각도 든다. 출판사가 원하는 방향과 내가 원하는 방향이 맞지 않았으니 말이다. 좋은 기회가 온 것을 차 버리는 격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나만의 목소리를 내는 나의 에세이를 첫 책으로 내고 싶었다.


어찌 보면 ‘실패’라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에겐 좋은 경험이었고 소신 있게 행동한 결과이기에 크게 미련이 남지 않았다. 그래서 바로 그날 다른 출판사에 넣을 수 있었다. 출판사가 한 군데는 아니니 말이다. 다른 출판사에서도 어렵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앞으로 내가 받을 수많은 거절 중에 일부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계속 거절을 받아도 사실 상관없다. 요즘엔 돈을 들이지 않아도 책을 출판할 수 있는 좋은 시스템이 있으니 나에겐 안전망이 있다.


현재 우리는 독자보다 작가가 많은 시대를 살고 있고, 그중에 나도 작가 지망생이라는 쉽지 않은 길을 선택했다. 그럼에도 나는 이 길을 계속 걸어가고 싶다. 비록 내 글이 사람들의 큰 호응을 얻지 못하더라도, 내 목소리를 내는 것에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해서 나만의 글을 쓰고 싶다.



-내가 나를 홍보하면 벌어지는 일 (3): ? (제목은 내일 공개하겠습니다)





나의 첫 이야기 <조금 느리게 가는 중입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brick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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