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글감을 모으는 중
취업해서 출근한 지 한 달이 되었다. 근무시간이 끝나면 글을 쓸 수 있을 거라고 만만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생각보다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한 달이다. 1년 3개월 만에 취업해서 9시부터 6시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서 8시간 근무를 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피곤했다. 첫 주는 많이 긴장을 해서 집에 오면 꼼짝도 하지 않았다. 저녁을 먹고 나면 누운 듯이 기대어 앉아서 휴대폰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럼에도 2주에 한 번씩 글쓰기 모임을 이어왔다. 반강제적으로 글을 쓰는 장치가 있었기에, 글쓰기를 지속할 수 있었다. 그저 글을 ‘쓰는’ 것에 의의를 두었기 때문에, 내 마음에 드는 글은 아니었다. 글 한 편을 써도 뭔가를 성취한 기분보다는 찝찝한 기분이 계속되었다.
사실 내가 세웠던 계획은 6월 안에 소장용으로 만들었던 책을 퇴고해서 판매용으로 만드는 게 목표였지만, 본업과 글쓰기를 병행한다는 게 생각보다 더 어려웠다. 안 그래도 저질 체력인데 너무 쉽게 생각했다. 글을 쓰는 일도 꽤나 체력이 필요한데 8시간 근무를 하고 나면 다시 책상 앞에 앉아서 글을 쓸 수 있는 에너지가 없었다. 결국 한정된 에너지와 시간 앞에 선택을 해야 했다. 생존을 위해 글쓰기보다 운동을 선택하는 날이 더 많았고(하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쉰 날이 더욱 많았다...), 외근을 대비해서 운전 연습도 해야 했다(돌아보니 운전연습은 고작 2번밖에 안 했다...). 그러다 보니 글쓰기는 우선순위에서 계속 밀려났다.
유튜브나 웹툰을 보는 등 아무 생각하지 않고 가만히 휴식을 취하는 날이 많아졌다. 물론 그런 시간도 필요하지만, 퇴근 후 대부분의 시간을 그렇게 보내다 보니 시간이 아깝고 눈의 피로감도 크게 느껴지면서 제대로 휴식하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8시간 동안 근무하면서 컴퓨터를 보고 있으니 퇴근하고 나서 노트북을 열고 싶지 않았다. 눈이 더욱 피로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국 휴대폰을 하면서 눈을 혹사시키는 모순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글을 쓰고 싶었지만 동시에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귀찮고 피곤했다. 내가 좋아했던 글쓰기가 저만치 멀어진 기분이었다. 글럼프, 글태기가 왜 이렇게 오래가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지인분께서 나에게 ‘일하면서 글감을 모으는 중’이라고 말해주셨다. 그분의 말을 통해 나를 다시 보게 됐고, 지금 당장은 글쓰기가 힘들어도 조급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글감을 모으고 있는 중이니 말이다. 내가 지은 에세이의 제목 <조금 느리게 가는 중입니다>를 생각하며 마음을 잡을 때가 많다. 조금 느리게 가겠다고 했으면서 왜 나는 자꾸 조급하게 생각할까. 이런 식으로 자기반성을 하게 된다.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다. 이제 막 시작한 나에게 적응하려면 시간이 필요함을 인정하고 여유를 가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