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고 보면 별일 아닌데
시간이 흘러 지나고 보면 별일 아닌 것들이 많다. 또 말을 꺼내기 전에, 전전긍긍하지만 막상 말을 하고 나면 내가 고민했던 시간이 우습게 느껴질 만큼,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다. 회사에 입사해서 나의 첫 번째 고민은 ‘운전’이었다. 대학교 4학년 때 운전면허를 땄고 전 직장에서 외근을 나갈 때 종종 운전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내게 운전은 무섭고 어려웠다. 미숙한 운전으로 교통사고가 난 적이 있어서 그때의 트라우마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다행히 양쪽 모두 다치지 않았다). 물론 그 이후로 운전 연수를 받기도 하고 따로 연습하기도 했지만, 혹여 사고가 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늘 한편에 있었다.
작년에 퇴사하고 운전할 일도 없었고, 코로나가 터지면서 집순이로 보낸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여행을 가서 차를 렌트하는 일도 없었다. 이러다가 장롱면허가 되는 건 아닌가 싶어 걱정되기도 했지만, 딱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 운전 연습은 하지 않게 됐다. 그렇게 운전을 안 한 지 1년이 되어가는 상황이었는데, 면접에서 운전할 수 있냐는 질문을 받았다. 못하는 건 아니니까 할 수 있다고 대답을 했는데, 내일부터 출근하라는 연락을 받고 운전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덜컥 겁이 났다. 면접 때, 당장 운전은 못 하고 연습을 해야 할 것 같다고 솔직하게 말했어야 했나. 양심에 가책을 느끼며 출근하기 전부터 마음이 한없이 무거웠다.
'그래. 솔직하게 말씀을 드리자. 잘리면 어쩔 수 없지, 뭐.', '아니야. 지금 당장 운전을 시키는 것도 아닌데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있을까.' 출근한 첫날, 점심을 먹고 오후 시간이 지나서까지 갈팡질팡하며 한참을 고민했다. 가시방석이 따로 없었다. 어차피 입사 지원할 때부터 운전이 필요하다면 운전 연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운전하려고 운전면허증을 딴 게 아닌가. 개인적으로 연습을 할 건데 말을 꼭 해야 할까. 하지만 운전을 언제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나의 왕초보 수준을 솔직하게 말씀드리지 않으면, 계속 마음이 불안할 것 같았다.
다행히 부장님과 1:1로 신입 교육을 받는 시간이 있었다. 교육이 끝나고 질문이 있냐는 말씀에, 운전 얘기를 했다. “제가 면접 때는 운전을 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사실 운전을 안 한 지 1년이 좀 되어서요. 따로 연습하고 운전을 해도 괜찮을까요?” 속으로 웅얼웅얼 연습만 했던 말을 입 밖으로 꺼냈을 때, 그 긴장감이란. 어떻게 반응하실지 너무 겁이 났는데, 감사하게도 이해해주시고 팀장님께도 얘기하라고 하셨다.
팀장님께 바로 말씀드리는 것도 너무 긴장되어서 꼬박 하루가 걸렸다.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하자 팀장님도 덩달아 심각한 표정을 지으셨다가 운전 얘기를 꺼내자, 웃음을 터트리면서 괜찮다고 운전하라고 억지로 시키진 않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 말씀에 묵은 체중이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말도 못 하고 혼자서 문제를 끌어안고 낑낑대고 있을 때는 문제가 너무나 거대하게 느껴졌는데, 막상 말을 하고 나니까 별일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운전을 잘한다고 거짓말을 했던 것도 아니고 운전은 할 수 있지만, 연습해야 한다는 정도였다. 운전에 자신감을 가지려면 연습을 더욱 자주 해야겠다만.
어쨌든, 그 사실을 말했다고 해서 긁어 부스럼이 생기진 않았다. 오히려 나의 상태를 솔직하게 말하자, 마음을 짓누르던 걱정도 같이 사라졌다. 걱정의 대부분은 회피하지 않고 직면했을 때, 그 크기가 작아지는 것 같다. 사실은 원래 작았는데 말이다. 어쩌면 지금 내가 붙잡고 있는 이 일은 걱정할 일이 아닌데 걱정하고 있지 않나 돌이켜본다. 걱정은 또 다른 걱정을 낳는다. 걱정을 끊어내는 방법은 피하는 게 아니라 두려움에 직면하는 것이고 알고 보면 별일 아니었다는 걸 확인하는 것이다. 초보면 초보라고 왜 말을 못 할까. 못한다고 위축되지 말고 당당해지자. 초보운전을 벗어나는 그날까지 연습하고 또 연습!